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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Jun 21. 2019

샌프란시스코에 언니가 산다 #4

축복받은 롤러코스터의 도시

<Jinxy Jenkins & Lucky Lou>의 한 장면

24. 샌프란시스코에 와 본 적이 있다면 언덕 꼭대기에서 해변까지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경사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쭈욱 내려오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Jinxy Jenkins & Lucky Lou>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이 수레를 타고 굽이진 언덕을 내달려 금문교까지 가는 장면은 그 본능을 정확히 캐치했다. 실제로 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언덕 아래가 보였다 안보였다 하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영화 <인셉션>에서 차원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심하게 가파른 언덕도 있다.

*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

25. 암스테르담 특유의 분위기는 수로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에서 시작된다. 물 위에 지어진 도시어서 약한 지반을 버티기 위해 건물이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세워진 것이다.

작년에 찍은것, 암스테르담은 내가 좋아하는 도시다 (tmi)

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암스테르담의 분위기를 느꼈다면 바로 이 건물들이 닮았기 때문이다.


26. 이 곳은 미서부 해안지역 대부분이 그러하듯 땅 아래 암반이 여전히 숨 쉬고 있어 언제든 지진 위험이 있는 지역이다. 비교적 최근인 1989년에도 큰 지진이 있었고 백 년 전쯤엔 샌프란시스코의 80%가 파괴되고 수천 명이 사망한 대지진이 있었다. 그 이후부터 주거 건물들은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게 되었고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로 지어졌다. 지진으로 무너졌을 때 쓰러진 기둥 사이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픈 사실은 언덕 아래는 해안지역이라 지반이 상대적으로 약한데 언덕 위에는 부자들만 살고 있다는 것이다.


27.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면 빨간 금문교가 눈 앞에 펼쳐지는 <인사이드 아웃>의 오프닝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다.

<Inside Out> 오프닝 장면

굽이진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목조건물들은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다. 그리고 군데군데 초록색을 칠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색이 된다.

어느 도시를 가든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세련된 빌딩이나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도시에서 초록색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 곳의 블록블록은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로 이어지고 나무로 끝난다. 공원이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야생화초가 자라고 있어 매일 가도 매일 다른 모습이다. ‘캘리포니아의 축복받은 날씨’라는 말이 있지만 이 도시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28. 날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이 동네는 축복을 받다가 말았다. 가을은 환상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와 있는 여름은 아니다. 좋기도 한데 아니기도 하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기 때문이다. 아침은 가을, 오전은 봄, 오후는 여름, 그러다 갑자기 저녁은 초겨울이 된다.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여름이었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여름이라고 반팔 하나만 입고 나갔다가는 얼어 디진다는 얘기다. 이것을 ‘Summer Chill’이라고 부른다. 이 도시는 언덕뿐만 아니라 날씨도 롤러코스터 같다.


29.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은 정말 추웠다. 오기 직전 한국 날씨가 유난히 더웠기 때문에 더 춥게 느껴졌다. 귀뚜라미 보일러도 없는 아메리칸 하우스에서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선풍기를 틀었다. 샌프란 시내의 여러 수영장들이 무료 개방을 할 정도로 후끈후끈한 한여름 날씨였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길래 도톰한 자켓을 입고 나간 날에는 결국 하루 종일 자켓을 들고 다녀야 했다.


2019/06/18 17:47, 차 타러 가는길
2019/06/18 18:02, 차 타고 딱 5분 이동했을 뿐인데

30. 시간대별로만 다른 게 아니다. 이 작은 도시 안에서 블록 단위로 날씨가 나뉜다. 분명 화창했는데 어느 순간 하늘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내려오면서 곧 건물들이 안개에 파묻힌다. 그리고 다시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또 안개가 가득하다. 언덕만 오르락내리락 하는게 아니라 날씨도 오르락내리락 한다. 샌프란시스코 기상청 사람들은 매일 아침 포춘쿠키로 일기예보를 해도 반은 맞힐 거다. 축복은 기상청 직원들이 다 받아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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