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대신 일곱 개의 돌맹이를 건네던 날
시온아,
너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니?
아빠는 엄마를 만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단 하나의 짝이라는 사실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단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엄마를 만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소위 말하는 ‘결혼 플러팅’을 시작했지.
같이 이케아에 가면 쇼파에 앉아 "나는 이런 쇼파가 놓인 거실이 좋아요"라고 넌지시 말하고, 설거지를 할 때면 "싱크대 높이는 이 정도가 딱 적당하겠어요"라며 은근슬쩍 미래의 도면을 그렸단다. 백화점 리빙관에서는 손님을 초대할 때 쓸 냄비를 고르는 척하며 혼잣말을 하곤 했지. 엄마는 "그런 얘길 나한테 왜 해요?"라며 황당해했지만, 아빠는 알고 있었어. 그 잽(Jab) 같은 말들이 엄마의 마음속에 '이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씨앗을 심어줄 거라는걸.
2015년 6월, 장교 복무를 마치고 떠난 뉴욕 여행에서도 아빠의 전략은 계속됐어. UN 본부에서 엄마 집으로 엽서를 보냈지. 봉투도 없는 그 엽서를 엄마의 어머니, 즉 할머니가 먼저 보실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어쩌면 그게 아빠의 분명한 의도였지. '나라는 청년이 뉴욕에서 이런 진중한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라는 일종의 자기소개서이자 느끼한 고백이었으니까. 할머니는 엄마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그 엽서를 보고 처음 아셨다고 했어. 작전 성공!
어느 날 평화로운 호숫가에 앉아 있을 때였어. 엄마가 친구의 호숫가 프로포즈 이야기를 꺼내더구나. 내심 부러운 눈치였어. 엄마는 종종 아빠가 다정하지만, 그런 로맨틱한 무드가 아쉽다고 했거든. 아빠는 그 순간 주변에서 제법 괜찮게 생긴 작은 돌맹이 일곱 개를 주워 모았어.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엄마의 왼손 약지에 슬며시 올리며 사랑을 맹세했지. 엄마는 "내가 말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요!"라며 웃어넘겼지만, 아빠는 굴하지 않고 일곱 번이나 다른 말로 포장된 청혼을 선물했어. 무슨 멘트를 던졌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 근데 그 순간에도 엄마의 웃는 얼굴이 참 좋았던 기억은 선명해.
놀라운 건 뭔지 아니? 결혼 후 살림을 합치고 보니 엄마가 그 보잘것없는 돌맹이 일곱 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더라고. 촛불 켜진 레스토랑도, 화려한 보석도 없었지만, 엄마는 직업도 없는 스물여덟 살의 아빠에게 인생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던 거야.
2017년 9월 9일. 수많은 축복 속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어. 아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엄마와 결혼한 일이야. 그 덕분에 지금의 너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던 우리였지만, 숙소만 겨우 정하고 떠난 신혼여행에서 우리는 깨달았단다. 무계획 중에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심코 들어간 카페가 포르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였거나, 길을 헤매다가 리스본에서 멋진 석양을 만나기도 했거든.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안에서 하루하루의 행복을 붙잡는 법을 엄마에게 배웠어. 너를 기다리던 긴 시간들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는 그 기다림마저도 사이좋게, 행복하게 채워 나갔단다.
사랑하는 시온아. 너도 아빠처럼 좋은 안목을 가져서, 보석 같은 사람을 알아보고 의심 없는 사랑을 해보길 바란다. 아빠는 엄마를 만나서 제법, 아니 아주 많이 행복했거든. 참고로 엄마도 지금까지는 매우 행복하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어. 아빠가 늦은 밤 글을 쓰고 있으면 입에 귤을 쏙 넣어주거나, 따뜻한 차를 옆에 놓아주거든. 이게 엄마의 사랑법이고, 이 조련술로 아빠는 손에 돌맹이를 쥔 청년에서 시온이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어.
너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를 소개할 즈음에 아빠는 이 책을 다시 펼쳐보겠지. 시온이는 어떤 프로포즈를 받을까? 아니면 어떤 프로포즈를 했을까? 너에게 아빠의 사랑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해주고 싶은데, 아빠가 너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건 욕심이겠지?
시온아, 사실 아빠는 네가 데려올 사람이 벌써부터 마음에 안 들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네가 아빠에게 그랬듯, 이 책을 펼쳐 보이며 너의 단짝에 대해 밤새도록 이야기해 준다면 기꺼이 그 사랑을 축복해 줄 용의가 있단다. 너의 사랑이 아빠의 그것보다 더 찬란하기를, 그리고 네가 선택한 그 모험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매 순간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아빠와 엄마가 일곱 개의 돌맹이로 쌓아 올린 이 평온한 성 안에서, 너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하렴. 너의 모든 계절을 아빠가 응원한다.
자, 이제 엄마가 놓아준 따뜻한 차가 식기 전에 아빠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보려 해. 시온이라는 기적을 만나기 직전 그 애달픈 환호 속으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