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끄러움에게

부끄러운데 더 부끄러우려고 쓰는 글

by 김지영

그렇게 고대하던 두 달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소감이 어땠냐구요?


라오스는 참 즐거웠고, 미얀마는 참 아름다웠어요.
인도는? 도착하자마자, 첫날부터 대판 싸웠어요. 하하.

인생에서 울언니말고는 아무랑도 싸워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거리를 지날 때 마주치는 흉흉한 눈빛부터 심상찮더니 아니 글쎄, 20루피짜리 길거리 음식 먹다가 처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는데 500루피라는 거에요. 맙소사. 거기다가 메뉴도 분명 2개 시켰는데 3개로 청구되어 있고-

여행객이라고 바가지를 씌워도 유분수지, 본때를 보여주겠다!

결심하고 성큼성큼 카운터에 다가가 돈을 돌려 달라고 외쳤죠. 엄청 우렁차게. 온 식당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어요. 나는 모두 한번 들어보시라고 더욱 의기양양하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모두들 코웃음을 쳤어요. 손님들은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아무튼 니가 다 먹지 않았냐고.


둘쨋날에는 숙소에서 짐 챙겨서 나오다가 성나서 뒤쫓아온 주인한테 붙잡혀서 또 실랑이를 했죠. 왜 방값을 안내고 그냥 가냐는 거에요.

아- 이렇게 사기를 치시는구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줄 수 없지-

하며 단호하게 어제 냈다고 박박 우겼는데, 숙소로 도로 끌려가 다시 계산해보니 딱 그만큼 돈이 남는 거에요. 아뿔싸. 바로 꼬리를 내리고 미안하다고 하고 돈을 내고 나왔어요.


하루는 사람들이 복작복작대는 낙타 축제에 갔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내 휴대폰을 쳐다보는 거에요. 힐끔힐끔. 그러다가 내가 쳐다보면 눈을 돌리고. 순간 나는 이걸 훔쳐가려나-싶은 생각에 휴대폰을 더욱 꼭 쥐고 같이 간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죠. 곁눈질로 계속 주변을 경계하면서요.


그런데, 우리를 비추고 있는 화면 속에서 신난 우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는 한 소년을 봤어요. 매우 수줍은 표정이었어요. 그 뒤로도 몇 장을 더 찍는데 조용한 수줍음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고개를 돌려 그 아이에게 같이 찍을래? 하고 손짓으로 말을 걸었어요. 그랬더니 그 조용했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활짝 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셀카봉을 한껏 더 길게 빼어 하늘을 향해 치켜올리자 이번엔 주변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셀카봉이 신기했고,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을 뿐이었죠. 이제야 마음 놓고 카메라 속 화면을 바라보는 이 수줍은 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1초라도 의심했던 마음이 너무 미안해졌어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내 편견에 진 것 같아요.


워낙 인도인은 어떻다 저떻다 하는 소리들을 많이 들어서. 인도간다고 할때마다 다들 엄청 말렸거든요. 그땐 아랑곳 않았죠.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하며 떠나왔는데 이미 머리 속에 쿵- 도장이 찍혀 있었나봐요. 이렇게 닫힌 마음으로 무슨 여행을 하겠다고!! 뒤늦게 반성하고 나자 옹졸했던 나의 행동들이 파바박 떠오르며 몹시몹시 부끄러워졌어요.


(특히 신발 꿰매준 아저씨, 10루피 깎으려고 해서 미안해요. 한 마디 흥정도 하지 않은 채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바늘을 잡던 아저씨의 그 표정이 지금도 너무 무거워요. )


그 뒤로는 어떻게 됐냐구요?
내가 먼저 인도 사람들한테 치근덕거리며 잘도 다녔어요. 음식도 얻어 먹고 자리도 바꿔 달라고 하고 내릴 때 깨워 달라고 부탁도 마구 하구요.

나는 과연 변한 걸까요?


글쎄요. 앞으로도 나는 계속 부끄러울 거에요. 아마.

나한테 실망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

부끄러운만큼 배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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