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석 Jul 19. 2016

황금 파도
16화

최민석




한 나라의 진정한 재산은 땀 흘려 일하는 부지런한 주민의 수에 있다.”

나폴레옹(1769-1821)




#16



고작 스무 명 남짓한 인물들이 착석해있다. 하지만, 이들을 얕잡아 보지 마시라. 해방 이후 풍전등화처럼 흔들렸던 나라를 다시 한 번 흔들 수도, 굳건히 할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니까. 비약이라고?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 하여 과학적인 제도 장치를 거쳐 논의가 태동, 발전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역사란 우습게도 몇몇 인물의 사소하고도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그 모양과 색깔이 바뀌지 않았던가.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원정을 앞두고 원숭이에게 물려 죽는 바람에, 마케도니아 왕국이 나뉘었듯 말이다. 뭔 말인가 싶다면, 기혁이 문화센터에서 했던 강의를 떠올려 보시길. 


자, 이제 장소는 국회 본관 406호. 법제 사법위원회, 이른바 ‘법사위’ 회의실이다. 기혁의 주세법 개정안은 의안과에 접수되어,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원회를 거쳤고, 드디어 법사위의 심사를 받게 됐다. 20대 국회는 물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세법 개정안. 이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법사위 위원장과 간사, 위원, 그리고 그들의 보좌관뿐만이 아니다. 긴 탁자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앉은 야당 의원과 여당 의원 뒤로, 수십 대의 카메라와 수십 명의 취재 기자들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잘 들었습니다안춘수 의원


법사위 위원장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국민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 후보인 안춘수가 장애인 연금법 개정안을 5분간 발의한 것이다. 

위원장이 장내를 둘러보며 물었다. 


이의 있습니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위원장은 민주적 절차를 지키기 위해 질문했다. 

약속된 침묵이 흐르자, 위원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발언했다. 


다음은민중당 장기혁 의원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ENG 카메라들이 미어캣처럼 목을 한쪽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기혁이 자리에서 일어서, 발의대를 향해 걸어갔다. 마이크 앞에 선 기혁은 드디어 자신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과 가슴 속에 담긴 감정을 꺼내놓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바로 의식주입니다먹거리마실 거리는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이고필수적인 생존 조건입니다하지만 생존 조건 만은 아닙니다우리는 먹거리마실 거리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연인과의 사랑을 약속합니다


짧게 하세요짧게


기혁이 가는 곳마다 언제부턴가 으레 따라 붙기 시작하는 이 남자.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한국당 김정태 의원이다. 그는 오늘도 뭣 때문에 골이 났는지, 기혁이 입을 떼자마자 성을 냈다. 왜 화가 났냐고? 성마른 독자여, 부디 기다려주시길. 말하길 좋아하는 이 작가도 입이 근질근질하나, 모든 이야기에는 순서가 있는 법. 자, 우리는 다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기혁의 입술로 시선을 돌리자. 



기혁은 자신을 향한 저지에 잠시 고개를 끄덕인 후, 기다리는 청중들을 위해 다시 연설을 했다. 


맥주는 단순한 마실 거리가 아닙니다건설 노동자들이 막걸리를 한 잔 하며 한 낮에 흘린 땀을 식히듯어떤 이에게 맥주는 휴식이자안식입니다행복의 전제조건이자삶의 필수 조건입니다그 어떤 이들이 국가에 속해있습니다바로 이 나라 말입니다그들은 우리의 국민입니다그런데그들은 힘이 듭니다출근하느라학업 하느라육아하느라꿈을 좇느라바쁘고 피곤합니다그래서 우리에게 신탁했습니다다스려 달라는 게 아니라바쁘고 피곤하고 성가시니까일을 대신 해달라고 한 겁니다우리보고 심부름을 해달라고 한 겁니다!


장기혁 의원무슨 수작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김정태 의원의 부아는 더 치솟았다. 

하지만, 기혁은 아랑곳 않았다.


