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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현정 May 12. 2022

고향 없는 번데기의 애벌레 시절

[에세이] 번데기가 수백번 진화하면 뱀이 된다는데

꾀쬐쬐한 꼴을 하고 땀을 흘리는 열 한살 소녀가 있다. 머리는 조선여자답게 하나로 묶었지만 사방팔방 잔머리가 삐져나와 사자 갈기같은 모습이고 민소매, 반바지, 샌들을 신고 모래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게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아침에 엄마가 강제로 물 말아 준 밥을 먹고 어기적 나오면 스판 바지 손글씨 광고가 붙은 작은 가게 앞 큰길 횡단보도에 선다. 지상철 역 간판 위로 통신사 광고가 떡하니 붙어있고 맞은 편엔 패밀리 레스토랑이 보인다. 길을 건너면 저 레스토랑 주차장 쪽으로 몰래 들어가는 것이 목표. 직원에게 걸리지 않고 숲 덤불을 넘으면 약 5분정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그렇게 학교에 가도 맨날 지각이더라. 오늘 지각한 사람에 어김없이 이름이 쓰이고 정년을 바라보는 할머니 담임 선생님은 유독 나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게 느껴진다. 반 애들에게 친한 척 말도 걸어보고 불량식품 먹을거리를 내보이며 환심을 사려하지만 도통 잘 먹히지 않는다. 인생 따로국밥으로 산지 어언 11년, 실속없는 남자애들의 장난에도 응하지 않고 그냥 홀로 하교를 한다. 하굣길의 포장마차에서 컵볶이 하나를 사먹으면 그게 참 좋더라. 친구가 없어서 2천원이 넘는 튀김을 시킬 수가 없는 게 속상하긴 하지만 용기를 낸 날에는 야끼만두 하나에 500원으로 팔아달라는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대충 주워 먹고 나면 새로 생긴 센터에서 여는 수영 프로그램에 가서 진빠지게 물장구치느라 온몸이 녹진해진 채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집에 왔다.      


그리고 수영을 가지 않는 날, 수학 학원도 가지 않는 날 또 여름 방학이면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놀이터에서 흑장난을 하며 놀았다. 그게 지겨운 날엔 인라인 스케이터를 타고 연극 배우마냥 컨셉을 잡고 씽씽 달렸고 주인 없는 자전거가 있냐고 묻는 내게 버려진 성인용 자전거 하나를 건네준 경비아저씨 덕분에 자전거도 타고 다녔다. 뒷자리에 여동생을 태워 아랫동네 고무가 깔린 놀이터에 갈때면 나보다 어린아이들이 많아서 눈치가 보였다. 아, 코요태의 순정이나 쿨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동네 중형 마트에서 콘소메펀치맛 포테토칩을 사먹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건 그 마트에서만 팔았다.      


자전거를 타고 윗동네로 가면 건물앞에 인공 분수를 설치해둔 큰 건물이 있었는데 거기 분수대에서 조약돌을 주워가는 것도 좋아했다. 주말이면 여동생을 태우고 00아파트가 있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끝도 없이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연거푸 타고 3층에서 유희왕 카드와 아바타 스티커 옷 입히기 세트, 비즈공예 1000원짜리 세트를 사기도 했다. 어느 날엔 그 패밀리 레스토랑 건너편에 생긴 새 아파트, 이 편한 세상 아파트에 주민인 척 놀러가서 아무도 없는 신식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지. "우리 이 아파트에 사는 척하자." 아랫동네에서 좀 더 내려가본 날에 다이어리와 지갑, 스티커와 비즈 등을 파는 팬시샵을 보게 되었는데 어린 날에 엄청나게 대단한 가게로 느껴졌었다. 어쩌다 만난 엄마 친구 아들딸들과 어울릴때 처음으로 이누야샤라는 만화책을 보게 되었는데 2권만에 키스씬이 나와서 얼마나 놀랬던지. 이후에 티비에서 이누야샤를 보고 모두가 그에게 빠졌을 때 나만의 이누야샤를 빼앗긴 기분이 들어 너무 힘들었다. 그때 달빛 천사도 함께 보았는데 반에서 풀문을 정말 잘 따라 그리는 조용한 여자애가 있었다. 왜 그토록 잘 그리나 했더니 만화책방에서 빌린 달빛천사 위에 종이를 대고 그리며 연습한 것이었어. 난 아직도 그 애가 그 여름날 방바닥에 누워 노래하는 풀문을 그리던 게 생각이 난다.      


쿨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산 날, 정자에 누워 만화책을 보았지. 동생이 읽는 속도가 느려서 너무 답답했어. 책을 빨리 반납해야 다른 걸 빌리는데. 매미 소리는 너무나 컸고 나는 목이 말랐지만 다른걸 사먹을 돈이 없어서 과일파는 트럭 아저씨에게 자두 두 알만 500원에 팔아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렇게 며칠을 그 아저씨한테 자두 한두 알씩 사먹었는데 엄마에게 들켰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민폐를 끼쳤다며 자두를 왕창 사가지고 오셨다. 자두가 한번에 많이 생기니 그렇게 맛있지가 않았다.      


