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기 : 19주 1일차
임신 16주 차에 2차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 77:1 확률의 검사 결과를 받았다. 기형아 검사 결과 이후, 약 20일이 지났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유민이는 니프티(NIPT) 검사 결과 저위험군이 나왔다.
루나스캔 검사는 NIPT (Non-Invasive Prenatal Test)이라고 불리는 비침습적 산전 검사입니다. 산모의 혈액을 채취하여 태아의 DNA를 분석하여 염색체 이상 여부를 검사합니다. 정확도가 높고 부작용이 적어 임신 중 염색체 이상을 검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경우, 태아의 염색체 이상 위험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검사를 받고 약 18일 지난 시점이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린 약 20일간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틈날 때마다 떠올리는 편인데도 나는 생각보다 잘 지냈다.
남편 팡민이가 늘 곁에 있어 주었고, 우린 정말 희망적인 이야기만 했다. 나는 종종 팡민이에게 결과가 확진이면 어떻게 하냐, 저위험으로 나와도 니프티 결과도 확률적인 거라 안 맞을 수도 있다고 하는 데 어떻게 하냐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근데 팡민이는 내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떠오르지도 않는다고 했다. 무조건 정상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신 전부터 아기 계획이 있었으니까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으로 아기 인스타 계정이 자주 떠서 보곤 했는 데, 그중에 다운증후군 아기의 엄마 인스타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니프티 검사라는 걸 잘 알지도 못했는 데, 기억이 또렷한 내용이 아기가 니프티 검사에서 정상이었지만 낳아보니 다운증후군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니프티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불안함이 있었다. 그냥 양수 혹은 양막 검사를 해서 100퍼센트 확진을 받을 걸 그랬나..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냥 혹시 있을 확률에 대해 모두 미리 대비하거나 결정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모를 결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가 다운증후군 확진이라면 우리는 아기를 보내주기로 이야기했다. 물론, 정말 그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런 결정을 하고 아기를 보내주고 나면 신체보다 정신적인 상처를 회복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여러 가지 합리화 중에 내가 가장 스스로를 보호하고 납득할 수 있는 합리화 근거를 찾으려 머리를 썼다... 이런 나 자신에게 매우 실망스럽고 뱃속 아가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아픈 아이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형편이 안된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평생에 걸친 아주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등등의 것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나는 불행한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사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탓하다 결국 스스로를 탓하는 결말로 살 것이라는 근거가 가장 와닿았다.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근거였다. 불행한 엄마, 아빠와 사는 자식의 삶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딸자식으로서, 그게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매일매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꼭 장애나 불치병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임신하고 나서는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내가 행복해야 팡민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우리 강아지들이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유민이가 행복하다고. 이 믿음과 신념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건 꼭 내가 '나'이거나, '엄마'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 집단에 속해 살며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다. 남편이 불행해도, 엄마, 아빠가 불행해도, 딸이 불행해도, 친구가 불행해도 불행해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한다면 나의 행복부터 관리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들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꼭 나부터 행복해지기를. 그래야 곁에 있는 누구라도 내가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팡민이와 결정해야 할 모든 이야기를 결정하고 나서는 나도 그냥 유민이가 정상의 건강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20일을 보냈다. 문득문득 들이닥치는 소나기 같은 불안함 들은 그저 가만히 맞으며 잔뜩 쏟아붓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기다리는 기간 중에 첫 번째 태교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괌 여행 4박 5일이었는데, 아빠 친구분이 괌에 계셔서 아빠를 모시고 팡민이와 함께 다녀왔다. 아빠를 모시고 다녀온 후기는, 태교여행이 아니고 효도여행이었다는 이야기..ㅎㅎ 폐암 말기로 6년 차 보내고 계신 우리 아빠는 여행 내내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셨다. 남편도 안 피는 담배라 임신 중 담배에 노출될 일이 없는 데, 아빠랑 여행 내내 담배냄새를 맡으니 힘들었다.
괌에 여행 동안에도 계속 검사 결과를 기다렸는 데, 마지막 날에는 우울하기도 했다. 이제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 데 연락이 오지 않고, 유민이는 조금씩 배에서 존재를 알려왔다. 19주 차가 되면서부터는 배꼽 아래 부근에서 갑자기 꿀렁하는 아주 이상한 기분의 내 의지나, 내 장기? 의 움직임이 아닌 것이 더 자주 느껴지곤 한다.
괌에서 돌아온 토요일은 늦은 저녁이었고, 일요일에도 하는 산부인과였지만 나는 전화를 하기가 겁이 많이 났다. 결과가 안 좋아서 늦어지는 거면 어쩌지.. 먼저 전화하기가 무서웠다. 그래도 월요일이 되자 이제는 미룰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오전 내내 복잡한 생각 속에 아이가 둘 있는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전 까지는 친구들에게는 말 안 하려고 했었다. 며칠을 담아뒀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바로 울음이 터졌었다.
속 시원하게 울어재끼고 용기를 내어서 병원에 전화를 했는 데, 문자가 이미 나갔다고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해외에 있어서 문자 발송 실패가 된 모양이었다. 결과는 저위험이고, 내가 2차 기형아 검사에서 고위험을 받은 걸 몰랐는지 "성별이 궁금하셔서 전화하셨어요?" 하셨다.
성별은 사실, 15주 차, 17주 차에 초음파를 보러 가서 알고 있었다. 15주 차에 딸이라고 들었고 17주 차 갔을 때도 딸이라고 하셔서 팡민이는 매우 좋아했었다ㅎㅎㅎ 성별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자세히 써보고 싶어서 다음 편으로 미뤄보겠다!
그리고, 우리는 양수/양막 검사는 추가로 진행하지 않으려 한다. 팡민이는 2차 기형아 검사는 잘못된 거라고 하고 니프티가 더 정확하고 그게 맞다고 또 강력히 믿는 듯하다. 나는 문득, 임신 전에 본 다운증후군 아기 이야기가 떠오르긴 하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있을 많은 확률에 대하여, 미리 걱정하며 불안 속에 살기보다는 지금 행복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우리 유민이에게 0.1% 라도 위험 할 수 있는 확률의 양수 검사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혹시,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냥 확진 검사를 진행하는 게 좋겠지만 나도 그냥 믿으려 한다. 이제부터 유민이를 만날 때까지 더 이상 혹시 하는 확률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 결정했으니, 그게 좋겠다.
입덧이 아주아주 조금 정도. 침맛 조금 이상한 정도 빼고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멀미도 거의 하지 않는다. 임신한 친구가 20주부터는 완전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했는 데, 곧 20주가 되어가니 요즘에는 운동도 슬금슬금 시작하고 있다.
모두들, 건강한 아기를 행복하게 만날 수 있도록!
임신 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행복한 엄마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