국민이 신경 써야할 것은 오직 행복을 추구하는 것뿐입니다그렇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행복의 전제조건인 맥주가 맛있어야 합니다지금보다 훨씬 더 맛있어야합니다기업이 스스로 할 수 없다면안타깝지만 국민이 일할 권리를 준 우리가 바꿔야합니다그래서 국민들이 우리에게 정치를 맡긴 것 아닙니까말 그대로믿고 맡기는 것믿을 ’ 부탁할 ’. 이게 바로 신탁정치입니다


기혁은 여기까지 말한 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싸져야합니다만 원하는 맥주는 7천 원이 돼야하고, 5천 원 하는 맥주는 3천 원이 돼야하고, 3천 원 하는 맥주는 2천 원이 돼야합니다세금 때문에 맥주가 비싸져야합니까국가가 거둬들이는 부당한 세금의 무게를 가난한 이들이 져야합니까그들은 우리의 금고가 아니라우리의 주인입니다더 이상은 죄악세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맥주에 세금을 과도히 매겨선 안 됩니다이에 주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바입니다


기자들이 노트북에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속기사처럼 기혁의 말을 받아 적었다. 국회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이 현장을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보고 있었다. 국회방송 접속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 


이의 있습니까?


위원장이 예의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까 국민당 안춘수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같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국당 의원들이 고성을 쏟아냈다. 


현실성이 없지 않소현실성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고작 주세법 때문에부자 증세라니정신 차려요장기혁 의원!


법사위가 고성으로 울리는 장면은 종종 뉴스로 보도되긴 했지만, 실로 몇 년 만이었다. 

이 와중에 김정태는 너무 화가 난 모양인지 다소 맥락에 어긋난 말을 했다. 


그래서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는다는 거야?! 종북이야?!


기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침을 한번 삼킨 뒤 반론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이 됩니다


카랑한 목소리. 좌중을 압도하는 톤. 순간, 모두가 그 목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유정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교통사고의 여파로 입원해 있던 그가, 오늘 법사위 회의를 위해 퇴원을 한 것이다. 병세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가 좌중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왜 안 됩니까장기혁 의원이 TV 토론에서 말한 대로대기업 유보금 1%만 걷어도 주세 42% 인하하고교육세 20% 인하할 수 있습니다그걸로 다 충당됩니다맥주로 걷히는 주세가 통상적으로 2조 3천억 원입니다이건대기업 유보금 1% 아니, 0.5%만 거둬도 채우고 남습니다. 1% 거두면 6조원이고, 0.5% 거두면 3조원입니다맥주에 주세를 아예 안 매겨도 되는 금액입니다


유정민은 속사포처럼 발언했다. 


게다가이 세금은 원래 우리가 받았던 것입니다현 정권이 들어선 후에부자 감세대기업 지원하면서 원래 받았던 세금을 감면해준 것 아닙니까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돌아가자는 겁니다정상화시키고그 무게를 국민들에게서 덜어주는 것입니다!


정민은 십여 년 전 정계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고, 열정으로 청중을 감동시켰던, 40대 초선의원 유정민의 모습이었다. 정민이 나서자, 순간 장내의 공기가 요동했다. 놀란 것은 위원장과 여당 의원뿐만이 아니었다. 정민의 예상치 못한 지원에 기혁마저 놀랐고, 그 놀란 가슴은 금세 뜨거워졌다. 바로 며칠 전까지 자신을 타박했던 정민 아니었던가. 지금 정민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다. 이것은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 눈빛이다. 기혁은 정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중앙 방송토론에서 부유세 도입을 언급한 후, 정민은 기혁을 병실로 불렀다. 병실 창으로 새벽 냉기가 넘어왔지만, 정민의 눈동자는 뜨거웠다. 



자네 망하려고 작정했나낙태동성애환경급식이런 문제가 유권자를 가르는 것 같아절대 아냐계급 배반 투표라고 들어봤지?



차분한 기혁의 대답에 성이 났는지 그는 더욱 단호히 말했다. 


거짓말이야


?!


눈이 커진 기혁에게 정민은 쏘아붙였다. 


그런 거 없어가난한 사람이 부자 정당을 찍는 건 대학학위도 없는 절대 저소득층뿐이야그들은 상당수가 이미지 투표를 해아니면엘리트층에 대한 반감으로 찍거나


정민의 얼굴은 노을처럼, 아래가 서서히 붉게 번지고 있었다. 


계급 투표에 가장 충실한 게 누구인지 아나


부자죠


맞아


정민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잠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어느 정도로 차이 나는지 알아미국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이 40% 민주당을 찍으면부자들은 60% 이상이 공화당을 찍어바로 핵심 정책 때문이지


그 핵심 정책이 뭔가요?


정민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겠나?! 세금이야세금자넨 오늘 40%의 동지를 얻고, 60%의 적도 얻은 거야결국 밑지는 거야이래도 할 텐가?


