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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인공지능과의 유대, 가능할까.

홀로그램과의 진정한 관계맺기, 가능할까.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을 보며 떠올랐던 또 다른 영화가 있다. 바로, 2014년에 국내 개봉했던 <그녀, Her>다.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특히 <그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 속 인공지능은 죽은 자를 대신한다. 조던 해리슨의 원작 <마조리와 프라임>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든 다섯의 마조리가 죽은 남편의 젊은 시절을 복원한 인공지능(홀로그램) 월터와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월터는 마조리와 그 외 가족들의 기억에 의존한 정보들을 토대로 대화를 이어간다. 인공지능은, 대화가 축적되고 정보가 쌓이면서 '딥 러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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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정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조리의 사위와는 달리, 딸 테스는 인공지능에 시큰둥하다. 사람 같지 않은 물체를 사람인 것 마냥 대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물론, 테스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마조리와 그녀의 사위는 홀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한다. 만질 수도 없거니와, 제작된 한 가지 형태로써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홀로그램 형태의 인공지능. 나는 그의 존재가 한편으론 고마울 것 같다. 한데, 이 인공지능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살아있는 이들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 사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 가능하며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심지어 유실된다. 그로 인해 변형되고 덧칠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 그와의 추억에 대한 갖가지 기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에 의존한 정보가 입력된 인공지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32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데다, 뛰어난 검색 능력까지 갖춘 뛰어난 인공지능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개인적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은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는 한계다. 또한 잊혀지고 변형되는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시대가 발달하더라도 나아질 수 없다.

그래서일까. 마조리의 기억에 의존한 인공지능 월터는 살아 생전의 월터와는 전혀 다른 경험의 새로운 산물로 보여진다. 월터가 마조리에게 청혼했던 날 함께 본 영화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지만, 치매에 걸린 마조리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카사블랑카>를 봤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기억의 특색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인공지능 월터는, 어쩌면 과거의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소망(혹은 미래형)을 담은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우리의 관계, 기억과 인간 생의 한계 등에 대한 다채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인간에겐 다양한 한계가 있다. 목숨의 유한성, 기억의 모호함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생과 기억을 포함한 모든 것들에 있어 완벽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은 없기에, 우리는 인공지능 등 과학 기술에 의존해 욕망을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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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공지능에 시큰둥했던 테스 역시, 엄마 마조리의 홀로그램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나 역시 잃어버린 존재와 간접적인 만남을 할 수 있다면, 홀로그램과의 만남(일회성에 그칠지라도)을 경험해보고 싶다. 인공지능들이 읊는 대사는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 많은 시간들을 허락받은 인공지능들이 부럽기도 하다. 인공지능과의 관계, 가능할까. 이 물음 때문인지 <그녀>가 계속 오버랩됐던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엔딩 신(scene)이었다. 인공지능. 그들만의 세계. 영화가 그린 것처럼 왠지 미래엔 그런 도시가 생겨날 것만 같다. 길지 않은 러닝 타임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등장 인물들의 대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라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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