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주아빠 Feb 14. 2024

새벽 루틴

아이 둘 아빠의 매일 아침 맞이하기


나의 하루는 대체로 5시 30분에 시작한다. 

5시 30분에 시작하려면, 알람은 1시간~30분 이른 4시 30분~5시 사이로 맞춰야 한다.

일어난 직후에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을 못 고치기도 햇고, 물 한 잔 마시고 어슬렁거리고 하다보면 30분은 훌쩍 지나간다.


월화수목금 평일은 이렇게 지내고, 주말은 알람을 세팅하지 않고 나를 내버려둔다.

이렇게 두면 대개는 주말에는 6시 30분 정도 깨는 것 같다. 나름 늦잠이다.




아침을 고집하게 된 건 첫째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난 뒤 100일 무렵이었던 것 같다. 퍽이나 잠이 없었던 첫째 덕분에 낮이나 밤이나 늘 부족한 수면으로 눈이 무거웠다. 팀 프로젝트 발표자료를 만들던 즈음, 밤 9시에 이르게 잠이 들었다가 새벽 3시에 깼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새벽 두 시간을 몰입해서 PPT를 완성했다. 얼마만의 몰입감이었던지, '제약이 창의성을 만든다'는 경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래서 최근에 본 영상 중 공감하며 웃었던 영상이 있다. 세계적인 투자사 Y Combinator의 폴 그레이엄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스타트업 창업에 관한 강연이다. 한 대학생이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플 그레이엄은 '아이를 낳으세요' 라고 답한다. 


그 사건부터 새벽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3년 후 둘째가 나오면서, 그리고 와이프가 복직하면서, 두 아이의 등원을 내가 도맡게 되었다. 아침에 두 아이가 깨는 시각부터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나를 위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 때 잠들어버리고 (혹은 더 빨리 잠들고) 먼저 깨서 새벽시간을 찾는 일이 차츰 늘었다.




그러다 작년 봄부터는 마음먹고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1년 즈음 습관을 열심히 들인 덕분에, 새벽의 일들이 루틴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새벽은 특별한 것 없이도 정말 특별하다. 하루를 계획하기, 달리기하기, 산책하기, 책 읽기, 아주 가끔은 게임하거나 유튜브 보기. 이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행동은 산책이다.


산책을 하면서 혼잣말을 제법 한다. 머릿속으로 웅얼거리면 하나도 안 풀리는 것들이, 입 밖으로 내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마법을 경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너가지 프로젝트 중 뭐가 제일 중요한지 감조차 못잡을 때, "뭐가 제일 중요하지?" 라고 내뱉고 중얼거리기 시작하면 뭐든 결론이 나온다. 


때로는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을 새벽에 끝내버리기도 한다. 회사에서 점심시간 포함하여 9시간 자리에 앉아있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 뿐이다. 그 시간을 미리 당겨서 더 몰입도 높게 쓰는 것이다.


이런 새벽을 보낸 날은 회사에서의 하루가 상당히 여유롭다. 회사에서는 예기치 않은 일정들이 늘 치고 들어오는 것도 많고, 내가 일하는 것보다 팀 동료들이 일하는 것을 돕거나 잘 위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시간을 '내 것'으로 쓰는게 오히려 비생산적인 경우가 많다. 


일주일에 두 번 아침 6시마다 테니스를 배우기도 했다. 와이프가 7시 전에는 출근해야 하기에, 레슨 코트까지 이동시간을 고려해서 첫 타임을 고정해서만 배울 수 있었다. 작년 12월 영하 13도에도 패딩 껴입고 (이 악물고) 야외코트로 나간 것은 스스로 칭찬하는 대목이다.


요즘은 수요일 아침마다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다. 열심히 일어난 새벽에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눈 딱감고 시작했다. 내돈내산이라 빼먹을 수도 없다. 


글로 쓰고 보니,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안그래도 빡빡하게 채워진 하루의 일과에 새벽까지 할 일들을 채워넣어서 아침부터 너무 분주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매일을 허겁지겁 살아가지 않도록' 열심히 방어해준다. 때때로 뜬금없이 밀려오는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버거울 때도, 겁을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새벽은 나로 하여금 '그런 따위의 것'들을 곰곰히 생각케하고, 따져보고 무게를 내려놓도록 돕는다.




그리고 새벽을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나의 상황과 환경에 감사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새벽길을 산책하다보면, 이러한 새벽을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새벽 노동을 하는 사람들, 또는 새벽부터 통근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 애초에 출근시간이 빠른 친구들. 



오늘도 치열하게, 여유롭게, 감사하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짧은 글을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공간, 회사의 공간, 거실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