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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Jun 08. 2020

30대 집돌이, 결혼 결심했습니다

'바지 벗어던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프로포즈

14살 집돌이의 꿈

어릴 적에 엄마가 커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난 나중에 혼자 살고 싶어. 그게 꿈이야"


억압받는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지는 않은데, 난 머리가 굵기 시작할 때부터 혼자가 좋았나 보다. 컴퓨터를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잔소리 때문이었을까. 맞벌이하는 부모님 덕에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는데도 혼자 살고 싶었던 걸 보면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을 거다. 어찌 되었든 중2병 겪을 시절부터 나의 꿈은 '혼자 살기'였다.  



혼자의 생활

작고 소중한 내 꿈을 이룬 지 이제 4년쯤 되었다. 30대 직장인의 솔로 라이프는 어릴 적부터 꿈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지는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두자. 냉장고에는 살찌기 좋게 콜라 한 박스와 맥주가 쌓여 있다. 건강을 생각해서 오늘은 콜라 두 캔만 먹기로 한다. 책상 위에 다리를 얹어두고, 시답잖은 소리 하는 유튜브를 시청하며 하루의 피로를 녹인다.


마음껏 탄산을 들이켜는 자유

 


청소와 빨래가 쌓여있지만 괜찮다. '내일의 나'는 아마 부지런할 거다.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분위기 있게 '고막을 녹여줄 트렌디한 팝송' 세션을 틀어놓고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글쓰기가 좋은 날이다. 아무도 날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심장 뛰는 소리마냥 마우스 커서가 고요하게 울린다.


배달 음식이 물려 된장찌개를 끓여 먹거나, 콩고를 죽일 뻔한다거나, 유튜브에 중독되어 잠 못 이루는  삶. 새벽까지 1일 3 깡쯤은 문제없는 삶이 바로 내가 원하던 '혼자의 삶'다.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지만 자랑하고 싶어 글까지 쓰는 일상이기도 하다.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치는 자유


첫 데이트는 결혼 약속과 함께

공식적인 첫 데이트 였을거다. 여자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사귀기로 했으면 결혼까지 해야 하는 거 아냐?"


여자 친구와는 학교에서 만난 사이이고, 친구라곤 많지 않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 말고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헤어진 사람과 얼굴 보고 지낼 정도로 쿨하지도 못하다. 다행히 여자 친구도 날 닮았는지 첫 데이트 날 우린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을 약속해버렸다. 유치원생도 아닌데 요즘 세상에 결혼 약속과 함께 시작한 연애라니... 그 후로 4년이 지났다.


여자 친구가 아내가 된다면

여자 친구가 나를 닮아가는 걸까. 아직은 부모님과 같이 살겠다고 말하던 여자 친구가 요즘 어릴 적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것 같다. 혼자의 생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생활을 꿈꾼다는 점은 다르다.


여자 친구가 아내가 된다면 어떨까. 명절에 조금 바빠지고. 챙길 사람이 늘어나고, 이래저래 신경 쓸 것도 많아 스트레스도 그만큼 늘어나겠지. 내가 하고 싶은 때에 하고 싶은 만큼 하던 일들이 이제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될 거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연애 때랑 별로 다르지 않다고도 하지만, '혼자만의 생활'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아쉽고 또 두렵기도 하다.


결혼하는데 아쉽고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쉽고 두려운 마음은 손쉬운 핑곗거리다. 그럼 결혼은 언제 해야 할까. 어릴 적 꿈은 이뤄봤으니 내 삶은 벌써 성공한 삶이라고 할만하다. 어렵게 성공한 인생, 이대로 작고 소중한 솔로 라이프를 누려도 좋겠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이제 새로운 꿈을 꾸어 볼 때도 되었다.



나도 여자 친구를 닮아가는 걸까. 함께하는 생활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쩌지... 꽤 괜찮아 보인다. '혼자만의 생활'을 양보하고서라도 함께하고 싶다. 결혼하자는 말을 로맨틱하게 하지 못하고 '바지 벗어던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다. 투박한 고백이라도 진솔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가 이런 서툰 고백을 받아준다면, 앞으로는 우리의 결혼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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