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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n 02. 2020

요괴를 물리치는 법

가십의 대상화를 거부하기

“다들 그렇게 생각해.”     


살면서 들은 충격적인 말 5위 안에 드는 말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들 그렇게 나를 안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고, 나를 싫어한다니. 믿었던 친구들이 뒤에서 자기들끼리 내 험담을 했다는 것은 나도 이제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워지지가 않고 계속해서 움츠러 들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곳에서 내가 어떻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으므로.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움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마음이므로.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도무지 누구인지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탄로났다. 그리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이러한 말을 일삼는 사람들의 계략과 모함 또한 알게 되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로 너의 존재 자체, 너의 행동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남들에 대한 근거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위조된 것일 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본 적도 일일이 묻는 수고를 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이 내가 밝혀낸 진실이었다. 이는 나를 더 처참하게 무너지도록 만들기 위한 음모였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오직 자신만의 의견과 입장을 전달하고 심지어 남들이 상대를 좋아하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싫어할 때는 세상 모든 사람을 다 갖다 붙이려고 한다. 좋아함의 이유를 대는 것보다 싫어함의 정확한 이유를 대는 것이 때로는 더 힘들고 이미 자신의 싫어함에 스스로 정당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만 남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이라는 자체가 근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교묘하게 타인을 조종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자신은 선량한 사람으로 남겨둔 채 모두를 끌어들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다들과 싸울 각오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싸울 힘도 없는 사람은 그저 침울해지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대화전문가는 아예 대놓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라고 가르친다. 상대를 내 뜻에 맞게 움직이게 하거나 설득하려면 나를 근거로 놓지 말고 모두를 끌어다놓고 이야기하라고 말이다. ‘모두가 그렇다’라고 말하면 상대가 쉽게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다고 말했어.”

 “그런 말을 하면 모두에게 미움 받아.”

 “회사 사람 모두가 네 복장을 싫어할 걸.”     


이처럼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감추라고 말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도 뭣도 아니고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저런 말을 들은 대상자의 고뇌와 고민을 넘은 고통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모두 앞에서 한 개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폭력적 방법을 알려주다니. 대화전문가가 아니라 거짓말 제조자라고 하자. 화자와 상대의 싸움을 모두와 상대의 싸움으로 변질시키고선 상대를 내 뜻대로 조종하겠다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어찌 선할 수가 있을까.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좌절을 낳는 방법, 그 사람의 좌절을 무시하는 방법, 상대를 세상과 싸우게 해서 지치게 하는 방법이라고 타이틀을 바꾸어야지.


누군가가 모두를 등에 업고서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좌절과 상처를 주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를 금방 알아차리고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해 주어야 한다. 개인 대 개인의 싸움 혹은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대 입의 싸움을 타인과의 거대한 전쟁으로 바꾸려는 자 앞에서는 사소하고 별거 없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너와 너의 근거가 별다른 인과가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저 네가 요괴라는 것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거겠지.”

 “내 복장 갖고 뭐라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한테 직접 이야기하겠지. 다들 말 못하는 벙어리도 아니고.”     


남들 이야기는 남들에게 직접 들을 테니까, 너는 네 이야기만 하라고 돌려주는 거다.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은 너이지 모두가 아니라고. 실체가 불분명한 모두를 방패막이 삼은 조막만한 너일 뿐이라고. 무엇보다 나는 내 뜻대로 살아갈 용기와 내 뜻대로 옷을 입을 자유가 있다고.   

   

그리고는 요괴를 떠나는 것이다. 사람과 요괴는 애초에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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