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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Jul 09. 2019

인생 삼모작이라굽쇼?!?!!  

고마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도착하자마자 고무장갑부터 척! 끼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시작하는 동생.

나 역시 작업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쌓여있는 설거지 앞으로 전진.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필사 항전의 자세로 오늘도 친정 집 청소를 시작한다.

일하던 시절엔 차마 볼 수 없었던 풍경.

한 달에 한 번 운신이 힘든 친정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과 일주일에 한 번 집 청소에 반찬 마련까지.

일 안 나가는 딸들이 있기 망정이지 계속 일을 했으면 어쨌겠나 싶다.

일을 그만두니 자연스레 노인들 생활에 더 관심이 가고, 손이 필요한 일엔 일 없는 내가 동원, 자원하는 게 당연스러워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늦은 공부를 너무 오래,

굵게하고 있음에도 시간을 내 같이 일해 주는

동생 덕 그나마 덜 지루하게 가사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내용은 늘, 거의 비슷하다.

재활용품 분리수거, 음식 쓰레기 · 냉장고 정리, 집 안팎 청소, 일주일 치 반찬 만들기.

아무리 엄마 살림이어도 내 살림이 아니다 보니 손에 익지 않아 일이 늦어질 때가 물론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몇 주 지나자 살림 주인 위주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 원칙으로 일이 배열되자 매우 능률적으로 일이 진행됐다.

집안일이라는 게 단순해 보여도 나름의 원칙이 있고 진행순서와 집중도에 따라 효율성과 완성도가 달라지는 법. 계획대로 완수하고 나면 나름 내 살림할 때와는 다른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다만 친정을 방문하면 할수록, 어째서 아버지는 집안 살림에 저리도 무심하실까, 앞으로 엄마는 운신이 더 힘들어지실 텐데 대체 어떻게 먹고 자고, 쓸고 닦고 일상을 유지하시려나..

걱정이 더해간다.


물론 조금, 아주 조금은 변화가 있어(아픈 부인이 일어나 밥을 차리고 치우고 하는 걸 보느니 당신 스스로 하시는 게 맘이 편하셨을 게다) 외출 후 식사 때를 놓치고 들어오시면 본인 식사는 손수 차려 드신단다.

그러나 아직도 엄마가 신경을 쓰지 않으시면 계절 지난 옷을 무심하게 입고 다니시거나, 빨래 거리를 쟁여 놓으시고, 집 안팎이 아무리 지저분해져도 직접 나서시는 일은 절대 없으시단다.

하기야 여태까지 안 하셨는데 갑자기 하신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마도 내가 진짜 걱정하는 건 엄마의 건강 상태로 보아 절대 더 나아질 리는 없을 것 같고,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게 뻔한데 그때 필요할 우리 자매의 더 큰 노동과 더 많은 시간 투자, 그걸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그거 일거다.


내 걱정에 팔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에게 자잘한 가사노동을 나눠 하시자 권하느니 내가 하고 말지 싶고, 하던 분도 안 하실 나이다 싶어 지니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속 좁아 보인다.


역시 그날도 아버진 딸들이 와서 차린 밥상에 감사하시며 식사를 하시던 중 한쪽에선 반찬을 만들고 있는 큰딸과 거실 정리를 하고 있는 작은 딸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셨다.

아버지는 연세 드시면서 꾸준하게 공중파 방송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시며 인내심을 키워 그 어떤 프로그램도 볼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시더니, 케이블, 종편 시대를 관통하시며 급기야 각 종교방송을 두루 섭렵, 언제부턴가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아울러 인생의 법칙과 삶의 법칙을 자식들에게 설파하고 계셨다.

성질이 안 죽어 짱짱했던 어느 동안은 아버지의 말씀 그 어떤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니 요즘엔 뭐라도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시고 전하시는 아버지가 오히려 감사하다.


“내가 어제 모임에 나갔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 이젠 인생 2 모작 시대가 아니고 3 모작이라고!”


반찬 하던 큰 딸. “아… 무슨 3 모작까지.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3 모작까지 해요.”

정리하던 작은 딸. “아니 3 모작이면 대체 몇 살까지 산다는 거야?”


큰딸: “100세 시대에 이모작이라 했으니 최소 120세네.”


작은 딸: “120세는 좀 아니지 않나? 난 안 하고 만다!”


아버지: “무슨 소리냐. 나야 지나갔지만 너흰 준비를 해야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 텐데 2 모작이고 3 모작이고 하려면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고! 그러니까 평생 배워야 한다는 거야”


큰딸: “정말 사는 게 점점 피곤해지네. 왜 자꾸 뭘 더 하래. 아버지는 안 피곤하셔요?”


아버지: “나는 이만하면 다 잘 준비해서 살았지. 회사 나와서 또 일하고. ……..”


이후는 아버지의 인생 스스로 예찬. ‘나는 세상 변화에 대비하지 못했다. 잘 못 살았다. 실패했다.’ 이런 류를 듣는 것도 편하지 않겠지만 ‘너무 잘 살아왔다. 알아서 너무 잘 대처했다.’ 이런 소리만 반복해서 듣는 것도 어째 좀 불편하다.

특히 사사건건 딱히 잘하신 일만 있는 것 같진 않은 아버지에게서.

물론 당신 스스로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계시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여하튼 결론은 앞으로 인간 수명이 120세까지 연장될 거고, 우린 인생 이모작은 기본이고 삼모작까지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착실히 대비해 세상에 뒤쳐져 살면 안 될 것이다! 가 그날 아버지 말씀의 핵심이었다.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도 2번을 더 갈아타야 하는, 가뿐하게 2시간 30분 거리의 동서횡단. 새벽부터 나서 분주하게 노동을 한 뒤라 어김없이 곯아떨어지기 마련인데 그 날은 왠지 잠이 오질 않았다.


120세라니. 심지어 인생 3 모작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했다.

재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모작도 되네 마네 하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도 사회에서 나를 딱히 필요로 하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기만 한데, 이걸 더 늙어 한 번 더, 삼모작까지 하면서 경험하라니!


국면이 전환될 때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스스로 능력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내가 해 온 과거의 일들이 지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도 당연하다 감내하고…

아니, 나이 들어 일한다 하면 대단하다, 감사하다 박수를 쳐도 모자랄 판에 모든 걸 내려놓고 겸손해져야 일자리가 있을 동 말 동 이라니!


‘이 좋은 세상에 오래 살면 좋은 일이지. 자기 의지대로 두 번, 세 번 뭐든 해 볼 기회도 늘어나고.’

이렇게 말하고 받아들여진다면 당신은 그렇게 살라! 하겠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겠다.


…… ……….. 쓰다 보니, 나는 아직도 한참 못 내려놓고, ‘겸손’에서도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 있지 싶다.

아직까지 이 모양이니 과연 이모작도 가능이나 할는지.. 한심도 버릇인가 또 한심해진다.


그나저나 얼추 인생 삼모작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께 삼모작으로 집안 살림에 관심을 좀 더 기울여 보시라 권할까 싶다…

아무래도 역정을 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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