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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목숨>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굉장한 영화를 봤다.

이 영화를 보며 나의 감정이 이렇게나 다양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때론 나 스스로도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먹먹하고 안타까운 감정도 들었고, 때론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다.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나의 감정들'을 확인시켜 준 작품이기에 대단한 영화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영화.


제목에서부터 근엄함이 느껴지는 <목숨>. 예상가능하지만 결코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작품인데다 장르까지 다큐멘터리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영화 속 장소가 되는 곳은 호스피스 병동이며, 다큐 속 인터뷰이(출연자)들은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들이다. 관념적으론 침울함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인정한다. 죽음은 나와는 늘 멀리 있는 것이며, 직접 경험하는 순간은 기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관념적으로만 단정지을 수밖에 없는데, 연상되는 단어는 슬픔, 공포, 끝 등 다소 침울한 쪽의 것들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이 부정적인 행태로만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죽음을 소재로 다룬 외화들을 보면 그렇게 슬퍼만 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그들은 여생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최상의 삶을 만끽하는가하면, 그들 주변인들도 내세의 행복을 빌어준다. 


먼저 감상한 입장에서 이 영화는 보기에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알레고리는 불폄함이나 우울함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가 감상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희망'의 긍정코드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 '목숨'을 걸지만, 죽어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는 '큰 병이 나고서부터'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 인간은 어차피 죽는 존재다.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일진대, 우리는 그 관념을 전혀 인식치 않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장소, 즉 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여생의 가치를 인지하게 된다. 물론, 그것을 깨닫고 여생이라도 행복하면 그것 또한 만족할 만한 마무리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그 순간 이후로 '더 우울해지게 마련'이다. 가령, 암 말기 환자들에게 더 힘든 항암치료가 권해진다. 가족들은 하루라도 더 그들과 함께하고 싶은 심정이라 하지만 그것 또한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항암치료를 받고 6개월을 더 살아갈 것인가,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3개월을 더 살 것인가. 삶의 양과 질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점이 옳은 것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생각됐던 것은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점.


막상 아프기 시작하면 삶의 즐거움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물론, 마인드에 따라 개인의 편차가 있겠지만 육체의 한계는 정신의 그것과 비례한다). 왜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즉, 늦었다고 생각될 땐 어떠한 부분에서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목숨>에서는 죽음에 부딪치기 전에 최상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이제 영화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앞선 글들이 너무 진지하고 혹자에겐 우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하지만 이 영화는 철학적인 면을 갖춘 동시에 위트도 겸비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영화의 특징인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인터뷰이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개성이 확실하다. 침착한, 다소 신경질적인, 위트 넘치는 인물들이 만들어낸 영화이기에 연출된 작품(다큐멘터리 외 장르)들보다 더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았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신부수업 준비 중인 26세 청년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감독의 페르소나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감독의 목소리는 일체 배제되는데, 신부수업 중인 청년의 사상으로 감독의 연출의도나 그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적 죽음을 경험한 그가 육체적 죽음과 가까운 장소로 들어오면서 보고 느끼는 풍경과 깨달음. 그 메시지들이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바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며 온갖 생각들이 들었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양한 감정선 만큼이나 다짐들도 많아졌다. 가족, 친구들이 떠오르면서 그들과 보다 '즐거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막연한 좋은 관계 유지를 떠나, 오늘 하루를 '선물'이라 여기고 "즐겁게 살자!"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에 최선을 다 하자'라는 생각까지…. 죽음은 아무리 인지하고 대비해도 결코 내것으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점을 염두에 둔다면 확실히 삶의 질이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엔딩 노트'의 보급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죽음에도 권리가 있다. '잘 죽을 권리' 말이다. 의미있는 생의 마감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날들로 삶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어 준 영화<목숨>. 이 작품을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을 전해드렸지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더하고 싶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윤리의식에 대한 딜레마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케빈 카더가 '독수리와 소녀'라는 작품을 찍고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이 작품을 만들면서도 상당한 심적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충분한 이해'라고 말하면 건방지겠지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탄생한 작품인 만큼 값어치가 상당한 영화다. 더불어 임종 시까지 그들의 모든 것을 내어준 인터뷰이들의 값진 선물이기도 하다.


GV 시, 감독님께 죽음과 관련해 인상 깊었던(좋아하는)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감독님께서는 <비우티풀 Biutiful, 2010>과 <하나 그리고 둘 Yi Yi, A One And A Two, 2000>을 언급하셨다. 두 작품 모두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다시 한번 그 작품들을 꺼내어본 후 메멘토 모리를 각인하고자 한다.


이 영화, 개인적으로는 '강력히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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