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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Jul 15. 2019

심심하지 않으세요?- 네. 안심심한데요..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다짜고짜 선택이다. 다시 들어가? 말아?

밖에서 얼핏 나를 겪은 사람들은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아마도 동네 통, 반장이라도 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를 조금이라도 오래 겪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자의로 새로운 사람을 애써 만나거나, 떼 지어

어울려 다니지 않아도 혼자 너무나 잘 노는 사람이 란 걸.

등지고 섰으면 뭐라도 잊고 나온 척 다시 들어가기라도 하겠는데 하필 눈이 딱! 아무래도 오늘은 이웃과 즐겁게 인사를 해야 하는 날인 게 분명하니 받아들이자.

옆집 아줌마나 나나 이사한 지 3개월. 우연찮게 겨우 인사만 하고 지금까지다.

우렁찬 목소리와 체격에 싱글벙글한 인상까지 총체적으로 강렬한 기를 내뿜는 옆집 이웃은 결론적으로 나보다 백배는 사회성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인가. 난, 이미 기에서 밀렸다. 아니나 달라.. 마주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싶게 질문 들어온다.


“집에 계신 것 같던데.. 집에 계시죠?”


“(그럼 집에 있지, 밖에 있나. 그러나 곧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나) 아.. 네.”


“심심하지 않으세요?…!!”


“(내가 왜? 하다가 역시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나)아.. 네. 딱히..?”


“저는 옆 대학교, H대학 아시죠? 거기 나가요.”


“아, 그러시구나.”


“곧 방학 시작하니까 저희 집에 커피 마시러 오세요.”


“(굳이 옆집까지 가서 안 마셔도 되는데...) 아, 그래요.”


감사하게도 이 즈음, 기술의 적극적인 협조, 1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서 이만 안녕이 가능해진다. 그래도 먼저 인사해주고, 집으로 초대까지 해 준 의도에 상처를 줘선 안되니 환하게 웃으며 마무리.

“그럼, 안녕히 가세요..”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10여분, 아침 일찍 퍼져 눕지 않고 잘 챙겨 나와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가 대견해 뿌듯해야 하구만, 어딘가 찝찝한 이 기분, 대체 무엇?...

이미 알고 있다. 부러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듣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아… 나란 인간, 상대편 호의와 상냥함만 보면 될 것을, 머릿속에 딱 걸린 한 문장 때문에 기분 잡쳐하고 있다.

도서관에 도착해 자리 잡고 앉을 때까지 귓속을 맴도는 질문 하나, ‘집에 계시죠?’


여기서 ‘집에 계시죠?’란 질문의 정확한 뜻은 바깥세상, 즉, 직장, 아침이건 저녁이건 일정한 노동을 하고 수입을 창출하는, 즉, 경제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여러 번, 들을 때마다 기분이 싸해지는 경험을 선사한 바 있는 “노시죠? / 쉬세요? / 일 안 하시죠?”와 비슷한 표현되겠다.

물론 앞의 모든 표현은 문장 고유의 뜻으로 보자면

① 집에 있냐 = 집이 아닌 다른 곳, 예를 들어 시장, 도서관, 버스 안 등등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 머무르고 있느냐

② 노시죠? 쉬세요? = 특정한 일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심신이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는 상황

③ 일 안 하시죠? = ‘일’의 개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노동’, ’ 작업’의 의미로 해석, 집중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이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으나 우리는 모두 알아먹는다.

맥락에 따라 이 문장들이 ‘주부냐? 그중에서도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아줌마냐?’라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란 것을. 그리고 나는 들을 때마다(인정하자. 내가 일을 그만둔 그 순간부터 ‘들을 때마다’.) 분개한다. 어쩌자고 ‘주부’가, 스트레스 없고, 마냥 평화로울 것만 같고, 별 수고가 필요 없어 보이는 단어 = (놀고, 쉬고, 집에 있다)로 표현돼야 하는 건지!

그런데 이 시점에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가사노동의 대가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꽤나 상당한 금액이며,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주부의 역할이 매우 중차대하고 등등을 운운하자 하니 왠지 걸러지지 않은 ‘자격지심’의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또 무엇?


약속된 휴식이 끝나고, 다시 돌아와 주변의 여럿을 만났을 때, 안부와 함께 빠지지 않는 질문이 바로 “다시 일 안 하세요?”였다.

처음 반응(아주 가볍게), “아, 진짜 한국 사람들 너무 부지런하게 살아. 나 이제 겨우 이사 끝냈다!”

두어 달 지나(가볍게 보이도록 노력), “알아보고는 있지! 뭐라도 하지 않겠어?”

다시 두어 달 후, (가볍게 보이고 말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 현실 파악 완료) “요즘 젊은 친구들 스펙이 단군이래 최대란다. 이 와중에 나이 오십 먹은 아줌마를 써주겠냐?”

아닌 척 포장하고, 그런 척 허세 질 하면 모를까 현실인식이 명확한 대답에 다들 더 이상 추가 질문은 없다.

그러나 혼자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현실을 굳이 타인과 함께 가슴속 깊이 꼭꼭 구겨 넣고 들어온 날이면,

어느 날이건, 누구와 함께였건, 과하게 감정이 넘치고 꼬였다.


‘남이 일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래. 이러다 일을 시작해봐. 그러면 무슨 일을 하네, 왜 하네, 그 일이 어떻네,

저렇네. 난리일 거라. 대체 남의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데. 그냥 말 안 하면 그런가 보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넘어가면 될 일을! 굳이 꼬치꼬치!’


간단한 질문 하나의 대가로 엄한 사람을 남 일에 쓸데없이 관심 갖는 부류로 제쳐 놓고 나서야 서서히 돌아오는 이성. ‘나 같아도 궁금하겠다. 그렇게 일하던 사람이 들어앉아 있으니…’


아마도 난 여태 바깥일을 해야 내 인생에 당당하고, 제대로 살고 있는 거란 착각을 심하게 하고 있었던 부류였던 것 같다. 4년간의 휴식이 끝나면 다시 ‘일하는 나’로 당연하게 돌아갈 거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일 안 하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자 당황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일이 항상 중심이었는데 중심을 잃었다 생각하니 조금씩, 조금씩 위축될 수밖에 없고.


안 그랬던 척 말자.

아마 나도 수없이 그렇게 질문했을 거다.

“집에 계시죠?” 세트로 “심심하지 않으세요?”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물론 생각나지도 않겠지만) 곱씹어 보고 혹이라도 언제였을지 모르겠다만 존재의 이유가 일에 있는 것처럼, 우세하는 듯한 태도로 지껄인 것이었다면, 그 결과로 이제, 같은 질문(오늘 아침 옆집 아줌마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기를 바라며)을 되돌려 받은 거라 여길지어다.


다시 누군가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집에 계시죠?” 묻는다면 답해주리라!

네, 집에 있어요! 그런데 심심하진 않아요. 뭐, 나름대로 잘 살고 있지요. 내 자리에서, 생겨먹은 존재대로!

그러니 (절대 비아냥 아님, 매우 부드러운 톤) 너도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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