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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Apr 11. 2021

고독을 판매하는 고독지기가 된 이유

고독지기의 고독한 일지

Q. 고독스테이는 어떤 곳인가요?

고독스테이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디지털 기기와 사회적 연결로 부터 단절되어 온전히 자신과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에요. 낮에는 사색을 위한 카페같은 공간이기도 하고, 고독에 마음껏 잠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하며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공간이기도 하죠. 밤에는 템플스테이 같이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다녀가신 손님들이 "나만의 아지트, 쉘터, 고독의 요새, 힐링 방탈출" 같이 다양한 단어로 이 공간을 정의해주시는데 실제로 그렇게 느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머무시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과 공간이 온전히 방문해주신 손님의 것이 되는 곳입니다.

비어있는 시간과 공간을 최대한 느리게, 마음껏 쓰시길 바라고 있어요. 
Q. 그럼 고독스테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처음 구상하게 됐나요?

직관적으로 떠올린 개념과도 같은 단어였어요. 나한테는 '고독' 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 많이 하고 살았었거든요. 예전 일기를 뒤지면서 보니까 고독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2년 전부터 써놨더라고요. 원하지도 않는데 쏟아지는 정보에 질려 있었어요. 넘쳐나는 말과 관계, SNS, 뉴스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벗어나기 힘들었죠. 막상 그 모든 것을 단절한다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책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다닌 이후로는 제대로 집중해서 책을 읽은 시간이 너무 없어져서 스스로에게 자꾸 실망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원하지만 내 의지로는 부족하니 어디 날 가둬두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 게 발단이죠.


 다이어트도 음식을 못참으면 단식원에 들어가듯이
디지털 사용도 못참으면 들어갈 '디지털 단식원' 같은 건 없을까?
이런 생각이었죠. 


그래서 고독을 키워드로 이런 저런 기획을 해보기도 하고요. 모두 실행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디어가 많았어요. 하지만 어쨌든 고독스테이의 핵심은 '고독하게 머무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그대로 가제처럼 고독스테이라고 불렀는데 돌고 돌아 그게 공식 이름이 되었네요.


Q. 고독스테이의 컨셉과 브랜딩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사실 처음에 브랜딩을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 먹고나서는 디자인하는 친구나 공간, 문화기획에 관심있는 친구들에게 컨셉, 아이디어를 던지면서 여러가지로 이야기해봤어요. 아예 세상과 극단적으로 단절하고 수련하는 '봉쇄수도원'같은 곳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템플, 사원, 수도원같은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이름에 살리되 너무 무겁게 가져가지 않는다던지, 이름에 비유적인 뜻을 담는다던지 여러 방향으로 고민을 했죠. 로고 시안도 원래는 다른 이름으로 뽑았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이 공간을 설명하려다보면 '고독, 스테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마침 '템플스테이'처럼 익숙한 단어가 있었고 호캉스, 혼캉스 같은 조합도 익숙해지는 시기라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되 기존의 개념에서 연결되어 연상할 수 있는 이름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컨셉의 방향은 원래 확실했지만 오래 고민하며 안고 있었는데 로고와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되고 나니 오히려 실제적인 공간 구성과 프로그램은 빠르게 구성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베타 서비스를 빠르게 실행하고서 손님들과 심도 있는 인터뷰, 사후 설문 및 내용 분석을 통해 프로그램은 더 세심하게 다듬고, 브랜딩의 방향성은 더 확고히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앞으로도 브랜딩을 더욱 풍부하고 선명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전에는 '고독'을 주제로 어떤 기획을 했었어요?

 이번에 본격적으로 브랜드 컨셉을 구상하면서도 친구들한테 이야기해보면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들어오기 전에 휴대폰을 뺏어서 작은 금고에 넣어둔다 거나, 혼자 명상할 수 있는 도심 속에 작은 동굴 같은 곳이라거나. 그런 아이디어들이 부분부분 여러 노트들에도 적혀 있어요. 


혼자서도 고독을 위한 여행을 종종 떠나고, 작년 여름에는 한달 반 정도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한옥에서 혼자 지냈어요. 논밭을 따라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책과 글을 쓰는 단순한 일상을 보내며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았던 시간이 실제로 많은 영감을 주었죠. 


