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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현정 May 12. 2022

무릉행 야간버스

[에세이] 2019년 여름, 울란에서 무룬으로

1. 한국에 돌아가면 매우 잘 지낼거라는 그런 느낌같은 느낌이 들어. 



2. 무릉을 향하는 야간버스는 60여명을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질주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잿빛의 하늘과 불에 그을린듯 까만 땅. 내 어디가서 자랑할 것 하나는 수평선은 수학자의 언어처럼 깨끗하게 정돈된 하나의 선이었다면 지평선은 지구의 맥박마냥 마구 요동치는, 오돌토돌 지멋대로 굽어있는 미친 곡선이라는 것이야. 수평선만 줄곧 봐온 나는 직선이 아닌 지평선에 놀라고. 지평선만 봐온 몽골사람들은 바다를 보고 말을 잃는 거겠지. 누군가의 글에서 남해가는 버스 내내 시끄럽던 몽골 출신 노동자들이 터널이 지나고 바다가 나오자 일제히 조용해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밤의 침묵도 내 안의 경외감도 이 땅을 밟고 벅차올랐던 것처럼, 나에게 들판은 바다와 같고 창공은 우주와 같아. 역시 나, 여기까지 오길 너무나 잘 한것 같아. 지난 날의 나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3. 술기운이 가시질 않아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었던 어제는 지나갔다. 사람의 인연이란 어떻게 흐르고 맺어지고 지워지는 걸까. 마치 어제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게 태초의 물음으로만 울음으로만 가득하구나. 


4. 도시의 불빛은 나를 현대인으로 만들어. 글자를 읽고 인간이 만든 빛에 두눈이 먼 현대인이 되는거지. 바람에 내쉰 숨을 얹어 보낼 줄 모르고 손을 뻗어 하늘을 쥐어잡을 줄도 몰라. 그냥 끈을 고쳐 매고 신을 신고 뚜벅뚜벅 시계에 따라 움직일 줄 아는 현대인이 되는거야.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글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언어를 내 입 안에만 가득 넣고 소리없이 눈빛 하나로 별빛 몇개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이란 얼마나 고고한 것이길래 수많은 생명들이 매일밤 사경을 헤메이는지. 


5.


6. 어떤 이는 글에서 몇번이고 우리들이 왜 자꾸 여행을 떠나는지 물었는데 그건 사실 딱히 답을 찾기위한 질문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밀었음이 분명하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아야했기 때문이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위해 떠나야만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사실 우리에겐 집으로 돌아길 도와주는 은빛 구두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7. 수십 수백 수천년 전의 우리 언니는 지금의 여길 지나면서 들판에 대고 속삭였다고 한다. 내가 나를 잊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그녀의 저주같은 축복은 마법이 되어 내 안에 내 지음안에 우리 자매안에 저 냄새나는 들개안에 스며들었지. 그래서 나는 이 야밤에 굳이 인간이 만든 빛을 켜고 글자를 누르는 것이야. 내가 구두를 신고 숫자에 맞춰 칼같이 살아가게 된다해도 잊혀지지 않을 것들. 이 세계 먼 어딘가에는 지구의 심장을 닮은 곳이 있고 그곳에서 울퉁불퉁하게 제멋대로인 생을 사는 영들이 있다는 것. 내가 오늘 내 꼬리를 여기에 담구고 지난 날의 언니와 조우하여 우리 일부를 여기 던져두고 갔다는 것. 그리하여 어느 손이 날 밀지 않아도,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아도, 딱히 어떠한 의무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신발이 없다해도 나는 다시금 긴긴 생을 떠나고 이어붙이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기적처럼 살아숨쉬는 이 안의 작은 축복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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