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그 떨림에 대하여

육아 에세이지만, 첫 사랑 이야기 같은 것도 곁들임

by 늦작가

이야기는 소개팅 주선 성공률 100%인 내 친구 K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본다. 그녀는 내 대학교 동창이고,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제법 시간이 지난 시점에 다같이 글쓰기 또는 독서모임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2014년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미래를 걱정하고 세상을 한탄하고 먹고 사는 이야기 등을 쏟아냈다. 나는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중이었는데, 억압된 환경에서 지내는 20대 남성은 자연인으로서의 자아가 붕괴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혼자 전시회를 다니거나 음악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 K가 나를 빤히 보더니, "너 내 친구 한번 만나볼래? 둘이 전시회 같이 다니고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말동무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고,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 모임에 함께 왔던 K의 남편은 둘이는 뭔가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유는 아직도 듣지 못하였다.


카카오톡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티키타카가 아주 잘 맞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이지만, 우리는 서로 오랜 시간을 지내온 것처럼 편안하고 꾸밈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겠다는 확신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2015년의 봄은 좀 따뜻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첫 데이트 계획을 세워서 브리핑 해주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하는 상설전시를 보고 과천의 찐맛집인 파스타집에 가는 동선을 말해주었다. 자기주도적이고 주도면밀한 그녀가 점점 더 좋아졌다. 검은색 패딩부츠에 롱니트가디건을 입고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소설처럼 종소리가 울리거나, 그녀 뒷 배경이 아웃포커싱되는 영화같은 일은 없었지만, 나는 '그녀와 결혼하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점심 먹고 헤어지겠거니 했던 첫 데이트는 밤 10시가 되어서 카페 사장님이 이제 영업이 끝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전시회는 난해했고, 파스타맛집은 급작스러운 휴무라 우리는 오리탕을 먹으러 갔고, 카페도 자리가 없어 문앞에 찬바람이 쌩쌩들어오는 자리에 앉았다. 계획처럼 되지 않아 그녀는 시무룩해졌지만, 당황하는 그녀가 너무 귀여웠다. 그녀와 카페에서 깔깔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4번째 데이트에서 그녀에게 고백했다. 다음에는 친구말고 남자친구로 만나고 싶다고. 멋대가리 없는 선언에 그녀는 웃었다. 2015년 1월 25일. 이게 우리 1일이다.


시온이가 커가면서 엄마아빠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할지는 모르겠다. 시온이가 커가면서 여기 예전에 엄마아빠 데이트하던 곳이야 또는 엄마아빠 연애할 때 자주 먹었던 음식이야 같은 이야기를 종종 할 것 같다. 우리만의 추억에 시온이가 빼꼼하고 들어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시온이에게 2015년의 러브스토리는 고리타분하겠지만, 우리가 주인공인 청춘드라마가 있었다는 걸 알아주기를. 엄마는 전시회와 영화관 가기를 좋아하고 예쁜 꽃과 편지 받는 것을 좋아했으니 가끔 아빠와 엄마가 데이트를 갈 수 있도록 협조해주기를. 부디 우리 부부도 지난 10년 알콩달콩 지내온 것처럼 시온이가 닮고 싶은 커플로 같이 예쁘게 살아내기를.


시온이도 우리처럼 유쾌한 단짝과 행복한 하루를 그려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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