그런데 템플스테이를 가서든, 시골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면 지금, 여기에 제대로 몰입하기가 너무 힘든 거에요. 사실 어디에 있든 스크린을 보고 있을거면 몸이 어떤 공간에 있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래서 건강한 고독을 위해 디지털 디톡스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특히 작년에 강원도와 서울의 문화기획자간의 교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각자의 욕망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때 제가 떠올린 키워드는 '건강한 고독'이었어요. 춘천의 중도유원지라는 섬 자체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고독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했죠. 유입되는 정보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나가는 거에요. 그렇게 사람들이 각자의 고독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순간을 오롯이 만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표정을 보았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 브랜드를 구성하고 있는 파편들이 사실은 그 전에 흩뿌려 놓은 것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서 조화를 이루게 붙여서 하나의 꼴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일은 결국 내 안 깊숙이에 있는 욕망을 
더듬더듬 찾아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Q. 고독을 공간이라는 형태로 경험하게 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공간을 만드는 일’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많았어요. 배낭 하나만 들고 떠돌던 배낭여행자 시절에 대한 반작용인지 이후로 갑자기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 채운 공간에 대한 욕심이 솟아 올랐어요. 처음엔 좋아서 공간을 만들었는데 에어비앤비, 대관 등 사이드로 수익을 안겨주는 좋은 수단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이후로는 공간을 활용한 비지니스 모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직업적으로도 조금 넓은 단위이긴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일을 했었어요. 문화예술로 지역재생하는 모델에 대한 연구사업을 하기도 하고 유휴공간을 활용해서 지역의 공동체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죠. 그런데 직업적으로 문화기획, 지역재생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하다보니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로 채우고 싶었어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그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을 가진 매력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어요. 


나만의 브랜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야할까 느슨하지만 오래 고민해오던 와중에 ‘고독’이라는 키워드를 발굴하게 되었어요.
Q. 고독을 즐기는 타입이신가요?

말하자면 고독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저는 정말이지 에너지가 넘치는 여행가였거든요.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각 여행지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자체를 정말 즐겼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질리게 될 거라곤 정말 상상할 수 없을만큼 누구와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되어 대화와 삶을 나누는 것에 자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정말 나답다고 생각했죠. 나라는 형상은 그렇다고 굳게 믿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도 불변한 어떤 것처럼 믿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거에요. 흥미롭지 않은 거죠.



여행의 패턴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북미에서 로드트립을 할 때나 남미, 인도, 동남아 등을 배낭여행 다니던 시절에는 계속해서 현지인을 만나고, 여행 친구를 사귀고,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을 하며 고생을 사서 하고 새로운 모든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시간을 겪고 나서는 고요함을 찾아 다녔던 것 같아요. 요가를 본격적으로 수련하면서 발리, 인도, 태국같은 곳에 혼자 오래 머무르며 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종류의 명상을 시도하고, 공부하고, 수업을 찾아다녔어요. 수련이 끝나고 난 다음에 방 안에서 일기를 쓰는 시간이, 혼자 고요하게 마주하는 매일의 일몰이 쪼그라져 있던 제 몸과 마음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조금 더 힘을 내어 실험 공동체라던지 궁금했던 도시들에 찾아가 머물며 새로운 삶의 형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한국에 와서는 템플스테이도 가고,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으로 종종 여행을 떠나고 있어요. 

Q.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무른 나인 거에요. 내 생각에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던 나로. 그 모습을 나로 믿고 고정시켜놓은 것처럼. 그 뒤로 변화나 성장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죠. 사실 그 이후에도 좌절을 많이 했지만 시도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희미해진 나를 발견하는 게 싫어서 새로운 만남이 부담스러워졌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시도를 계속하고 끝까지 밀어 붙이지는 못하는 것에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도 있었는데. 그래서 얕은 우울과 같은 단계에서 무기력도 오래 겪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걸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시작을 잘하는 사람! 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부단히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힘이더라구요. 


나는 아직도 내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내가 어떨 때 행복한 지 계속해서 탐구하고 싶고,
내가 사랑하는 순간을 만날 기회를 나에게 더 많이 주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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