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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아빠 Mar 31. 2024

막스 베르스타펜을 위한 AI

F1 레이싱이 알려주는 제품 분석 인사이트

F1: 본능의 질주


최근 몇 년 사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F1: 본능의 질주> 시리즈를 재밌게 감상해오고 있다. 이 오리지널 시리즈는 경기의 중요한 순간을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전할 뿐 아니라, 감독, 선수, 스폰서, 기자들의 인터뷰를 예리하게 편집하여 F1 산업의 총체적인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F1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엔지니어링의 세계에 대해서는 조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F1에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데이터 기술과 제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막대한 돈이 투자되는 스포츠 종목인 만큼, 좋은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레이싱 의사결정


F1 레이싱은 드라이버의 기량과 차량의 성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데이터와 AI가 또 다른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F1 팀들은 수백 개의 차량 센서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레이스 전략을 수정하고, 경기 전과 후에 다시 분석한다.


레드불 레이싱팀의 감독 크리스티안 호너는 "AI와 머신러닝은 F1 레이싱에서 빠르게 부상하는 주제"라며, "우리가 생성하는 데이터의 양, 시뮬레이션 방식 등을 고려할 때, 이 두 영역은 트랙 시간이 줄어들수록 의사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레드불 팀의 데이터 최전선에는 한나 슈미츠 전략 분석가가 있다. F1 차량은 평균 시속 360km/h 이상으로 달리는데, 시속 300km/h가 넘는 속도에서의 추월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슈미츠를 비롯한 전략 분석가들은 상황들을 경기 중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감독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밀착해있다.


F1 레이스에서는 매 순간 수많은 데이터가 생성된다. 차량에 부착된 200개 이상의 센서가 초당 수백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한 경기를 마치면 400기가가 넘는 데이터가 수집된다. 이 중에서도 슈미츠가 가장 주목하는 데이터는 "타이어 마모도와 추월 난이도"다. 코너를 돌 때마다 변화하는 타이어의 상태, 그리고 트랙의 특성과 날씨, 다른 차량의 위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추월 가능성은 복잡한 변수다.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분석가는 대회장소에 맞는 시뮬레이션을 준비한다.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실제 레이스에서는 랩타임은 예상보다 느려지고, 타이어 상태는 기대보다 안 좋아진다. 따라서 레이스를 진행하면서 초기의 시뮬레이션을 즉각 업데이트하는 것은 필수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한다는 의미다.


레드불 전략 분석가 한나 슈미츠(Hannah Schmitz)



피트 스톱: 승리를 위해 추월을 허용하는 결정


2019년 브라질 레이스에서 슈미츠의 데이터 기반 전략은 빛을 발했다. 그녀는 막스 베르스타펜을 피트 스톱에 불러들이는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트 스톱이란 레이스 중 차량을 잠시 멈추고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빠른 수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차량은 pit lane이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와 정지하게 된다. 피트 스톱은 레이스 전략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 타이어 교체 시점과 횟수에 따라 레이스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트 스톱을 할 때마다 소요 시간만큼 레이스에서 뒤처지게 되므로, 이를 결정하는 것은 늘 고민스러운 문제가 된다.


슈미츠의 결정은 당시 선두를 달리던 해밀턴에게 자리를 내주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측 모델은 새 타이어를 장착한 베르스타펜이 해밀턴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베르스타펜은 피트 스톱 이후 놀라운 속도로 해밀턴과의 격차를 좁혀갔고, 결국 그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가장 빠른 차가 항상 우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슈미츠의 말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직관이나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제 F1에서 레이싱 전략 수립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 되었다. 레드불 감독 호너 역시 "AI는 레이스 전략의 이해와 계획에 분명히 도움이 되고, 특히 공격적인 레이싱 상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강력히 이야기한다.



제품개발 생각해보기


그렇다면 이러한 F1의 데이터 기반 전략은 제품 개발에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까? 물론 F1과 제품개발을 동일한 선상에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F1은 명확한 목표, 즉 레이스에서의 승리가 주어지는 반면, 제품 개발이나 회사 경영은 훨씬 복합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공통점은 분명하다. 우선 F1 처럼 사용자 행동 데이터나 불만족 피드백을 빠르게 분석하고 대응하는 민첩성이 요구된다. 에어비앤비가 초기에 직접 호스트를 만나며 서비스를 개선해 나갔듯이 말이다.


레이싱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또한 제품 개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F1에서 각 전략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비교하고 레이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레이싱 전략을 업데이트하고 대회 이후 차량을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고 경쟁자와 시장의 논리를 예상하여 추정치를 분석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시장에 제품을 선보인 뒤 기존의 시뮬레이션과 비교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것과도 닮아있다.


F1 팀들이 활용하는 예측 모델도 마찬가지다. 과거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목표지표 달성 정도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데이터 제품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물론 F1처럼 명확한 변수와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만큼 정확도 높은 예측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예측모델을 반영한 데이터 기반 제품이 불확실성을 줄이고 목표지표의 전환율을 지속적으로 높인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F1에는 비용 상한제(Cost Cap)라는 게임의 룰이 있다. 이는 팀들이 자원을 배분할 때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품 개발 조직, 특히 스타트업은 이를 꼭 닮았다. 한정된 시간과 인력, 예산을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할 때, 데이터는 강력한 기준점이 되어준다.



그런데, 이게 정말 특별한가?


사실, 개인적으로 F1의 데이터 활용 사례가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은 이제 대부분의 기업에서 추구하는 기본 방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F1 레이싱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시사하는 바는 바로 데이터 활용의 '질'에 있다. 데이터를 얼마나 '집요하게, 제대로' 활용하느냐가 결국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선 사례는 데이터를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구체화하고 전환해내는 능력이야말로 데이터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참고로, F1 팀들은 대회 전 단 3일간의 테스트 주행만이 허용된다. 레이싱 전에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석가와 감독은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호너는 "우리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이는 우리의 파트너십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긴 테스트 기간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일수록, 제한된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이 빛을 발한다.


이러한 제약은 제품 개발 조직에도 교훈을 준다.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를 단순히 모니터링의 대상으로 여기는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완벽한 데이터와 풍부한 사용자 정보를 확보하려 애쓰느라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F1 팀들은 불과 3일간의 테스트 주행 데이터만으로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는 주어진 데이터 안에서 최대한의 인사이트를 이끌어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데이터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는, 그 데이터를 얼마나 가치 있는 '정보'로 변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태도가 결정짓는다


F1 레이싱 카와 엔지니어링 팀은 스포츠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술의 한계와 게임의 제약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KTX 열차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과정에서 초기 결정과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점, 대회 당일의 컨디션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점, 주행 상황의 물리적 변수를 모두 고려하기 어려운 점 등 불확실성은 상존한다. 그럼에도 데이터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그들이 데이터를 파고드는 과정은 그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잘 쓰기 위한 ‘꿀팁’은 따로 없다.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꾸준히 분석하며,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고, 도출한 인사이트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일련의 과정을 성실히 반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결국 데이터 활용의 핵심은 기술이나 툴이 아닌, 이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는 것 같다. 즉, 이런저런 불확실과 불완전을 인정하고 데이터에서 신호와 정보를 발견해가려는 태도가 출발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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