팀장이 관찰한 팀워크의 실체와 그것을 키운다는 것의 의미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회사에 들어오게 되면 근로계약서를 씁니다. 저는 첫 직장이 외국계 기업이었는데요.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영어로 적힌 근로계약서를 받아 들고, 모르는 단어가 많아 하나하나 영어 단어를 찾아보며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전자서명으로도 많이 하던데 그때는 정말 사무실에서 사인을 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와 이제 나도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직장인이 되었구나. 나도 정말 프로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근로계약서의 감춰진 항목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는 프로답게 일을 한다>라는 암묵적인 합의 조항이었습니다. 프로답게 일한다는 것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친절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전문성을 발휘하며 (혹은 빠르게 전문성을 습득하여) 약속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회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대학교의 팀플이 아니라는 것을요.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우리들은 정말 프로답게 일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생겨도, 전문성을 살려, 수단과 방법을 찾아, 나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거나, 쉽게 포기하거나, 본인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프로답지 못하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팀원에서 팀장이 되고 10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근로계약서에 숨겨진 암묵적 합의 조항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나는 팀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기로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것이죠. '우리는 혼자 일하지 않고 회사라는 팀으로 일하기로 했다'는 것에요.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같이' 일하기 위해 회사가 존재합니다. 물론 회사 안에서도 비교적 협업 없이 혼자 일을 하는 포지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는 '혼자' 일을 하다 한계에 부딪힌 누군가가 동료를 모으면서 시작된 것일 테니까요. '혼자'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굳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고서도요.
근로계약서는 저에게 월급도 주지만 원했든 원치 않았든 동료들도 만들어 줍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아무도 아니었을 사람들과 한 회사에서 같은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의 팀장, 팀원 또는 동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또 따라야 합니다. 일정을 지키지 않는 동료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서로 성향이 달라 충돌이 있더라도 '동료'라는 이유로 조금 더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같은 회사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으니까요. <나는 팀으로 일을 한다>는 암묵적 합의 조항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팀으로 일하는 것에 합의한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보다 팀으로 일할 때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함께 일하므로 개인의 목적보다 공동의 목표가 우선하다는 것에 합의한다
우리는 개인의 성취보다 팀의 성취가 먼저라고 믿는다
<나는 팀으로 일을 한다>는 이 암묵적 합의 조항 때문에 '팀워크'라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해집니다. 팀워크는 단순히 '개인'으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각자 프로답게 일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니까요. 분명 모든 사람의 근로계약서에 <나는 팀으로 일을 한다>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을 텐데, 실제 회사에서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이 팀의 분위기를 해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단 회사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에요. 스포츠로 눈을 돌려 세계적인 축구나 농구 리그를 보더라도 팀의 승리보다는 개인의 성취나 성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수들이 보입니다. 그런 선수들에게도 우리는 똑같은 말을 합니다. '저런 선수는 팀에 도움이 안 된다.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다'라고 말이죠.
<나는 팀으로 일을 한다>는 암묵적 합의 조항 때문에 팀워크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막상 팀워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또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팀워크는 단순히 개인이 프로답게 일해 개인의 성과를 잘 낸다는 것을 넘어선 개념이니까요. 우리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개인으로서 성과를 내는 일'은 많이 경험을 해 봅니다. 수능과 시험이 대표적이겠네요. 혼자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팀으로 성과를 내는 일'은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경험하게 됩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연습해 볼 기회가 많이 없는 것이죠. 대학교에서 요즘 '팀플'을 많이 한다고들 하지만 팀플에서 좋은 팀워크를 경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프로답게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팀워크도 중요한 스포츠의 세계를 살펴보면 팀워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처음 팀워크를 경험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축구와 농구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 대표로 농구대회에 종종 나가기도 했어요. 더 잘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시간도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팀 스포츠를 해 보면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가장 공감했던 속담이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입니다. 선수 개개인 능력의 합이 곧 팀의 능력이라면 경기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선수 개개인 능력의 합이 더 좋은 팀이 이긴다고 가정하면, 각 팀의 선수들의 능력을 측정하여 '강팀'과 '약팀'을 나누고 힘들게 직접 경기를 할 필요 없이 그 점수에 따라 팀의 성적을 매기면 됩니다. 하지만 팀워크의 힘으로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일도 벌어집니다. 팀워크 때문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 됩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약팀'의 선수들이 왜 매 경기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팀워크에 대해 들었던 가장 멋진 말은 전설적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명언입니다.
Talent wins a game, teamwork wins a championship.
