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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Jul 18. 2021

청년 주택 입주하려고 혼인신고했는데요

청년 주택이 시켜준 결혼

사람들은 결혼을 언제 하게 되는 걸까. 결혼 적령기의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아니면 프러포즈에 성공했을 때일까? 적어도 내 경우는 사랑이나 프러포즈 같은 로맨틱한 사건이 결혼의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저번에 얘기했던 서현역 오피스텔 계약 안 하기로 했어...

 주꾸미는 사실 결혼보다는 독립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 혼자 살아보는 것이 로망이라며 회사 근처 오피스텔, 아파트를 물색했지만 너무 비싸거나 회사에서 멀거나 아니면 담배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곳이었다. 몇 달을 부동산을 오가며 가계약까지 해놓은 곳이 있었지만. 뒤늦게 깡통 전세가 걱정되어 계약을 취소했던 날이었다.


혹시 나 여기도 넣어볼까?


집 찾기에 그만 시달리고 싶어서였을까. 여자 친구가 나에게 들이민 것은 청년 주택 신청서였다. 넓은 집은 아니었고 민간으로 공급되는 거라 월세도 비쌌지만, 위치가 괜찮았고 무엇보다 말끔한 신축이었다. 다만 작은 문제가 한 가지 있었는데 '신혼부부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


청년이 외면하는 청년 주택


프로포즈는 작년에 미리 해놓고서 언제 결혼할지 우물쭈물하고 있던 차였다. 추진력 부족한 우리에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청년 주택은 복잡한 결정들을 대신해 줄 뽑기 상자 같았다. 우리는 단호히 결정 내리기보다는 "이거 당첨되면 결혼하는 거다?" 라며 반 농담처럼 신청해버리는 대담함을 발휘했지만 결국 신청자가 미달되어 뽑기도 필요 없을 줄은 몰랐다.


준비된 것 하나 없이 집만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다니, 우리는 조금 억울했다. 혼자 결정 못하면서 대신 정해줘도 불만인 이런 꼬인 성격을 한껏 발휘해 혼인 신고 날은 일부러 만우절로 정했다. 청년 주택 입주를 위해 등 떠밀려하는 결혼이지만. 아니, 등 떠밀려하는 결혼이었기에 결혼이 거짓말 같기를 바랐다. 


등록기준지가 어쩌고 성본 합의가 어쩌고 하는 구닥다리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며 우리는 매해 돌아올 결혼기념일을 상상했다. 우리 정말 결혼한 것 맞냐고. 만우절인데 구청 직원분이 혹시 거짓말인 줄 알고 서류 접수 안 했을지도 모른다고. 뭐 그런 시시콜콜한 농담을 할 거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런 농담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렇다


드라마에서는 치렁치렁한 드레스 입은 신부 입장하는 장면이 결혼하는 장면이던데 어째 우리는 순서가 많이 뒤죽박죽이다. 해피엔딩이 결혼이라니 드라마라도 너무 드라마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저렇게나 축복받는 결혼식은 부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매해 돌아오는 거짓말 같은 결혼은 드라마 속의 결혼 보다도 좀 더 묘하게 로맨틱하여 꽤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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