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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주스 Aug 23. 2023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1. 인사]

사과 이야기

비 오는 새벽, 창밖을 보면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창문에 서려 있는 김을 통해 흐릿한 풍경에서 나오는 빛이 좋고 입가에 찻잔을 대고 있으면 따뜻함이 코끝에 묻는 게 좋다.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느 때와 똑같은 색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고 특별함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방 안의 공기는 따뜻했지만 따뜻한 공기가 무겁게 느껴져 새로운 공기를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열고 간단한 아침을 먹기 위해 뒤를 돌아섰다.

순간 등 뒤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틈에서 무지개와 함께 희망이 들어왔다.

침침했던 방 안이 밝혀지는 순간 그 아이는 작은 날갯짓을 하듯 쪼아대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 또 보네.


지난밤,  아이가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던 , 그날이 영원히 마지막이길 바라며 다시 오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기어코 처음 서로 마주했던 어느 날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래서 심드렁했다. 반갑지도 기쁘지도 않았고  아이는 알듯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꿰뚫어 보는  눈빛은 한결같았고  눈은  긴장시킨다. 나에게 긴장감은 낯설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은 방어막은 예민하게 만든다. 그것보다 상대로부터 만들어지는 감정들이 새어 나오는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이가 당분간 머물 것을 감하고서 말없이 외투를 걸치고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의 이름은 솜사탕, 달콤하지만 쉽게 사라지고 먹고 나면 찐득한 것.

희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그 가게는 희망에게 필요한 것들을 판매한다.

길을 지나다니면서 자주 눈에 들어오곤 했다. 솜사탕이라고 적힌 나무 조각 문패 하나, 작은 불빛 하나로 밝혀진 공간은 꽤나 아늑한 분위기로 보였고 어떤 홍보도 메뉴판도 없이 진열대에 유리병에 담긴 것들은 솜사탕이 아닌 정체 모를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곳이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그리고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회사 동료에게 물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파는 물건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는 뜬구름 같은 답변만 들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희망이 나에게 처음으로 온날, 그곳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유리병에 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희망의 주식이 되는 재료들이  병 속에 담겨 있었고 그것이 희망을 만들었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저렴하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었다. 희망에게 필요한 것이 좋은 것. 그 재료의 가치는 어떻게 가격이 매김 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재료들을 구매하면서 여러 정보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사람들은 어느 날 찾아온 희망에게 많은 돈을 쓰고 있었고 그것은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것들 투성이에 내용물을 볼 수 없는 불투명 포장지에 어려운 말 뿐이었다. 그 속에서 솜사탕 가게는 진정성으로 소신 있게 오롯했다. 하지만 자신을 알리지 않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헤매게 만든다.  나 역시 동료의 말을 잊었다면 내게 찾아왔던 희망에게 헛된 부풀림으로 고생을 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쓰지 않아도 될 비용들을 지출을 했을 생각에 아찔했다. 필요 없는 말을 잘하지 않지만 산타를 닮은 솜사탕 주인에게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며 제기했다. 주인은 모든 것은 이유가 있고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모두의 역량을 위한 것이라는 스님 같은 말을 남겼었다.


‘찰랑’


솜사탕 가게 문을 열면 달콤한 사탕 발린 사과향이 물씬 난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곳.

생각보다 그리웠나 보다. 이 냄새가.


오랜만에 본 솜사탕 주인은 여전히 사랑을 듬뿍 받은 산타 같은 통통한 몸짓과 붉은 홍조 가득한 볼을 드러내며 반기듯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가게 주인의 희망도 여전히 곁에 머물고 있었고 밝아 보였다. 그 밝음은 생기와 닮아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다시 돌아왔나 봐요” 주인은 넌지시 물었고

-네

라고 짧은 대답으로 마무리했다. 주인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 파악했는지 주문을 기다렸다.

나는 그때의 희망이 좋아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포장된 재료들을 들고 나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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