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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lly Cheon Oct 04. 2023

09 전통, 그 촌스러운 것

지나간 것들의 가치

카테고리 : 플레이스

이름 : 도원22

주소 : 서울 중구 마른내로 17 2층

인스타그램 : @dhowon22_bar


파트 01 “전통그 촌스러운 것


유럽의 도시를 처음 여행했을 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의 경우 수백, 수천 년이 지난 옛 도시의 겉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간과 기술 발전의 흐름을 반영하여 그 안을 지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모습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많은 곳을 여행해 보진 못했지만, 유럽 몇 개 도시와 호주 시드니, 멜버른을 여행하며 그 겉모습에서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느꼈던 지점이었고, 저뿐만 아니라 유럽을 좋아하시는 여행자들은 그들이 오랜 시간 간직해 왔던 그 전통적인 것들에 제가 느꼈던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면서 가장 크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들 또한 같은 것이었습니다. 외세의 침략, 6.25 전쟁 등 큰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진 땅 위에, ‘경제 성장’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빠른 성장을 이룩한 나라이기에 가진 것들의 가치를 지키기보단 마주한 오늘과 다가올 미래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점점 전통보단 트렌드, 유지보단 성장을 바라보며 바쁘게 나아가는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들이 마냥 ‘오래된 것’, ‘촌스러운 것’으로 평가되고, 더욱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나라들의 것들만이 ‘좋은 것’, ‘힙한 것’으로 평가되는 모습들에 개인적인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작은 부분에서 아주 사소하고, 작은 움직임들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우리 것’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조선 시대, 한복, 경복궁 같은 것들만이 생각났다면 점점 ‘우리 것’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땅 위에 세워진 건축물과 일본, 중국, 서양 등 다양한 문화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정제시킨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다른 것들이 섞이고, 빠른 변화 아래 새롭게 지어진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우리의 방식으로 유지하고, 조화롭게 섞고, 아름답게 정제한다면 결국 그것들 또한 ‘우리 것’ 아닐까요?


이런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흔히 우리가 ‘힙지로’라고 부르는 을지로 인쇄 골목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전성기 “영화의 거리”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을 모였던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는 영화 산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쇄, 출판 관련 기업과 산업들이 밀집해 있어 “인쇄의 거리”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산업 생태계는 을지로와 충무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전통적인 인쇄 및 필름 산업이 축소되고, 점차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쇠락의 과정 속에 그곳을 다시금 현재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것은 이 곳이 가진 ‘우리 것’에 대한 매력을 기반으로 시간의 흐름에 맞는 것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었습니다.


혼란스럽게만 느껴졌던 네온사인과 간판을 한국적인 매력으로 만들고, 사라져 가던 인쇄소와의 상생을 통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지역으로 탈바꿈시켜 지역의 가치를 전달하고, 근대의 것과 현대의 것들을 조화시킨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그 노력.


이런 변화는 ‘힙지로’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그리고 전국적으로 개개인들의 노력에 기반하여 조금씩,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들이 빠른 변화 속에 자신을 잃고 있는 우리를 더 우리답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힙지로’에 방문하신다면 그곳을 ‘힙’ 함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닌 ‘우리 것’의 가치로 함께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파트 02 “전통적인 새로움”


우리 고유의 것과 새로운 것들이 교차하는 을지로에서 만난 ‘도원22’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한국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은 바입니다. 기와집을 연상시키는 진열장엔 동서양의 술들이 진열되어 있고, 잘 차려입은 바텐더가 쉐이커 보틀을 열심히 흔들며 칵테일을 만들고 마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손님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곳에선 진엔 토닉, 마가리타, 코스모 폴리탄 등 우리가 흔히 아는 대중적인 칵테일과 발베니, 글렌피딕 등 인기를 얻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부터 전통주를 베이스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날 맛본 칵테일은 ‘도원22’의 시그니쳐 칵테일입니다. 조선 3대 명주인 죽력고를 베이스로 복숭아 퓌레, 레몬, 꿀, 크림 등을 섞어 만든 이 칵테일은 막걸리처럼 걸쭉한 질감과 혀를 감싸는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인 칵테일입니다.


그리고 그 맛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전통 도자기를 활용한 담음새와 안개입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봄, 가을철에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입니다. 저는 도자기 바닥에서 떠오르는 뿌연 연기 속 감싸진 칵테일의 담음새를 보며 한국의 산이 떠올랐습니다.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만나 새롭고,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낸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비트 에디터 천성민


언비트 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더 많은 사진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 @unbt_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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