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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하는 기록

by 하하연


먼 곳으로 이동할 때,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했어요. 하는 일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돈처럼 아까웠죠. 경주로 가족여행을 가는 길. 4시간이 걸렸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해서 듣고, 끝말잇기를 하고,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 먹고, 퀴즈를 풀어도 여전히 도로 위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이 더 남아 있었어요. 심심함을 달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우리 차 번호 중에 가장 높은 숫자 찾는 게임 할래?”제안했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보드게임을 많이 했는데, 거기에 아이디어를 얻은 걸까요? 차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나른했던 차 안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모두 열심히 차 번호를 찾기 시작했어요. 옆을 스치는 차가 어떤 번호일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가 먼저 찾을지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4012”남편이 먼저 번호를 외쳤습니다. 잠시 뒤, 아이가 “6078”을 외쳤습니다. 모두가 게임을 이기고 싶어서 말없이 집중했습니다. 아무 관심도 없던 도로 위의 번호판이 큰 의미가 되는 순간이었죠. 누군가 더 큰 숫자를 찾을 때마다 실점한 선수처럼 실망했습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초조해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이가 찾은 6078보다 큰 숫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착 3분을 앞두고 역전골을 넣은 듯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제 눈앞에 나타난 차의 번호는 9899였습니다. 로또 번호를 맞춘 것처럼 기뻤습니다. 거리에 차는 많았지만, 높은 숫자의 차는 얼마 없었으니까요. 저는 기뻐서 소리 질렀고, 둘은 아쉬워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에도 남편은 숫자 찾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남편과 아이, 둘은 승부욕에 불타올랐어요. 제가 그만하자고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숫자를 찾기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올 때 찾은 9899보다 큰 숫자를 찾기로 했습니다. 몇 시간을 열심히 찾아봐도 9899보다 높은 숫자는 찾기 어려웠어요. 엎치락 뒷치락의 맛이 없으니 쫄깃했던 게임은 재미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소득 없이 지쳐서 집에 도착했어요. ‘이제 끝났네.라고 생각하며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9940”

주차된 차 번호였습니다. 아이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최종 우승은 아이에게 넘어갔습니다.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역전승이었습니다.


곧 추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장거리 여행 시, 사람들이 직접 해도 좋을 것 같아서 이 방법을 SNS에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팁이라며, 시골에 가는 길에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SNS 친구인 H가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의 차 번호는 9998이었죠. 9998이라니, 이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흥분했습니다. H를 이길 수 있는 숫자는 9999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나마 1이라는 차이로 우승의 가능성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선 9999라는 차 번호가 있는지 알아보았어요. 검색창에 차 번호 9999를 쳤더니 있더군요. 그 과정에서 일 년 동안 연속적인 번호를 찾는 사람도 발견했습니다. 1111~9999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더라고요. 세상에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료한 도로 위에서도 우리는 즐거운 번호기록(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한 톨의 아이디어와 의지만 있다면 말이죠. 도구가 필요 없는 기록, 눈으로 하는 투명한 기록 <차 번호 찾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이 차 번호판 9999번을 찾았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최종우승이니까요.


도로 위에서 찾은 차량 번호 (큰 숫자 찾기)


* 기록해 볼까요? 큰 숫자의 번호 찾기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게임처럼 큰 숫자의 차량 번호를 찾아보세요. 반대로 가장 작은 숫자를 찾아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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