'재능은 몇 경기를 이길 수 있게 해 주지만, 팀워크는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노력이 있었지만) 역대급 재능을 가진 레전드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 또한 멋졌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프로다움'의 통념을 깨는 것 같아요. 우리는 흔히 '프로답게 일한다'라고 할 때 talent를 강조하니까요. 개인이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프로답게, 전문성을 살려 해낼 수 있느냐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직장에서 말하는 '프로다움'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프로다움'에 집중합니다. 프로 중에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선수들은 '프로답게' 보다는 '팀워크'를 강조하는데 말이죠. 앞서 말씀드린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프로다움'이 높은 팀이 무조건 이긴다면 경기를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구체적인 팀워크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면 마이클 조던의 말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축구 경기를 한번 상상해 볼까요? 공격수 두 명이 어렵사리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상대편 골문 앞까지 왔습니다. 공격수 A가 공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편 동료 B가 더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팀 입장에서는 A가 골을 넣든, B가 골을 넣든 상관없으므로 A가 팀워크가 좋은 선수라면 B에게 패스를 하여 B가 득점할 수 있게 해 주면 됩니다. 하지만 A가 '득점'이라는 개인의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패스하지 않고 무리하게 슈팅을 합니다.
무리하게 시도했던 A의 슈팅은 아쉽게 상대 수비수에게 가로막힙니다. A와 B 모두 방금까지 골을 넣기 위해 50m가량을 전력 질주하여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습니다. A의 슈팅을 막은 상대 수비수는 바로 공격으로 전환하려 합니다. A가 팀워크가 좋은 선수라면 우리 팀 수비수들이 수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힘을 쥐어짜 내 공을 빼앗은 수비수의 공을 다시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달려들 것입니다. 하지만 A가 '득점'이라는 개인의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공격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공격으로 전환하는 상대 수비수를 보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B는 힘들지만 A가 놓친 상대팀 수비수를 막기 위해 달려갑니다. A와 함께 전력질주를 하여 힘들고 지친 체력이므로 공을 빼앗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우리 팀 수비수들을 위해서요. B가 쥐어짜 낸 도움으로 벌어준 10초 남짓의 시간으로 우리 편 수비수들은 전열을 잘 가다듬고 상대방 공격을 막아냅니다. 공을 다시 빼앗은 우리 수비수가 공격을 위해 다시 A에게 패스를 하고, A는 다시 공격을 전개를 합니다. B는 A가 본인에게 패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A와 함께 다시 상대방 골문을 향해 달려갑니다. 공격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상대 수비수가 수비하기 까다로워지니까요. 함께 달려오는 B를 의식한 상대 수비수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A가 멋지게 골을 넣습니다. 힘들지만 함께 뛰어준 B가 상대 수비수의 시선을 빼앗아준 덕분에요.
B가 보여준 공동의 목표를 위한 희생과 헌신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B는 기록되지 않는 영역에서 팀의 승리를 위한 공격과 수비 모두에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개인보다 공동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B 같은 팀원이 많다면 팀워크가 좋은 팀이 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동료들도 아마 이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B가 없으면 팀워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미화를 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저는 조폭영화도 즐겨 보는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과장되고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우정이나 의리 같은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폭영화를 보면 상대 세력과의 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할 때, 조직의 보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조직의 운명이 걸려있는 일이니 가장 똘똘한 애들로 모아봐'
저는 이런 말을 군대에서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행정보급관님이 어려운 일이나 작업을 해야 할 때 똘똘한 애들로 모아서 작업을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력다툼이 있는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이고요. 하지만 똘똘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 '똑똑한'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조직의 보스는 똑똑한 애들이 아니라 똘똘한 애들을 찾을까요? 조직폭력배가 될 정도니 모두 싸움은 비슷하게 잘한다고 가정해보면 똑똑한 애들을 모으면 더 힘든 일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폭 영화의 결말을 보면 똑똑한 애들과 똘똘한 애들의 차이점은 이런 것 같습니다.
똑똑한 애들 : 이해력이 높고 판단력이 좋아 스마트한 브레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애들
똘똘한 애들 : 조직과 동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는 로열티와 의리가 있는 애들
제가 조직의 보스라면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에는 똑똑한 애를, 여럿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일에는 똘똘한 애들을 투입할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단어로 표현하자면 똑똑한 애들은 프로다운 재능을, 똘똘한 애들은 팀워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군대에서 행정보급관님이 찾으셨던 '똘똘한 애들'도 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힘을 모아서 해결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일인데, 일 잘하고 헌신적인 애들로 좀 모아봐', 뭐 이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요?
