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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Feb 03. 2021

22. 목디스크는 처음이라

어쩌다 병가

새벽 4시. 욱-신 하는 통증에 잠에서 깨버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베고 잔 베개가 이토록 불편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아야!"하고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너무 아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극한의 통증이었다. 이거, 단순한 목 배김이 아니라 목디스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목 통증 때문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병원을 찾아갔다. MRI를 찍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만 나이 겨우 스물아홉에 MRI를 찍게 되다니 놀랍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컸다. 무슨 럭비선수가 된 것처럼 얼굴에 장비를 툭툭 차고 좁은 판 위에 누워 우주선에 들어가듯 어딘가로 들어갔다.


기계가 시끄럽다고 귀에 씌워주신 헤드셋에서는 감미로운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이 음악이라도 안 나왔으면 나는 차가운 의료기기 안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걱정에 가득 찼을 것이다. 스르륵 잠이 들기 직전에 MRI 검사는 끝이 났다.


진단명은 역시나 목디스크. 전문용어로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척추간판탈출증. (다른 병원에서는 경추 4/5번 수핵탈출증이라고 하였다.) 4번, 5번 디스크가 목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른쪽 손과 팔 또한 저릿저릿한 것이었다.




9시에 찾아간 병원에서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아픈 것과 배고픔은 다른 영역인지라 근처 돈가스 가게에서 등심 돈가스를 시켜먹었다. 목은 아파도 왜 이렇게 맛있던지. 고개를 못 숙여 돈가스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잘도 집어먹은 후, 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출근해 급한 일을 부랴부랴 끝내고 병가를 냈다. 상사와 동료직원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택시를 불러 자취방으로 향했.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 문을 열고 바로 코 앞의 자취방으로 향하는 그 몇 걸음의 순간, 외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순간이 오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순식간에 엉엉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 왜 항상 힘든 순간엔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는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며 엄마에게 엉엉 울며 이야기하자 엄마는 그저 들어주며 울고 싶은 만큼 울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엉덩이 떼지 않고 일을 한들, 화장실 하루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며 일을 열심히 한들. 그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련한 짓이었다. 이렇게 내 몸이 망가질 거였으면 그렇게 망부석처럼 앉아 일하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커피 한 잔도 하고 바깥공기도 쐬고 점심 산책도 하는 건데.


주변에서 다들 나에게 한 번도 일어나는 것을 못 봤다며 말할 때, 나는 그것을 무슨 훈장처럼 생각한 것 같다. 마치 누가누가 오래 앉아 일하나 기네스 기록을 세우듯 그것이 일처리 능력과 성실함을 말해준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대단한 착각이자 위험한 오산이었다.


그동안 내 몸을 내가 방치하고 몰라주었다는 사실에 너무 자책감이 들고 내 몸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미련한 주인을 만나 몸이 고생하는구나. 스스로를 돌보는 주인을 만났더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MRI 사진에서 보았던 징그러울 정도로 까맣고 닳디 닳은 디스크가 불현듯 떠올랐다. 미안해 내 몸아.





회사에 우선 5일의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눕고 일어나는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밥을 먹을 때는 허공을 응시하며 반찬을 집어야 했고 국을 떠먹을 때면 주르륵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백수가 된 것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내 피 같은 시간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워 쉬는 것이 좋은 것도 잠깐이었다. 병가는 역시 병가였다. 밖에 나가서 커피 한 잔 하지도 못하고 쇼핑을 한다거나 놀 수도 없었다.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자금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소중한 짝꿍, 거북이와 전화를 할 때, 한숨을 쉬며 이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공부를 하든지 책을 보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러자 거북이가 툭 던진 한 마디.



푹 쉬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회복하려고 쉬는 건데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했다니 제일 잘한 일인걸?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서 쉬기만 해!



뭔가 띵! 하고 종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맞아, 난 병가 중이지. 지금은 빨리 회복하는 게 중요한데, 갑자기 주어진 수많은 시간에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던지 또 무엇인가 열심히 이루어내고자 하려고 한 것 같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자꾸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잠깐 멈추더라도 그것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지금은 그저 평범하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최선이니깐.






내가 좋아하는 펭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쉬는 게 혁신이라고.

나는 지금 혁신적으로 잘 쉬는 것이 필요하다.

괜한 걱정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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