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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

우정에서 성공으로

모든 걸 잃었고, 그래서 스스로가 무너졌다고 느꼈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마술'같은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바그다드 카페> 속 주인공들의 삶처럼 말이다.


영화는 황량하고 먹먹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여행 도중 남편과 다툰 후 정체 모를 사막 한 가운데를 헤매던 독일 여자 '야스민'은, 도로 한 켠에 덩그러니 놓인 바그다드 카페를 발견한다. 모텔 겸 카페(bar)인 이곳의 상황은 문만 열려 있을 뿐, 거의 망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수준이다. 야스민의 상태 역시 말이 아니다.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오느라 땀은 비오듯 흐른 상태인데다, 흙먼지까지 둘러쓴 상태다. 어떻게든 몸 가눌 곳이 필요했던 야스민은 꺼림칙하지만 바그다드 카페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출처: Daum 영화



카페의 여사장 '브렌다'는 그런 야스민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녀의 눈빛에는 호기심 뿐 아니라, 의심, 불신이 뒤섞여있다(심지어,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여행까지 와서 왜 이(딴) 곳에 머물지?'라는 생각이 역력했을 것이다. 정당한 비용 지불을 행했음에도 '이상한 눈초리들'을 신경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야스민. 그 이상한 눈초리들이란, 브렌다의 가족들과 모텔에 머무는 사람들을 뜻한다. 형편 없는 카페 내 형편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게 된 야스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결론은 성공적이다. 이방인이자, 비범한 풍체를 지닌 야스민은 황량한 환경과 히피미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곧잘 적응해나간다. 그녀의 적응기는 혼자만의 분투와 다름 없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선한 본능을 발휘하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인물은 단연 브렌다이다. 건들면 때리기도 할 것 같던 기세는 야스민의 호의에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결국 변해간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나아가, 이들의 우정은 점점 깊어져 바그다드 카페의 성공을 이룩하는 '신화'를 기록한다. 이 성공기에 대해 나는 '야스민 효과'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출처: Daum 영화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제 욕망 채우기에만 급급한 카페 내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야스민의 등장은 기적의 여신과 다름 없다. 늘 불만 가득했던 브렌다의 결핍을 처음으로 채워준 인물이 바로 야스민이었던 것. 그녀들의 우정은 천생연분과도 같다.



출처: Duam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는 초중반과 중반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황량하고 쓸쓸했던 분위기는 야스민 효과로 인해 따듯하고 열기 가득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녀의 풍만한 외형처럼, 바그다드 카페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는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돼 원만하게 어울리며 웃고 즐긴다.


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OST 'Calling you'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음악은 영화의 시작, 야스민과 브렌다의 쓸쓸한 모습들을 비출 때의 배경으로 깔리는데, 그래서인지 마음이 허전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면 이 음악이 줄곧 떠오른다.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Calling you' 대신 밝고 경쾌한 음색의 곡들이 이어지는데, 그 덕분에 두 여자의 우정과 그들이 빚어낸 기적들이 더 빛을 발휘한다.


속 깊으네 야스민은,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았던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길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브렌다까지 변화시킨 그녀는, 끝내 사랑까지 쟁취해낸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감동 요소들이 존재한다. 우정과 성공, 그리고 사랑. 이것들의 기저에는 '공감'과 '이해'가자리하고 있다. 야스민과 브렌다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남편과의 다툼(결별)이라는 공통사가 존재했다. 다른 면들은 이해하고 비슷한 면은 공감하면서 만들어진 관계는,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건 아니지만 기간을 무색하게 만들만큼의 기적을 일궈냈다.


<바그다드 카페>는, 앞선 03화에서 소개했던 영화 <카모메 식당>과 닮아있다. 갈 길을 잃은 여자들이 모여 이뤄낸 기적. 자, 보라. 이렇듯 삶에는 '마술의 순간'들이 이렇게 존재한다. 또한, 언제 어디에서 기적을 나눌 선물같은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멋진 우정은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개인의 노력보다 관계와 협력에 의해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의 특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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