자신을 정치계에 끌어들인 정민이 다그치자, 기혁은 그의 말을 듣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병실의 공기가 완전히 한 번 바뀌었을 때 쯤,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원님께서 이 나라는 적폐의 나라라고 하셨으니까요


정민은 움찔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는 ‘설마’ 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걸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해야죠


정민이 미간에 힘을 주고 기혁을 봤다. 그러자, 기혁이 타오르는 눈으로 답했다. 


적폐의 나라니까하나를 바꾸려면 전체를 다 바꿔야죠


그때 기혁을 바라보던 정민의 눈빛, 바로 그 눈빛이 지금 정민의 눈빛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혁 자신의 눈빛이기도 했다. 정민과 통화하며 “이제 적폐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거든요”라고 말한 직후의 눈빛이다. 둘은 어느새 하나의 눈빛이 되어 세상을 보고 있다. 



끼어들지 마세요유정민 의원


한국당 권성종 간사가 힐난했다. 


여기가 무슨 시장입니까장기혁 의원이 말하세요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데서 새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세계 상위 62명이 가진 부가세계인구 50%가 가진 부보다 많습니다


한 마디 거든, 진보당 노희천 의원이 씨익 웃으며 여당석을 바라보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한국당 간사 권성종과 김정태가 사자를 물어뜯는 하이에나 떼처럼 동시에 덤벼들었다. 


저 62명이 조금씩만 나누면세계 인구 절반의 인생이 바뀐다는 말입니다. 62명이 조금씩만 주머니를 덜어내면콩고 소년병의 손에 총 대신 연필이 쥐어지고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천막대신 학교가 세워집니다먼 나라 이야기라고요우리나라 역시 같습니다상위 2%의 부자가 마음을 열면조금만 열면이 나라는 바뀝니다전체가 바뀌어요그걸 결정하는 단초가 바로 여기입니다우리부터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아니주세법을 본 회의에 올릴지 말지 논하면서이게 무슨 소립니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위원장이 타박하듯 말했다.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모두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장기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나라는 모든 게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기혁은 잠시 멈췄다. 그러자, 국회 방송을 통해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도 잠시 멈추며 집중했다. 아니, 여기에 시선을 둔 세상 한 쪽이 모두 멈춘 듯 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혁의 입과 함께 다시 움직였다. 


캔맥주캔맥주 하나제가 바란 건 그 뿐이었습니다오직맛있는 캔맥주 하나를 마셔보자정말 그 뿐 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알기 쉽게 말하세요


위원장이 초선 장기혁을 가르치듯 나무랐다. 


인기 얻으려고 쇼하지 마세요장기혁 의원


위원장의 말에 힘을 입은 김정태가 끼어들었고, 이를 중재하듯 위원장이 다시 물었다. 


왜 이 법을 통과시키려 합니까


내가 맡은 일을 온전히충실하게만 해도 이 사회가 잘 작동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맥주랑 무슨 상관이이에요?


위원장이 말하자, 카메라 셔터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기혁은 위원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침을 삼킨 뒤,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의 육안으로 유정민과 노희천, 자신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는 보좌관, 그리고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자신을 응시하는 취재기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심안에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시청자 10만 명이, 그리고 어쩌면 다음날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게 될 사람들이, 그리고 어쩌면 훗날 땀 흘린 뒤, 맛있는 한 캔의 값싼 맥주를 마신 뒤 탄성을 지를 평범한 사람들이 보였다. 


카레집 주인은 건강한 재료로정성을 다해 카레를 만듭니다맛있는 카레를요구두 수선공은 튀어나온 못을 쳐내고높이가 다른 굽을 열심히 갈아냅니다그러면 우리는 덕분에 편한 신발을 신을 수 있습니다공무원은 정직하게 근무하고교사는 신념으로 분필을 잡고정치인은 보통사람을 위해이 정직하고 평범하고성실한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그게 제가 바라는 세상입니다그런데 왜 맥주냐고요


기혁이 장내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습니다어쩌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몇 조원의 경제효과를 거두는 진흥법도 아니고부동산 경기를 고양하는 법도 아닙니다하지만전 여기부터 시작합니다고급 외식집 앞에서 메뉴판을 보고 망설이는매일 매일 땀흘려 일하는 우리 아버지가우리 형이내 친구가주머니에서 천 원 짜리 두 어장으로 살 수 있는 행복부터 시작합니다그러니까이게 정말 맛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혁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높여 외치고 말았다. 


