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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현정 May 12. 2022

여름날 모래성 짓기

[에세이] 언젠가 부서질 모래성이라도 만들 때 만큼은 행복할 수 있기를.

요 며칠을 비가 오더니 날이 희뿌옇게 안개를 입었다. 촉촉한 공기 사이로 여름 내음 물씬 느껴져서 어느덧 여름 앞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거부할 수 없는 여름이 와버리고 말았다. 유월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엄습하고 적셔놓는다. 사랑해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 여름들이 떠오른다. 뜨겁게 더웠고 땀이 주르륵 흐르던 여름들. 상냥한 유월이 가버리면 매서운 칠월과 미친 팔월이 온다. 얼마나 새까매질지 모를 이번 여름. 잘 지낼 수 있을까, 계속 의문이 드는 밤.     



너무 많은 생각을 할땐 글을 써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겠을 때에도 글을 쓴다.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이 이리저리 치이다 삐죽 실밥 끄트머리를 내주었을 때,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몇자를 적다 보면 어느새 툴툴툴 잔뜩 꼬인 실뭉치가 풀려서 그 속을 만나게 된다. 잃어버린 내 마음 한 조각을 얻고자 오늘도 물레를 돌린다.


이상한 마음이 드는 날에는 이상한 노래를 해야 한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겠지 싶은 날에는 더더욱 아무도 못알아들을 노래를 한다. 속이 어지럽고 머리가 울리는 이상한 노래. 안타까운 영혼을 위해 부르는 노래. 세상과 유독 동떨어져있는 느낌이 들 때엔 까만 하늘, 까만 들판에 홀로 드러눕는 상상을 한다. 바람이 온 몸을 훑고 가고 촉촉해진 눈망울로 시간을 벗삼아 별을 세는 일.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이 하나만을 위하여 부르는 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지 번번히 되짚어본다. 이마저도 아직 덜 아파서 생각이란 게 가능한 것이려니, 잠시뿐일 고통을 마음 속 깊이 꾹꾹 눌러놓는다. 아직은 내가 버틸만해서, 당신이 날 아프게 해도 나는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고자 조금은 더 노력할 수 있는 것일테니. 아주 잠깐일 알량한 노력을 고온에 단조하듯 열심히 두들긴다. 제발 버틸수 있을때까지 버텨라, 심심찮게 두들기는 소리에 심장이 약해져간다. 언제나 나는 참 모자란 사람이구나 같잖은 반성도 든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지금의 우리는 그런 시간을 걷고 있는 걸.     


잘 지낼 수 있을까? 다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나를 해치지 않고 하루하루 하늘을 사랑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 글을 읽고, 노래를 듣고 노래를 하고, 사람을 그리고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하루.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똑같은 하루에 불만이란 딱지를 스스로 붙여버리는 모진 인간이라 내일의 나에게 벌써부터 미안하다. 내일도 싱겁게 살아버릴 것임을 알기에, 내일마저 불만을 걷어내지 못할 줄 알기에. 그럼에도 내일은 조금 더 힘을 내서 소설 하나를 읽고 더 힘이 난다면 붓을 잡아볼 것이다. 만약 다른 힘이 난다면 한 시간 정도 산책할 것이고 또 다른 힘이 생긴다면 컴퓨터로 해야할 일들을 마주하겠지. 물론, 월요일에 해도 된다. 아무도 나를 죄여오지 않는데 나는 왜 나를 옭아매지 못해 안달인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의 가장 큰 언덕은 내 스스로임에 심장이 하얗게 물들어간다.      



 

세상살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그럼에도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 알고 있던 것들은 모래사장에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는 것임에 굳이 굳이 놀라며 매 순간을 이어간다. 오늘은 어제 생각보다 살아봄직 했으며 내일은 오늘의 걱정 혹은 기대보다 별 것 없으리라. 어느날 갑자기 말같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연약한 나의 세계가 너무나도 손쉽게 부서져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조차 또, 또 오겠지. 그러니 부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자. 어짜피 언젠가 부서질 모래성이라면 만들 때 만큼은 행복할 수 있기를. 눈에 보이는, 심장이 먼저 깨달은 단점이나 문제점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삼지 말자. 이 뜨거운 여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모래성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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