저는 팀워크의 실체는 바로 개인이 달성하기 힘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구성원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출중한 재능의 프로들이 모여 있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팀의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헌신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헌신이 득점이나 도움처럼 개인의 성과로 기록되지 않더라도요. 영화 속 조폭의 세계에서처럼 저는 회사에서도 '일 잘하고 헌신적인' 똘똘한 팀원들이 결국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성과'에 집중하는 프로다운 일반 팀원들보다 동료들과 함께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해 낼 테니까요. 마이클 조던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프로다움, 재능, 똑똑함으로는 좋은 성과 한 두 번을 낼 수 있겠지만 팀워크, 헌신, 똘똘함으로는 힘을 모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요.
팀장이 되고 나서 여러 팀원들을 만났습니다. 같이 일했던 팀원들의 팀 소속이 바뀌거나 저의 역할이 변경되어 헤어지기도 했고, 회사를 떠나게 되어 헤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게 헤어진 팀원들을 오랜만에 만나거나 멀리서 소식을 들으면 큰 성과를 낸 팀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팀원들이 계속 생기다 보니 성공할 팀원들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팀원의 성공을 예측하는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팀원의 주위에 그 팀원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동료들이 얼마나 많으냐'였습니다.
주위에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동료'들이 많으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더라고요. 그럼 우리는 어떤 동료의 성공을 바랄까요? 스마트하고 프로다운 '똑똑한 동료'일까요 아니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적인 '똘똘한 동료'일까요? 저는 '똘똘한 친구'들의 성공을 바라는 편입니다. 똘똘한 친구들이 팀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팀워크를 이끌어내고, 그래서 팀이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생각한 팀워크의 실체가 회사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이런 관점으로 주위의 동료들을 살펴보세요. 아마 5년 뒤 누가 가장 성공해 있을지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팀워크를 키운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팀원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팀장 입장에서 팀워크를 키우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1) 일단 똘똘한 친구들을 모으자
네, 말 그대로 원래 '똘똘한'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채용을 할 때 면접에서 지원자가 '똘똘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지원동기를 면밀히 확인하는 편인데요. 지원동기를 들어보면 지원자가 회사와 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원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할 것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동기에서 개인적인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지만, 지원한 동기가 개인의 커리어와 성장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지원자를 선뜻 채용하기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헌신적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지도 꼭 물어보는 편입니다. 동료를 위해 먼저 도움을 주었던 경험이나, 본인이 아닌 타인의 성공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과 같은 무언가를 희생했던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면 지원자의 협업 성향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경우, 나의 의견과는 반대로 최종 의사결정이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편인지도 물어보는데요.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의사결정권자를 찾아가 논리적인 근거와 함께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지원자들은 똘똘하기보다는 똑똑한 지원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2) 팀이 '생존' 이상을 생각하게 만들자
팀이 생존 모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일이 일시적으로 너무 많이 몰리거나 어려운 미션들이 주어져 팀원 개개인이 일단 본인들의 업무를 제시간에 끝내기에도 힘든, 각자의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면 헌신이나 팀워크를 말하기 힘들 거예요. 팀에 불이 나고 있다면 일단 급한 불을 먼저 끄고 팀이 생존하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팀원들이 '생존'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팀워크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협업을 할 때 팀 전반적으로 신뢰감과 안정감이 전제되어야 팀원들이 서로를 위한 헌신과 팀워크를 생각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팀장이 팀원들을 불신하는 행동을 한다던가, 팀장이 팀원들 사이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던가, 팀원들 사이에 감정적 충돌이나 경계심이 존재한다면 팀이 생존 이상을 생각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팀장이 팀 내에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팀장 혼자서 힘들다면 팀 내 영향력이 큰 팀원들이나 시니어 팀원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의 일을 자발적으로 도울 수 있는 문화가 팀워크의 시작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팀원들 서로가 서로에게 가벼운 호의 베풀거나 간단한 것이라도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선순환의 시작일 테니까요. 구글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업무 시간의 20% 정도를 쓰도록 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요. 구글의 방식이 혁신에는 좋겠지만, 팀원들의 업무 시간의 10% 정도는 팀 동료의 일을 돕는 일에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팀워크에는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격주에 한 시간 정도는 팀원들이 다 같이 모이는 가벼운 커피 챗 자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각자의 강점에 맞게 가벼운 도움을 청할 수 있게 하거나, 각자 고민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가벼운 아이데이션을 같이하며 같이 고민을 해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3) 헌신적인 태도의 가치를 알리자
기회가 될 때마다 헌신적인 태도의 가치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는 팀원이 있다면 많이 칭찬해 주세요. 업무적인 성과가 아니라 헌신적인 태도 그 자체에 대해서요. 이를 보는 팀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입니다. 종종 '회사 내에서 성장을 위해 참고하면 좋을 만한 롤모델 동료를 알려주세요'라고 묻는 팀원들도 있는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똑똑하거나 스마트한 사람보다는 헌신적인 태도를 가지고 회사 내에서 좋은 관계와 평판을 구축해 나가는 사람들을 꼭 지켜보라고 말해줍니다. 한마디로 똘똘한 동료를 롤모델로 제시하는 것이죠. 헌신적인 태도로 좋은 관계를 구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결굴 회사에서 큰 일을 이룰 테니까요.