엄마는 그 집에 외할머니를 부르는 걸 싫어했다. 할머니가 그 집을 코딱지만한 집이라고 불렀기 때문일까. 아빠는 주말이면 내가 늘 재방송으로 보고 싶어했던 디지몬 프론티어를 못보게 했다. 그리곤 자들끼리 거실에서 놀면서 나보고는 방에 들어가 눈높이 학습지를 하라고 뭐라고 했지. 그래서 눈물 적셔가며 수학 문제를 풀곤 했다. 내 열한 살은 그랬다. 철봉이 뜨거워 물집이 잡혀도 열심히 놀이터를 휘젓는 장군이었고 자전거 하나만 있다면 반경 6~700m는 족히 되는 거리를 휘젓는 마법사였다. 생에 처음 친구를 부른 생일 파티란 것도 해보았고 시덥지 않은 개그를 치면서 반에서 개구장이 역을 도맡아하는 짝꿍으로부터 고백도 받아보고 플로피 디스크에 파워포인트를 숙제로 해가서 담아보기도 했다. 미술부 방과후 활동을 했는데 거진 졸면서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을 보며 미술로는 밥먹고 살지 못하겟다 생각했고, 체육 선생님이 이름과 얼굴이 참 이쁜 여자애 하나를 자꾸 놀리는 걸 보며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네 살 터울 동생이랑 최초로 학교를 같이 다녀서 종종 그 애를 데리고 하교를 했다. 한참을 놀다가도 저녁밥 짓는 냄새를 맡고 알아서 귀가를 하기도 했던 때였다. 아, 재밌는 게 생각났다. 모종의 일로 학교를 하루 이틀 안나오다 돌아왔을 때 나와 한 여자애 빼고 마니또를 다 했더라고. 그래서 우리 둘 보고 남은 종이를 고르게 했는데 내가 뽑은 게 나를 좋아하는 어떤 남자애였다. 근데 나처럼 학교에 안나와 남은 종이를 뽑은 여자애가 대뜸 자기가 그 남자애 좋아하니까 마니또를 바꿔달라 하는 거야. 근데 난 또 내가 이걸 바꿔주면 나 착하다고 좋아해줄줄 알았거든. 그래서 바보같게도 흔쾌히 바꿔준 기억이 있다. 나도 그 애 좋아했는데. 지금은 뭐 이름조차 기억이 안나지만.      


만약 내가 거기서 초등학교도 졸업하고 중학교도 다니고 고등학교마저 다녔다면, 나에게도 골목골목마다 10살 이전부터 묻혀 놓은 기억들이 쌓였을려나. 난 정말 힘들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냈다. 고등학교도 힘들었지만 그건 좀 다른 맥락이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진정한 친구라 할 사람이 없어서. 허구헌날 전학 다니고 왕따 당하고 다투고. 시작부터 미움받는 게 당연했다. 아무도 날 좋아해주지 않으니 나조차도 날 좋아하기가 어려웠다. 열네 살까지도 가상의 친구를 몇명씩 만들어서 내 세계에서 노는 것을 관두지 못했고 그렇게 믿었다. 어딘가엔 그런 사람들이 있고 나는 꽤 괜찮은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나도 빛나는 존재. 좋아할만한 존재라고 믿고 싶었다.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내가 스스로를 죽이거나 해하지 않고 살아낸 것은 사실 만화의 도움이 컸다. 이누야샤가 너무 좋았거든. 그 세계가, 그 사람들이. 나도 그런 흥미진진하고 유의미하고, 내가 쓸모있는 사람인 ‘모험’이 하고 싶었다. 달빛천사도 나를 살린 만화였다. 풀문이 부르는 노래 Eternal Snow를 들으면서, New Future을 부르면서 언제까지고 이겨내리라 주문처럼 외웠지. 내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그 감성에 흠뻑 잠겨서 청소년의 눈과 마음, 머리로 이해하고 이겨내기 어려운 시간들을 견디고 버티었다. 그렇게 생존할 수 있었다. 그 숱한 날들이 지나서, 내가 나를 죽일 수 있던 그 무한하게 많았던 날들이 지나서, 십여년이나 지나서 나는 어른이 된거야.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야. 정말 길었다. 아직 서른 해를 넘기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길었다 그렇게 느껴져.     


이용신 성우의 2019년 크리스마스 시즌 돌아온 풀문 콘서트 영상을 보고 눈물이 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듣던 열한 살의 나는 지독했던 열네 살, 스스로 서가기 시작 했던 열입곱을 건넜다. 무너져내린 스물, 다시 숨을 불어넣은 스물 하나, 반 이상 미쳐있던 스물 둘, 강했던 스물셋, 당당하던 넷, 재밌던 다섯, 마음 고생 몸 고생 심하게 한 여섯, 어떻게든 흘러간 일곱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정말 여기까지 왔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모든 시절을 맞이하고 흘려보내고 여기에 도착했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벗고 나오면 나비가 되지않나. 나는 번데기만 한 이삼백번 벗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나비가 될 운명이 아닐 수 있겠다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비가 되는 애벌레가 아니라 번데기를 거쳐 끝없이 탈피하고 탈피하는 뱀일지도 몰라. 그렇다고 이무기가 되고 용이 되고 그럴 것까지 없어. 언제까지고 죽은 나를 거둬내고 그걸 벗어내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삶에 그뿐만이 아니란 걸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덜 비관하며 덜 좌절하며 살자. 잘 커준 내 자신에게, 잘 키워준 가족과 지인, 이 세상에게 감사하며. 비록 탈피만이 운명인 번데기지만 건너온 수많은 과거를 고향 삼아 내일의 나에게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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