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이밍'이라는 신의 약속을 기다리며
우리 부부에겐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었다. 인품과 검소함, 그리고 은퇴를 앞둔 나이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던 어느 노부부. 다섯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그분들을 보며, 우리도 막연하지만 원대한 꿈을 꾸었다. 우리를 닮은 아이 다섯을 낳아 홈스쿨링을 하며, 세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아주 사랑스럽게 키워보자고.
하지만 현실은 꿈처럼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결혼 2년 차, 아무런 소식이 없어 찾은 병원에서는 "둘 다 아무 이상 없으니 마음 편히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진단명이 '원인불명'이라니. 직장 스트레스 때문인가 싶어 아내는 일을 내려놓고 아기를 기다렸다. 여행을 다녀오면 생길 거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세상 구경도 제법 다녔지만, 그 모든 '비기'들은 우리 앞에서는 별 도움이 안되었다.
결국 의사에 입에서 '인공수정과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권합니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우리가 부모가 될 운명이 아니라면, 왜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난임병원을 가득 채운 부부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나마 좀 어려보인다는 생각에 작은 위안을 얻어보려했다.
아내는 씩씩했다. 스스로 배에 주사바늘을 찔러야하는 순간에도 "나 간호사 체질인가 봐, 제법 안 아프게 잘 놓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자기는 정말 못 하는 게 없네"라고 맞장구를 쳐주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을 울었다. 주사 바늘이 살을 파고들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남편으로서 너무나 비참했다. 아이가 없어도 우리의 행복은 변함없을 거라고 말해주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은 시들어갔다.
양가 어른들의 묵묵한 기다림은 아픈 위로였다. 특히 어머니는 당신께서도 형을 만나기 전 3년간 아이가 없어 고생하셨던 기억 때문인지, 며느리에게 "나는 손주 없어도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건네셨다. 아내는 그 진심 어린 배려를 평생의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남들처럼 카시트를 고르고, 야간 불침번처럼 밤잠을 설쳐보고 싶다는 갈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해졌다.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아이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버텼던, 8년이라는 길고 긴 터널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픈 사연을 굳이 숨기지 않았고, 혹자가 물어보면 우리의 상황을 담담하게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여러 돕는 손길들이 있었고, 우리가 시온이를 만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해주고 응원해주었던 이들을 떠오른다. 특히, Y과장님과 N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8년이라는 기다림이 있었기에, 지금의 고된 육아조차 우리가 그토록 열망했던 축복임을 잊지 않는다. 남들보다 길었던 신혼 생활을 통해 다져진 우리의 살림력과, 비바람을 견디며 단단해진 부부 사이의 신뢰는 이제 시온이라는 꽃을 피워낼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8년의 기다림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너를 가장 완벽하게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했던 최소한의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그 아픔 가운데 들었던 많은 위로와 응원 중 '아기 천사가 호기심이 많아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오느라 조금 늦나봅니다.'라는 말을 믿고 있으면 정말 호기심 많고 주변을 돌아보는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아서 그말을 꾹 믿어보기로 했는데, 정말 그런 아이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