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하연 Oct 30. 2024

사춘기 아이와 잘 지내기 위한 기록 팁

“사춘기라는 말이 기분 나빠. 좀 다른 말을 썼으면 좋겠어.”

아이는 그 말이 부정적 의미로 불린다는 걸 육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뭐로 바꾸고 싶은데?”

“봄을 생각하는 아이. 학교에서 한문 시간에 배웠어.”

“그렇게 예쁜 말이었어?”     


찾아보니 思春期(사춘기)는 봄 춘(春), 생각 사(思) 기약할 기(期)로, 직역하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낭만적인 뜻이었다니... 어떤 단어들은 그 의미도 모른 채,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자아를 찾는 모습은 과정으로 보며 아름다웠다. 땅속에 있어 보이지 않던 자아의 새싹이 조금씩 피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와 함께 사는 엄마의 입장은 다르다. 꽃 같던 아이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시기가 사춘기였다. 방글방글 웃던 표정이 사라졌고, 착 붙어 있어 늘 온기 있던 아이가 곁을 주지 않으면서 냉기가 흘렀다. 예쁜 말을 쏟아내던 아이는 못 같은 말만 골라서 했다. 사춘기는 부모에게는 잔혹한 어둠의 시기였다. 차라리 순서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아기 때, 쌀쌀맞고 청소년 때 다정해지면 어떨까? 부모에게 내리쬔 햇살을 한 순간에 빼앗아 간 기분이었다. 지하 감옥으로 가두는 것 같았다.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며 가장 힘든 건, 싹 바뀐 말의 온도였다.      


“엄마는 예뻐. 화장하면 더 예뻐.”

누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소통의 귀재처럼 같은 말이라 아름답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 살 좀 빼.”

“아빠 밥 먹을 때, 소리 좀 안 내고 먹을 수 없어?”


포장지에 싸지 않는 날것의 말들을 여과 없이 뱉었다. 정중함이라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머릿속으로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말 화살에 휘청거리다 쓰러지고, 마음을 추슬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보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그 부담감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보며     

“공부를 해야지 안 하면서 왜 이렇게 요란해?”

수행평가를 앞둔 하루 전날 영어를 외우고 있다가 잘 안 외워지자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차근차근해 봐.” 대신 “그러게 미리미리 외웠어야지. 그게 하루 만에 어떻게 가능하니?”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말하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화가 아이를 책망(공부 관련)하는 것이 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아이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우니 어른인 내가 변해야 했다. 그래서 검은 사인펜을 들고 노트에 제목을 썼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

못마땅한 점만 보이는 나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하루 하나씩, 아이의 좋은 점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가 끝나기 전, 미션처럼 하나를 써야 하니 아이의 행동에서 좋은 점에 포커스를 맞추어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잘 찾아졌다.      



1. 사춘기 한자 뜻을 엄마에게 알려주다니, 고마워.

2. <하이킹 걸즈> 책을 독서하다니, 사랑스러워.

3. 소풍 갈 때, 처음 지하철을 타는데 친구들을 이끌다니, 멋있어.

4. 흑백요리사를 보고 평소 안 먹던 음식 텃만쿵을 도전하다니, 놀라워.

5. 콧물이 나자, 스스로 학교 끝나고 병원을 찾다니, 대견해.

6. 친구에게 로블록스 게임 아이템을 빌려주다니, 배려심이 넘쳐.

7. 외할머니를 잘 챙기고,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물어보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8. 갈치 살을 예술로 발라먹어서 기특해.

9. 첫 중간고사 국어만 잘 본 것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

10. 친구들에게 과일의 샤인머스캣이 싸다고 하나씩 사가라고 권한 영업력 재능이야.      



등 한 달 동안 30개의 장점을 찾아 기록했다. 기록하는 중간에 아이는 틈틈이 엄마가 어떤 말을 썼는지 궁금해하며 내 노트를 펼쳐보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랑스러움에 미소가 번졌다. 이번 달 30개가 다 끝났다고 말하자, 아이는 다음 달에는 “35개를 써보는 건 어때?”라며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나의 화를 다스리려고 시작한 기록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좋을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동안 내가 아이의 성적에만 초점을 맞추어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 기록을 살펴보면 공부에 관련된 건 30개 중 2개의 항목이 다였다. 그 외의 삶에서의 장점이 28가지였다. 그렇다면 난 그동안 28가지의 좋은 점을 바라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놓치는 것이 많았다. 아이를 드론처럼 위에서 넓게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 기록은 부모로서 가져야 할 시야를 넓게 확장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 따사로운 시선을 멈추지 않으려면 아마 1년 내내 써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의 <아이의 장점 찾기 기록>을 하기를 권한다. 그러면 사춘기의 말로 우르르르 타오르는 화가 진화됨으로써 평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아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없어서 일기를 못쓰는 사람을 위한 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