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직업, 엄마의 사연
이제 6살이 된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책을 읽어준다. 익살스럽게 목소리를 바꾸고, 과장해서 소리를 높이다 보니 한 권만 읽어도 쉽게 지친다. 그럼에도 '책'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친구의 물건을 뺏지 않는다느니, 장난감은 나눠서 함께 가지고 놀아야 한다느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친구를 보면 '안돼'라고 말해야 한다느니 하는 요즈음 말로 '인성'을 가르치는 그림책들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 모든 게 우습게 다가왔다. 자식에게 인성을 바랐지만 실제로는 지식을 원하고 있었고, 되바라졌기보단 착하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억척같이 본인만을 잘 챙기길 바랐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적의를, 화해를 배우기 전에 경쟁을, 공중도덕을 배우기 전에 이기는 편법을, 신발을 바로 신는 법을 배우기 전에 알파벳을 먼저 배우길 바랬다* 살아보니 그것이 어른의 '정의'였기에.
나는 이 어른의 정의를 비통하게 깨달았다. 청춘이 비장하고 거침없는 것은 '정의'를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배려와 공경이 당연한 자연법이자 도덕률이며, 불합리와 부도덕에는 저항해야 하는 게 '정의'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스물넷의 나도 그랬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취직을 하고, 청춘의 열정에 젖어있던 스물넷의 청춘이 그랬었다. 노력을 다하면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승진할 수 있을 거라고, 열심히 노력해서 사내 최초의 최연소 승진자가 되어보겠다고 포부를 다지며 야근을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 떨어진 USB 하나를 주웠다. 잃어버린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교육받았기에, USB를 잃어버린 이는 얼마나 마음이 애탈까 염려하는 것이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라고 여겼기에, 나는 거침없이 USB를 열어보았다.
USB 겉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 주인의 이름은 알 수도 없고, 사내 복도에 떨어진 USB라면 업무상 쓰는 용일테니 파일 하나만 살펴보면 주인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USB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제일 먼저 스커트 입기를 좋아하는 한 직원의 두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팬티가 내 눈을 덮쳤다. 옆 팀의 A인턴이 대화 중인 순간 눈이 감기고 입이 벌어지는 얼굴을 확대해 놓은 사진,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 허리를 숙인 한 직원이 찰나에 드러낸 가슴의 풍만함을 포착한 사진. 수백 장에 이르는 사진들은 직원별로 폴더로 묶여있었고, 이 사실이 더 모멸스러웠다. 그날따라 아무도 야근한 이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커다랗게 사진을 띄운 모니터 앞에서, 내가 아는 이들의 은밀한 부분을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나는 떨었다. 정신으로 다가온 한기가 육체를 떨게 할 수 있음을 나는 처음으로 느꼈던듯하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대를 잡았는지, 평소처럼 퇴근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늘여놓았던지 기억이 분명치 않다. "USB 가져와봐"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USB를 넘기면서도 어떤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샤워부터 해'라고 말하는 엄마 말에 육체에 물을 묻혔고, '누워서 쉬어'라고 말하는 아빠 말에 삐걱거리며 침대로 들어가 그대로 침전했을 뿐이다.
그리고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나는 생각다운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USB에 유일하게 담겨있던 그 사람의 셀카를 근거로 이 범죄 사실을 고발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USB안에 자신의 조각을 담아두고 싶은 이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내가 나서자.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이런 내 생각에 실천하기 위해 엄마에게 유일한 증거일 USB를 달라고 말했다.
"버렸어"
정직을 으뜸으로 삼던 이가 저런 말을 할 수는 없다. 비정한 저 말을 내뱉은 이는 우리 엄마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버렸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버린 곳을 뒤져서라도 가져오겠다는 내 의지를, 하루 전의 엄마는 미리 알았기에, 내가 애써도 찾을 수 없는 깊은 호수에 내다 버렸다. 그런 엄마를 두고 나는 뭐라고 했더라. 엄마는 그 USB를 버림으로써 양심도 내다 버렸다고 했던가,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당신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던가.