회사의 공식 평가 기간이 되어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줄 일이 생긴다면 '헌신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항상 강조를 하는 편입니다. 요즘 회사에서는 단순히 성과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과 태도'에 대한 평가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는 팀원이 있다면 '헌신적인 태도'를 협업을 위한 중요한 태도로 간주하여 꼭 강점에 적어주는 편입니다. 자기 일도 바쁜데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요. 혹여나 그렇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팀원에게는 '헌신적인 태도'가 결국에는 본인에게 더 큰 성과를 가져다준다는 메리트와 함께 앞으로 더 기대하고 보고 싶은 모습으로 말해주는 편입니다.
(4) 같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는 것
팀이 무엇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지도 분명히 해 주면 전반적인 팀워크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팀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명확하게 공유하는 것이죠. 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미션들 중에 특히 협업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이 일에 대해서는 팀원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협력을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습니다. 팀워크가 필요한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고 프로젝트의 오너와 참여자가 명확한 상황이라면 'A님이 진행하는 XX 프로젝트가 이번 분기에 정말 중요할 것 같으니 유사 경험이 있는 B님과 C님이 특별히 A님을 많이 도와주면 좋겠다'라고 구체적으로 동료를 지명하여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팀의 전반적인 팀워크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업무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팀의 분위기나 문화를 위한 별도의 비전이나 목표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팀으로부터 가장 협조적이고 헌신적이어서 같이 일하고 싶은 팀'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팀의 정체성을 정하고 이를 같이 이뤄가 보자고 하거나, '팀 동료를 위해 일주일에 30분은 무조건 시간을 내어 무엇이든 도와주기'와 같은 농담 반 진담 반의 제도를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5) 팀원 입장에서 헌신하고 싶은 팀장이 되는 것
우리 모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존재에 많이 의지합니다. 사실 우리는 회사의 비즈니스를 위해, 매출과 성장을 위해, 고객을 위해 일해는 것이겠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눈에 바로 잘 보이지는 않잖아요? 결국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곧 회사이자, 비즈니스이자, 나의 하루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팀원들 입장에서는 팀장과 동료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10년 넘게 일하면서 스스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머리로는 '우리는 고객을 위해 일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눈앞에서 크고 원대한 비전을 진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대표님이나, 나를 믿고 따라준 팀원들이 무언가에 막혀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요청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하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다'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 확신합니다. 분명 그저 똑똑한 사람들과 일하며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닐 거예요. '사람을 얻는 사람이 세상을 얻는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팀원들의 헌신적인 태도로 팀워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팀장 스스로가 '나는 팀원들이 헌신하고 싶어 하는 팀장인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끼리도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겠지만 팀원들 입장에서 팀워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분명 팀장일 것입니다. 내가 헌신하고 싶었던 팀장님들, 대표님들을 떠올려 보며 나는 그런 사람인가를 가끔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팀장 스스로가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팀원들 중에는 분명 '동료들이 기꺼이 헌신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 팀원이 있다면 그 팀원이 중심이 되어 동료 팀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작은 불씨를 호호 불어 큰 불로 키우는 것처럼, 마음속에 따뜻한 헌신을 품고 있는 팀원이 있다면 많은 팀원들이 그 팀원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그럼 분명 작은 불씨가 다른 팀원들에게도 옮겨 갈 것입니다.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벌써 세 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을 할 때마다 참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중 이직을 가장 망설이게 했던 이유는 헌신적인 팀이었어요. 저는 늘 너무나 부족한 팀장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착하고 헌신적인 팀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헌신적인 팀원들과 불가능해 보였던 많은 일들을 이루면서 멋진 팀이 어떤 것 보다 큰 보상이라 느꼈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기회가 생겨 이직을 할 때마다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하게 하는 이유는 남기고 가는 헌신적인 팀원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힘든 일이겠지만 헌신적인 팀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 그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는 일일 것입니다. 헌신적인 팀보다 좋은 보상은 없는 것 같거든요. 오늘도 좋은 팀을 위해 항상 고민하는 모든 팀장님들을 응원하며 짧은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개별적으로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있으신데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은 인스타그램에서 @zseo_hj로 DM 주시면 확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