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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mune Jan 05. 2024

2024년 1월 1일, 집순이의 일상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몇 해전 일을 관두면서 내가 지독한 집순이임을 알게 되었다. 출퇴근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일이나 상사, 동료와의 관계를 떠나 집을 나서기 차제가 힘들었던 것. 당시의 ‘사회적인 나’는 그것을 미처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힘들다 생각하며 긴 기간 그토록 지겨운 출퇴근을 했었다. 출퇴근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게 되면서는 집을 나가는 일이 극히 줄어들었는데, 산책하거나 아이들 등하원 등을 제외하면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거의 집에 있는 편이다.


특별한 날이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가장 큰 선물이어서 여건이 되면 혼자 집에 있거나, 여건이 되지 않으면 혼자 외출을 하곤 한다. 지난 생일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 받아 카페에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바라던 삶. 고요한 삶. 진심으로 그 어떤 선물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더 좋다.


1월 1일도 반쯤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엔 다 같이 떡국을 끓여 먹었다. 한 메뉴를 네 식구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끼니에 대해 감사하며. 다만 가래떡을 자른 떡국떡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사람 모양으로 생긴 조랭이떡을, 달걀 알레르기가 약간 있는 둘째 그릇엔 노른자 지단만을, 아이들의 그릇엔 조미가 안된 김가루를 올려주었다. 소소한 차이가 있는 네 그릇의 떡국을 놓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알맞게 익은 엄마표 총각김치와 집안에 그득한 각종 과일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요하고 풍요로운 새해맞이다.


새해 계획이라면 거창하지만, 적어도 새해에 대해 생각이라도 조용히 해보고 싶었다. 아이가 둘이라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은 어려웠지만, 오전엔 작은 아이와 오후엔 큰아이와 데이트해 준 남편 덕분에 나는 반대로 오전엔 큰아이와 오후엔 작은아이와 집에 있었는데, 큰 아이가 혼자 그림 그리며 노는 시간이나 작은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틈타 혼자만의 시간을 누렸다.


막 걷는데 자신이 붙은 둘째는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즐거워 아주 멀리까지 걸어갔다 왔다고 한다. 아빠가 카페에서 모닝 아인슈페너를 마시는 동안 재롱떨며 동석해주기도 하고, 카페 사장님께 본인은 먹지도 못하는 초콜릿을 얻어다 주었다고. 둘째의 직업은 귀여움이다. 하루종일 귀엽느라 바쁜 아이는 뿌듯한 표정에서 자신도 스스로가 귀여운 존재인지를 좀 아는 듯하다. 그 사이 나는 집에서 커피를 갈아 새해 첫 커피를 올리고(모카포트), 그리고 자르고 붙이고 작업실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첫째와 함께 집에서 고요한 시간을 누렸다.


첫째도 나중에 자라서 집순이가 될지 모를 일이나, 아직까지는 극 E처럼 보인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오후에 아빠랑 외출해서 둘만의 저녁 외식과 함께 스타벅스에 들러 아이스크림으로 후식까지 챙긴다. 그 사이 나는 둘째와 집에 있었는데, 둘째가 낮잠 자는 시간은 아주아주 고요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작년 12월 31일부터 읽던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를 킥킥거리며 읽었다.


아 이토록 평화로운 새해의 첫날이라니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만 같다.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바이지만, 첫날 하루만큼은 평화로운 느낌적 느낌, 순조로운 느낌적 느낌을 만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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