엄마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신념을 내다 버렸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다. 노동조합에 몸담고 있는 선배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도 했고, 회사동기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증거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밖에 없었기에 말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엄마가 옳았다. 회사가 세워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성범죄 관련 인사청문회 기록, 위계가 발휘되던 조직 내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었던 1년 차 신입이라는 위치, 증거가 없는 말은 어떠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명명백백한 사실, 역으로 USB를 열어본 내가 범죄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허무함,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허망함. 티끌만큼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한 채, 일말의 변화도 없이 나는 4년 차 주임이 되었다. USB의 주인, 그 범죄자의 곁에 함께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서, 사진을 찍으려는 몸짓도 안 보여서 한동안은 범죄사실마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한날은 상위 기관에서 관례적으로 조직 내 성범죄 이력을 조사하러 왔었는데, 조사관 앞에서 전체 여직원 대표로 '성범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전무함'에 내 이름 석자를 적어놓고 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나는 퇴사를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다시 이 문제는 불거졌는데, 조직의 대표가 바뀌면서 전에 있던 불미스러운 잡음을 전부 제거하고자 했다는 점, 사내에 '몰카'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의 썰처럼 돌고 돌아 여직원들이 불안감을 호소했다는 점을 이유로 경찰서로부터 '경찰조사'차 반드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퇴사자로서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는 내게 경찰조사는 두려웠다. 퇴사 후 이제야 내 위치를 찾고 조그마한 가게 하나 열었는데, 그 사람이 보복을 하러 오면 어떻게 하지 공포스러웠다. 스물넷의 내가 가졌던 정의는 이미 그 시대의 어른들이 보여준 외면으로써 버림받았다. 정의가 주는 떳떳함이나 자부심이 없는 나는 공허함에 몸을 떨 뿐이었다.
나의 떨림을 멈춰 세운건 후배였다. 나와는 달리 회사에 남아있던 후배는 회사의 상황을 전달해 주곤 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요. 그걸 뭐라고 할 사람 없어요." 어째서인지 내게는 그 말이 경찰조사라는 네 글자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담당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고, 여러 차례의 조사 끝에 그 USB의 주인은 인사위워원회를 통해 영원히 면직처리가 되었다.
서른둘이 된 나는, 아이의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이런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다. 무엇이 진정 옳은가, 옳은 것을 진정 옳은 것이라고 여겨야 당당해지는 법이다. 미래의 내 아이는 무엇이 옳다라고 믿고 나아갈까.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학군지의 학교를 바꾸기 위해 두 개의 주소를 외우고 다닐 때, 주소의 헷갈림보다도 그때까지 받아온 정직을 으뜸으로 삼던 가정교육과 내가 해야 할 거짓말과의 헷갈림이 기분 나빴다고. 70년대에는 데모 때문에도 대학생 자식을 둔 부도는 걱정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데모하지 말라고, 정 안 할 수 없을 때라도 앞장서지 말고 중간쯤 서라고, 사진 찍히지 말라고, 적당한 시기에 재빨리 도망치라고. 이런 비열한 당부를 간절하게 하는 에미를 자식이 어떤 눈으로 쳐다보았던가 기억하고 있다고.
1983년에 쓰인 이 일기를 2024년에 바라보자, 세상은 늘 빠르게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늘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시대의 아픔은 아니었나, 그리고 이 아픔이라는 것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만 같다고 느껴진다. 정직하면 손해 보고, 근면성실하면 거지되고, 우직하면 바보 되는 세상에서 '정직'과 '근면성실'과 '우직'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진심으로, 마음 깊이 바라본다. 정직함이 늘 승리하길, 근면성실이 요령을 이기길, 착한 사람이 늘 성공하길, 우직함이 세상을 바꾸길. 그럼으로써 엄마가 USB를 내다버리지 않았을 미래를 꿈꿔본다. 그럼으로써 엄마가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신념을 내다버리지 않길, 그럼으로써 상처받지 않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