그런데쉽지 않습니다입에 군내가 날 만큼 뛰어다녀야하고욕을 먹어야 하고원인 모를 협박도 받아야합니다고작 맥주 한 캔 맛있게 마시고 싶을 뿐인데세법이 바뀌어야 하고대기업이 바뀌어야 합니다한강물을 공짜로 쓴 한강맥주도 바뀌어야 합니다언론이 진실을 보도해야하고, 50년 넘게 지배해온 여당이 도와줘야합니다고작맥주 한 캔 때문에요.


기혁은 여기까지 말하다, 잠시 쉬었다. 어느덧 장내는 기혁 외에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카메라가 기혁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제 말은 각자 자기가 맡은 일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온전히 하면 된다는 겁니다그것만 하면 내 삶과 공동체가 바람직해지고이 나라가 떠나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떠날 수 없는 나라가 됩니다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땅이 되는 겁니다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정치 풋내기니까요하지만이제는 압니다


김정태 의원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혁은 이날 중 가장 소리 높여 외쳤다. 


캔맥주 하나만 맛있어 져도이 나라는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요아니나라 전체를 바꿔야 맛있는 캔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을요부자증세도 해야 하고대기업 유보금도 걷어야하고언론개혁도 해야 하고노동법도 개혁해야하고국회의원 특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김정태 의원의 얼굴은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우리 국회의원도 노동자의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그래야 값싸고맛있는 맥주 한 캔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으으으으.’ 

김정태 의원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이젠 불체포 특권도 내려놓고특수활동비도 없애고국민 평균 연봉 받으며 일해야합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정태 의원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의자에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입에서 거품까지 물었다. 이제야 밝혀서 미안하지만, 한국당 김정태 의원은 전환장애를 겪고 있다. 이는 지나친 스트레스, 심리적 갈등을 겪을 경우, 몸이 마비되고 심할 경우 발작까지 일으키는 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증후군이다. 아, 왜, 현대사회에 질병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기혁이 맥주라면 환장을 못하듯 말이다.

 

김정태는 기혁을 따라다니며 공격하다, 그만 치욕스러운 장면을 엉겁결에 전국규모로 송출하고 말았다. 그 탓에 법사위 회의실에는 김정태의 발작으로 인한 당혹, 충격, 동정이 뒤섞인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침묵의 원인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침묵의 기저엔 기혁의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기혁의 발언에 동의하는 침묵인지, 찔려하는 침묵인지, 아니면 반격하기 위해 숨 고르는 침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는 것뿐이다. 박수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얼굴만 봐도 욕을 뱉을 것 같은 사내 한 명이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씨발. X나 맞는 말이네


누구냐고? 당연히, 경기일보 진슬기 기자다. 그런데, 어째서 산업부 기자가 국회에 와 있느냐고? 인생의 쓰라린 패배에 젖어 허우적거리다, 간만에 취재의욕이 발동한 앰네스티 언론상 출신 기자는 기자인생 최초로 데스크에 특종을 다발로 가져다주겠다며 큰소리 쳤다. 중앙일간지에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국제 언론상까지 수상한 기자가 특종을 안겨주겠다고 하니, 지방지 데스크는 간만에 파격적인 당일 부서 발령을 났다. 진슬기 기자는 그날도 나지막이 외쳤다. 


그래 한 번 해보자씨발


비록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몇몇 사람들이 욕설을 뱉은 진 기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진기자는 얼굴에 욕설이 가득한 표정으로 과거의 부장 바라보듯 인파를 노려봤다. 얼굴까지 욕이 밴 진기자를 보자, 사람들은 늑대를 본 강아지인 양 고개를 돌렸다. 이게 전부였다. 주세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는 날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



비록 세상의 한 구석에서 작은 박수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아직 세상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태풍 전야와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로부터 불과 일주일 뒤, 주세법 개정안은 신속처리 법안이 된다. 주세법은 서서히 단순한 하나의 법안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뒤집을 태풍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단 한 잔의 훌륭한 맥주만 있으면 행복한 남자, 아무것도 모르고 정계에 뛰어든 정치 풋내기, 하지만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 장기혁. 그는 자신에게 닥쳐올 거대한 태풍을 뚫고 과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파도 15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