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Jan 30. 2024

처음, 아이가 로드킬을 신고하다

편의점에 간 아이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40분이 넘어서 현관문을 열고 헉헉거리며 들어왔다.


“내가 왜 늦게 들어왔냐면, 오다가 공원에서 친구들을 만났거든. 근데 얘네들이 너구리가 죽었다는 거야. (발견) 그래서 신고하라니까, 무서워서 못 한다고 해서. 내가 신고하고 왔어.”

“어디에다가 신고했는데?”

“119에. 그런데 다른 번호를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까, 또 거기가 아니래. 그래서 거기서 알려주는 데로 또 전화했어. 처리하고 알려 준다고 하더라.”

“맞아. 로드킬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엄마도 신고 한 적 있거든. 저번에 살던 곳, 원형 육교에서 길에 고양이가 죽어 있었는데, 아침에 보고, 오후쯤에도 또 보이길래 신고했어. 그때도 여러 번 전화해서 해결했어.”     

아이는 약간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용기를 내어 전화한 스스로가 뿌듯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 아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단다. 두 통이나 못 받았단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게 아이의 룰이었기에,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신고한 후였기에, 로드킬 담당자일 수도 있는 듯했다.    

 

“일하는 분 전화일 수 있으니까. 다시 해봐.”

“모르는 전화인데... 한 번 더 전화가 오면 그때 받을게.”

“담당자인 것 같은데.”     


잠시 뒤,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예상대로 담당자였다. 로드킬 위치를 물어왔다. 아이는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지 못했다. 혹시 아이라고 오해를 살까 봐,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다.


“아이가 위치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서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폈다. 내가 본 것이 아니었기에 아이에게 어디쯤인지 물어보았다.


“여기 공원 길목인데, 찾기가 어려워.”

“그래도 표시를 해봐. 아까 사진 안 찍었어?”

“응. 거기까진 생각 못했지.”

“그래야 안 헤매는데. 만약 못 찾으면 우리가 나가야지. 뭐. 지금 너무 추워서 사람들 못 찾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설명하고 싶은데, 잘못해서 그런 건지? 사진을 안 찍어 왔냐는 말에 속상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눈물을 보며 생각 조명이 켜졌다. 망설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용기 있게 행동한 건, 대견했지만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시 장난 전화로 여겨지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더불어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일이 지연되면 어쩌나 하고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져 물었다.


아이의 행동보다 곁가지의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잘 못 찾겠다고 하면 추운 날씨에 그곳까지 걸어갈 생각에 막막했다.


얼마 뒤, 잘 처리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급박한 상황이 해결되자, 비로소 울었던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 한 로드킬 신고를 아이는 열세 살에 처음 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여러 번 걸고, 끝까지 마무리한 건 용감한 일이었다. 미숙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는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모를 수 있었다. 나는 예민해져 날 선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아이가 차분하게 일을 처리하길 바랐던 나의 마음을 거두고 싶다. 칭찬해도 모자랄 판에 아이를 종용했던 나를 혼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님은 하얀색이 싫다고 하셨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