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서점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학생들은 더 이상 종이로 된 문제집을 사지 않고 PDF로 스캔된 책으로 공부한다. 외부 조도에 맞춰 적절히 화면의 밝기가 조절된다거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촤륵' 책 넘기는 소리가 나는 등의 기능이 구현된 전자책리더기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AI가 독자의 취향이나 흥미에 맞춰서 책을 큐레이션 해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해 준단다. 그동안 서점주인인 나는 이에 이렇게 항변하곤 했다. 종이책에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고, 전자책이 주지 못하는 감성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종이책은 이미 시대의 흐름 앞에서 아날로그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의 힘을 주창하며,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정말이지 우습게도, 전자책 플랫폼 사이트 '밀리의 서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오르는 주가에 기분을 좋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아, 서점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서점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아니, 왜 서점만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시장의 원리에 따라 서점은 도태되어야 하는가? 서점에서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회의와 비관은 비례하여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민도 잠시뿐, 나는 곧 서점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맞았는데 손님은 오자마자 내게 “뭐 담을만한 그릇이나 통 같은 거 없어요?”라고 물었다. 7년 차 서점 주인은 없는 게 없는데, 그것도 그럴게 서점에 머문 시간이 무려 3만 시간에 이른다. 시간의 축적만큼이나 서점 곳곳에 생활의 무게도 쌓였다. 8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캐비닛 안의 칫솔이라던가, 수납장 안의 수저와 젓가락이라던가, 비상식량으로 구비해 둔 다과거리와 컵라면까지 없는 게 없다. 나는 손님이 요청한 통을 냉큼 내밀었는데, 손님은 통을 받자마자 서점 앞에 주차해 둔 차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지' 하고 잠자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손님은 내가 내민 통에 크기와 색이 조금씩 다른 계란을 넣어 내밀었다. 손님은 “아빠가 최근에 닭을 키우시거든요. 방목하면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새송이 버섯이 담겨있었다. 손님의 아버님이 취미로 키우고 있는 새송이 버섯이라지만 오동통한 몸태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또 건강해 보이는지! 나는 빈 통을 내밀었건만 순식간에 두 손이 가득 차게 되었는데, 손에서 이어진 풍요로움은 마음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나는 서점을 다시금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곳곳에 숨겨진 손님들의 손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맥주잔은, 책 판매만으로 서점 경영이 여의치 않자 들여온 맥주를 보고는 ‘예쁜 잔에 마셔야 맥주가 더 맛있는 법’이라고 말한 손님이 두고 갔던 것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수납함에 가득한 사탕이나 비스킷 같은 다과거리들은 서점에서 울었던 한 손님의 선물이었다. 내 맘 같지 않은 육아로 괴로웠을 때 서점에 잠자코 앉아있는 이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며, 다른 손님들에게도 이 따스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달콤함이었다. 이 외에도 손님들이 직접 나서서 만든 레시피로 구성한 메뉴판이라던가, 서점이 벌써 7주년이나 되었냐며 축하파티를 열어준다고 제작한 현수막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나는 너무나 명분에 치우쳐서 서점을 지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인류의 자산이자 유산이므로, 책이 있는 공간은 절대 멸종되어서는 안 되는 식의 논리로 말이다. 진정으로 내가 지키고 싶어 했던 건 책이라던가 서점 그 자체이기보다는, 책을 매개로 한 이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리라. 취향도 취미도 외모도 성격도 그 모든 것이 다 다른 타인이던 우리가 ‘책’이라는 공통된 매개체 하나로 이 공간에서 만나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애정을 나누었다. 그네들의 마음이 서점을 7년간 살아있게 만들었다. 당장 인터넷 서점에만 가면 10% 할인에다가 5% 적립을 해주는 그런 현명한 소비를 놔두고서는 정가 그대로를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에서 책을 사고, 특색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커피를 사 마시고, 서점의 공간을 꾸리는데 재산을 내어주는 이유는 그저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멈출 도리가 없는 이들이 모여 이 공간을 이어 나갔을 뿐이었다. 나는 이 서점을 지속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도무지 없다.
*이 글을 빌어 <국선 변호인이 만난 사람들>의 저자 몬스테라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이 외롭고 힘들 때면 언제든 공간과 더불어 곁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게 바로 서점의 의미니까요.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