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이후, ‘일하지 않는 나’를 체감하기
사직 이후, 너무 길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했을까? 나는 갑자기 붕 떠버린 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 했을까? 상상은 많이 해봤지만, 구체적으로 체감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긴 하루를 스스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을 고민해보지 않은 직장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니 무료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사직한 직후에는 그간 시간이 없어서 못 아팠던 것처럼 한동안 밀린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쉬면 아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아프느라 잠깐 미뤄두었던 무료함과 막연함이 나를 못살게 굴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왜 마음 편하게 쉬지를 못하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정작 내 마음속은 좌불안석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인간이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별일 없이 지낸다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과 동일한 조건에서 갑자기 일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파트타임이나 재미없는 일에 내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한편 내가 아이를 좀 더 안정적으로 보육할 수 있게 되면서 천천히 우리 세 식구는 건강과 균형을 찾아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시설에 만족스럽게 등원하고 있었던 2020년 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은 확진자 수에 벌벌 떨며, 확진자 발생지역이며 동선에 모두가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작은 일에도 쉽게 동요하고 괴로워했다. 특히 방역지침에 따라 아이가 어린이집을 못 가게 되면서 24시간 한 몸처럼 붙어있게 되는 일이 잦았는데, 마치 팬데믹을 위해 사직한 것처럼 아이 보육을 위해서는 다행이기도 한 타이밍이었으나, 당연히 일을 할 때보다 심신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3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바이러스 유행이 어쩌면 여름까지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싶었던 마음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말도 안 되는 팬데믹이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웃프다. 이렇게 길고 지난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바이러스 대유행의 시대, 모두가 힘들었겠지만 아이와 종일 붙어있었던 나는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정신건강이 바닥치고 있음을 느꼈다.
외출도 할 수 없으니 하루 종일 집에 갇히다시피 아이와 단 둘이 있으면서 3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완전히 지쳐버린 기분이 들었고, 이 상태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참 단순하게도 나라는 인간이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감정과 인격은 얄팍하디 얄팍해서 곧 동이 나고 말았고, 나 스스로는 물론 가족들까지 바닥치고 있던 나를 금방 만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내가 느끼는 나의 바닥은 훨씬 끔찍했는데,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내가 이렇게 얊팍한 한계를 지닌 사람이었나’ 순간순간 놀랍고 새삼스러웠다. 바이러스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는 집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잘 놀고 있는데,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지금 나쁜 세균 때문에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어린이집에 갈 수 없어, 미안해”라고 말할 때마다 속으로, 이따금씩 진짜로 울곤 했다.
아이도 나도 난생처음으로 단둘이 거의 24시간을 붙어있는데, 뭘 먹어야 할지 뭐하고 놀아야 할지 아이디어가 없어 집안에 텐트를 치기도 하고, 중고거래(비대면)로 미끄럼틀을 들이기도 하고, 애꿎은 커피만 들이켜대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4월이 지나고 5월 또 6월이 되자 한편으로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그랬지만, 내 일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를 못해서 점점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주변에선 다들 괜찮다고 마음 편하게 좀 쉬라고들 했었는데 거참 내 마음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파트타임도 알아보고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사업 등등을 알아보느라 하는 일 없이 마음은 늘 분주하기만 하던 2020년 팬데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