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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an 20. 2021

시골 한옥에서의 여름, 한달 동안 혼자 살아보다.

건강한 고독, 소소한 행복

여름 동안 싱그러운 초록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는 작은 한옥,
전라남도 강진의 어느 한옥에서 살게 되었다. 



소박해서 아름다운 마당 속에서 소소한 여유를 물씬 누릴 수 있는 다정한 곳이었다. 순하디 순한 진돗개 산이와 에너지 넘치는 프렌치 불독 돌이, 새침한 고양이 양양이가 일상의 활기를 더했다.


 사실 이 한옥집의 사진을 처음 받은 순간부터 이곳에서의 하루를 매일 상상하며 미리부터 행복을 만들어냈다.



아침에는 조용히 차 한잔을 하며 마당을 바라봐야지,

텃밭에서 제각각의 속도로 자라고 있는 토마토는 매일 세심하게 살피며 방울방울 따 먹어야지,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에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


생각보다도 더욱 이 작은 마을에서의 시간은 단순했다.

마을 구경이래봐야 10분이면 뚝딱 끝나버렸다. 도암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큰길(=유일한 이차선 도로)를 걷다보면 마을의 모든 가게와 공공시설을 만날 수 있다.  소소원 이름처럼 소박한 이곳의 풍경이 소소하게 스며든다.


아침의 일과는 생각보다 바쁘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일언 창호지 바른 문을 모두 열어 젖혀 환기를 시켜주고 대청마루의 문도 접어서 올린다. 대청마루에 앉아 슥슥 커피를 갈아서 향기를 맡으며 내린다. 


조금 출출해진다 싶으면 계란 후라이를 하나 해서 접시를 추가로 올린다. 하지만  끽해봐야 이동동선을 생각해보면 대청마루 건너 옆방으로 건너가는 수준이라 복잡할 것이 없다.  



밥 먹으러 나갈 때도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식당은 딱 세군데. 메뉴는 모두 백반. 산책 코스도 항상 똑같다. 큰길에서 살짝 옆으로 빠지는 길로 올라가면 드넓은 논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난 흙길을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돌아온다.


누군가와 딱히 말할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외로워 질 일도 없었다. 산책 때 가끔 마주치는 할머니들은 프렌치 불독인 돌이가 돼지인지, 강아지인지를 궁금해할 뿐 별다른 질문은 더 하지 않았다.


대청마루를 마주 보며 일을 하다가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온 것 같으면 책을 들고 대청마루에 걸터 앉는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천천히 책장을 넘겨본다. 자연이 만드는 조명에 비추어 책을 읽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해가 내려가는 속도를 못 따라 잡을 때쯤 책을 놓고 눈을 잠시 감아본다. 


밤이 까맣게 가라 앉으면 풀벌레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날벌레들이 툭툭 떨어지는 마루의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쓴다. 


비슷해서 왠지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은 하루의 반복이 괜히 감사해진다.


산책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들
마당 텃밭. 빨갛게 익을 때마다 하나씩 골라 따먹던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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