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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줄 Mar 31. 2016

3-5. 내 인생의 그레이티스트 히트

수호 "야, 담배나 한 대 피우고 하자!"

 박 대리님이 지나가면서 내게 소리쳤다.

 "나중에요."

 "야, 잠깐만 쉬었다가 해! 너 무슨 터미네이터라도 되려고 그러냐."

 그 소리를 듣고 샤말이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나만 보면 항상 배시시 웃음부터 날리는 그였다. 나는 장갑을 벗고 요란하게 돌아가는 윤전기 사이를 지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야, 넌 만날 뭐가 그렇게 바빠? 오늘도 일 끝나면 냅다 튀려고 그러지?"

 "알잖아요. 제가 공사가 다망한 걸 어떡해요."

 "도대체 무슨 공사가 그렇게 다망한데?"

 "제가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좀 많잖아요."

 "자식, 곧 죽어도 입은 살아갖고. 근데 왜 여기 찾아오는 여자는 한 명도 없냐? 점심시간에라도 한번 오라고 해봐."

 "아,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걔네가 절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제가 걔네들을 따라다닌다구요. 그러니까 오늘은 도시락 싸서 순자네 회사에 찾아가야 되고, 내일은 진숙이, 모레는 금복이……. 그중에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니까."

 "어이구, 이 뺀질뺀질한 자식."

 대리님은 한 대 칠 듯이 내게 주먹을 쥐어 보였고 샤말은 옆에서 킥킥 웃기만 했다. 대리님과 샤말은 내가 일하는 인쇄소의 동료들이다. 셋이서 이렇게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게 '내 인생의 낙(樂)' 탑 텐 차트에서 아주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스물여섯 살 총각의 낙이 이리도 소박할 수 있다니, 아무리 봐도 나는 사람이 참 진국이었다.

 오늘은 새벽 근무를 하는 날이었기에 평소보다 이른 퇴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3시가 좀 지나서 차장에게 작업을 검사받은 후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대리님. 내가 뭐 사장은 아니지만 열심히 좀 일해 봐요. 나처럼 애사심을 가져, 애사심을!"

 대리님은 시샘하듯이 입을 비죽거렸다. 

 "일찍 가서 어지간히 좋으시겠네. 뭐 할 거냐?"

 "좋기는 개뿔. 나 오늘 새벽 5시에 나왔다구요. 피곤해서 죽겠네."

 "그래서 이제 뭐 할 거냐고?"

 "얼른 집에 가서 순자 갖다 줄 도시락 싸야죠. 오늘은 계란 프라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봐야지."

 사실 약속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후다닥 인쇄소를 빠져나왔다. 일단 집으로 가서 씻을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갑자기 속이 좀 출출해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나는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예요. 뭐 하세요?"

 "이 시간에 장사하지 뭐 하겠냐?"

 "아버지, 저 내일 집에 갈게요. 오랜만에 가네."

 이번 주말은 모처럼 근무도 공연도 연습도 모두 비어 있는 상태였다.

 "차비 아까운데 안 와도 된다. 내일? 몇 시에 올 건데? 올 거면 아예 오늘 오든가?"

 "으흐흐."

 아버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질질 웃음이 샜다. 아버지는 아닌 척 해도 실은 항상 나를 기다리신다. 그럴 수밖에. 이렇게 잘생기고 듬직한 아들을 어떤 부모가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제안에 대번 오늘 내려가기로 생각을 고쳤다.

 "아버지, 나 보고 싶어서 그러지?"

 "보고 싶긴 뭐가 보고 싶어."

 "에이, 보고 싶은데 뭘. 그러니까 오늘 오라는 거 아냐? 알았어, 알았어. 오늘 갈게. 내가 만나야 할 여자도 많고 너무 바쁘지만 오늘 갈게."

 오래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잇달아 군복무를 마친 후 나는 곧장 서울로 상경했다. 처음엔 드디어 나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며, 데카당스가 도래한다며 타지에서 맞게 될 첫 독립생활에 환호작약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자 혼자 계신 아버지 때문에 가끔씩 마음이 쓰이곤 했다. 아버지가 내 빨래나 청소를 대신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부상조의 미덕. 그래서 재작년인가 아버지에게 서울로 와서 같이 살 것을 진지하게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겠냐며 헛소리쯤으로 들으셨다. 서울에서 또 문방구 자리를 알아보면 된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랑 같이 살다간 울화가 치밀어서 명이 줄 거라는 예언도 하셨는데 그것은 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8년째 내가 나온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운영 중이시다. 문방구는 옛날부터 아버지의 꿈이었는데 어느 날 정말로 그것을 현실로 옮기신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그곳에서 시끄러운 녀석들을 상대하는 재미로 사셨다. 그곳엔 없는 물건이 없었다. 공책, 연필, 지우개, 크레파스, 풀, 도화지, 가위, 팔레트, 딱지, 농구공, 축구공, 줄넘기, 프라모델 등 취급하는 물건의 종류를 세자면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그 쥐꼬리만 한 문방구는 이를테면 아버지의 웅장한 박물관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나단이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금세 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 가게? 오늘?"

 "응. 지금 역에 가는 길이야."

 "내일 저녁에 모임 있잖아?"

 "아, 그랬냐? 너 혼자 가라. 지준이랑 가든지."

 "같이 가지."

 "야, 내가 네 보호자냐? 백날 데리고 다니게?"

 "기차표는 끊었어?"

 "가서 끊으려고."

 "그럼 잠깐만 기다려. 커피나 한 잔 하고 가라. 금방 갈 테니까."

 "어딘데 또 여길 금방 와? 넌 무슨 홍길동이냐?"

 녀석은 지금 대학로에 있으니 금세 도착할 거라고 했다.

 "너 오늘 일 안 해?"

 "엊그제 말했잖아. 학원 내부 수리 때문에 오늘부터 며칠간 수업 안 한다니까."

 그건 그렇고 대체 뭐 하러 오느냐고 나는 따졌다. 녀석은 어차피 지금은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다고 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나나 녀석이나 정말 참 딱한 인생들이었다. 애인 한 명이 없어서 친구 놈 배웅을 받아야 하는 나나, 금요일 저녁에 심심하다고 친구 놈 배웅이나 오는 그놈이나.

 나단이가 오는 것을 감안해 한 시간 후의 것으로 표를 끊었다. 녀석은 대학로가 아니라 서울역 화장실에 숨어 있던 사람처럼 번개처럼 나타났다. 우리는 음료수를 사서 의자에 앉았다. 녀석이 대뜸 자기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물어와 나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너랑 같이 가면 혹시 모를 옆자리 아가씨와의 썸씽 가능성이 사라지잖아. 안 그래도 네가 하도 붙어 다녀서 내 로맨스가 얼마나 지장을 받는 줄 아냐?"

 녀석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친구가 있으면 아버지는 나를 그다지 편하게 대하지 못하신다. 자주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오늘은 아버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데려가는 걸로 녀석은 만족해야 했다.

 떠들다 보니 어느새 열차에 올라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놈에게 그만 꺼지라고 말하고 서둘러 개찰구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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