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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현정 May 12. 2022

어렵지만 다음

[에세이] 인생을 대하는 어떠한 자세, 행복을 찾아서.

   

그는 알까. 당신이 만든 플레이리스트로 나는 오늘밤을 빛나는 글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단 것을. 사는 게 쉽지가 않은 세상. 어느 예술가가 이어놓은 의지를 이어받아 새롭게 창작을 한다. 누군가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엮어 누군가가 만든 공간에서 울려 누군가를 달랜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누군가가 쓴 글, 그린 그림이 또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닿겠지. 시간과 지역과 언어를 넘어 흘러 흘러 어딘가로. 생의 의지로. 아,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했던가.     




언젠가는 이 공간에 여름이 가득 차겠지. 그날의 나는 조금 더 까매진 피부로 키보드를 투닥투닥, 송금송글 땀 맺힌 목덜미를 선풍기 바람에 식히며 글을 쓸거야. 이천이십일년의 목표는 그걸로 하자. 조금 행복하기. 조금 더 행복하기. 사람과 세상을 많이 미워하지 말자. 너무 많이 화를 내지 말자. 슬픈 날에는 밖으로 나가 좀 걷자.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자. 돈이 좀 있다면 드라이브를 하자. 순간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사람에게 기대지 말자. 내가 홀로 이 세상에 놓여진 순간을 감미해보자. 그저 시간이 흐르는구나, 그 흐름의 결을 매만지며 시간을 하나하나 흘려보내자. 분노, 증오, 우울, 고통이 조금은 묻어있더라도 그래도 맑고 맑은 냇물을 따라 흘려보내자. 그러다보면 나는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을거야. 세상엔 아직 따뜻한 빛을 품은 존재들이 많고 그들의 힘이 얼기설기 세상을 뒤덮고 있지. 그러니 나는 안전할거야. 다치지 않을거야. 괜찮을거야.     

 

열심히 살아놓고 행복하지 않는다는 건 안타깝잖아. 열심이었던 내가 참 웃기고 어여쁘다 생각이 들면서도 그것만이 생의 의미이자 해답은 아니란 걸 안다. 아직은 왜 살아야하는 것인지, 왜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하는 지 제대로 아는 것이 없지만 이번 생은 그 해답을 마주칠 수 있는 어느 여정일 뿐이라 생각해야지. 그러니 오늘은 조금 더 행복하자.     


이것저것 너무나 어려웠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마음을 예쁘게 고쳐먹는 것도 어려웠다. 어려웠다라는 어미가 부적절할 만큼, 그냥 여전히 어렵다. 그리 말해야지. 잘 사는 것이 어렵다. 어리광 피우듯이, 엄살 피우듯이, 그냥 괜시리 무너지고 싶을 때, 무너뜨리고 싶을 때가 바람결을 타고 쉬이 불어온다. 잘 지내는 것이겠지 그럴만 하다가도 영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상념에 빠진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 친구에게, 애인에게. 아,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전화가 아니라, 아무런 말을 못하리란 걸 안다. 그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냥 잘 지내야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잘 지내는 건 너무나 어렵다. 잘 지내면서도 어렵고 잘 지내지 못할 때는 더 어렵다. 그러다 사소한 것들이 나를 툭 치고 울리고 간다. 요 며칠은 봄바람이 그랬다. 잘게 부서진 봄햇살이 가득 발린 봄바람, 새학기 때 이제 막 수업 들으면서 친구들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으며 공부 좀 해볼까 가벼운 스니커즈를 신고 나서던 날들. 그런 봄날이 생각나는 봄내음이 그랬다. 그런 툭툭은 행복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간다. 행복한거란 걸 알려주고 간다. 행복하다고 말하게 해준다. 행복하다. 그렇게 말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걸로 또 툭툭.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때도 있다. 그런 날들이 지난겨울 내내 너무나 많았다. 심장병이 생길 만큼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봄이 오고 있다. 홀로 잠들 밤들이 너무나 많고 먼 길 떠나야하는 시간이 계속 다가오지만, 봄이 여름이, 가을과 그 다음이 계속 계속 오고 있다. 다음이 있다. 다음이 오고 있는 중이다.      


기어코 살아내서 또 계속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되는 게 영 시원찮고 나란 존재가 참 모자르고 내 삶이 한없이 부질없이 느껴지더라도. 괜찮아. 글을 쓸거니까. 그림도 그릴 것이니까. 숲에 가서 나무가 머리를 흔드는 것도 볼 거고 바다에 가서 파도가 끊이지 않고 이 땅을 쓰담는 것도 볼 것이니까. 터벅터벅 산책을 하다가 계절 냄새를 맡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어느 예술가의 노래 소리, 이웃 주민들 혹은 동식물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을 테니까. 아빠 손을 잡고 바다에 풍덩하는 눈부신 여름도 올 것이고 애인과 해가 긴 동네에서 맛있는 저녁 요리를 해먹을 테니까. 경박스럽지만 진실됨 하나는 끝내주는 입담으로 친구들과 하하호호 껄껄거리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테니까. 드러누워 열몇 시간을 잘 것이고 해야하는 일, 하고팠던 일에 못이겨서 결국 노트북도 몇번이고 툭툭 댈테니까.      


나는 그냥 나의 하루를 살면 된다. 불안하고 불만족스럽지만, 답답하고 막막하겠지만, 성에 안차고 스스로에게 화도 나겠지만 어쩌겠어. 이토록 어려운 것이 나의 삶인 것을. 굳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 것이 나인 것을. 그런 글이나 쓰고 그런 그림밖에 못그리고 그 정도 성과밖에 못내고. 변덕스럽고 제멋대로고 무책임하고 게으르고 대책 없고 뒤틀려버린 게. 너무 잘 울고 웃고 목소리도 너무 크고 주관도 너무나 뚜렷한 게. 그게 나인걸 어떡하겠어. 이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걸.      


너무 어려운 삶인데, 물론 내가 부족해서 이정도의 레벨도 어렵다고 칭얼거리는 것이지만, 그냥 하루를 살자. 해 뜨면 일어나고 달 뜨면 잠들고. 이게 나의 삶이려니, 그러고 살려고 한다. 무엇을 하든 어떤 과정과 결과를 맞이하게 되든 사실 쉬이 괴로워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이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는 걸 알아채버렸다. 그러니 이대로 수수방관할 수 없지.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그러니 어렵게, 어렵게, 행복해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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