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가 제일 잘나가는 여자였는데…”
높은 곳에서 작열하는 한여름의 태양처럼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다. 누구나 태양처럼 불끈 솟아오르기를 바라지만 태양빛은 그림자를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상 만사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망(만)을 바라며 살아간다. 그림자에 눈이 먼 채 말이다. 물론,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밝은 그림을 그리겠지만 인생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잘나가다가 한순간에 쪽박 신세가 되는 사람도, 그림자에 갇혀 살다가 빛을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측불가한 삶을 대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다.
태양은 높은 자리에 서기 위해 제 길을 따라 부지런히 오른다.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태양마저 제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당연히 노력해야 한다.
욕망
사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 더, 조금만 더 나은 삶을 갈구한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은 끈임없이 몸집을 불려가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커진 욕망덩어리는 한순간에 환상이 되어 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한 약간의 요소들이 채워졌다고 해서 만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유는,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하기를 바라는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허영이다.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남편과의 이혼과 파산으로 한순간에 망해버린 여성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상위 1%의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그녀는 무일푼을 넘어 천문학적 액수의 빚더미에 나앉게 됐다. 브루클린의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동생 진저(샐리 호킨스)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온 그녀는 재기를 꿈꾸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스민은 뼛속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재스민과 진저는 한 부모에게 입양된 배다른 자매, 즉 버려졌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재스민은 늘 진저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다.
주목해야할 점은 재스민과 진저의 이름이다. 사실 재스민의 본명은 자넷(Janet)이었다. 평범한 이름을 재스민으로 개명한 것이다. 꽃이름이기도 한 재스민의 꽃말은 ‘당신은 나의 것’인데, 남자를 유혹해 한탕 해먹으려는 재스민과 닮아서 재미있다. 한편, 동생에게는 생강(ginger)이라는 꽤 하찮은 이름이 지어졌다. 여기에서 진저는 짝퉁 명품백을 의미하는 진저백에서 따온 것으로, 재스민을 좇으려 하지만 발끝에도 못 미치는 진저의 삶을 반영한다.
허영
하지만 정작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허영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인물은 재스민이다. 온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재스민은 원하는 것은 대체로 다 얻을 수 있었다. 에르메스 버킨백, 카르티에 시계, 샤넬 트위드 재킷, 루이비통 여행가방은 그녀의 분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것들을 살 수 없는 상태다. 사실, 벼랑 끝에 선 상황이라면 저것들을 중고매장에 내놓을 법도 하지만 재스민은 끝까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버리지 못한다. 이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미련한 것이다.
재스민은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일등석으로 끊고, 택시기사에게 팁으로 100달러를 줄만큼 옛 버릇을 못 고친 상태다. 당장 낼 학원비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하면서도 샤넬 재킷과 버킨백을 놓지 못하는 허영에 허덕이는 그녀는 가련하기 그지없다.
‘한때는 내가 제일 잘나가는 여자였는데, 이제는 그들의 신발 사이즈를 재고 거기에 신겨주고...'
이렇게 과거에 미련을 가진 채 현실을 한탄한들 재스민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지금까지 제 힘으로 뭣하나 이뤄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를 꿈꿨지만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아홉 살 연상의 애 딸린 자산가 할(알렉 볼드윈)과 덥석 결혼한 재스민. 학위도, 사회적 경험도 없는 그녀는 어떤 일에 대한 판단력조차 흐리다. 결국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준다고 아무 빵이나 덥석 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처럼, 의심과 의문 없이 살아가던 재스민의 섣부른 행동이 파국을 불러온 것이다.
결혼을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소중하니까(그런데 사랑만으로 결혼을 결정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자기권력의 결핍에 있다. 과거의 재스민은 할이 수시로 내미는 계약서에 읽지도 않고 사인을 해댔고, 지금의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모른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졸업학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하는 걸 멈춘 거예요. 그냥… 남은 인생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꿈은 크다. “학위를 따고, 알잖아. 좀 큰 일을 하고싶어.” 그 큰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밞아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재스민의 삶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계획과 노력이 결여된 삶은 위험하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자기권력을 갖지 못한 인간은 결국 무력(無力)에 둘러싸이고 만다. 재스민의 현재를 보라. 신경 쇠약과 우울장애를 달래기 위해 술과 약에 의존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허공에 대고 지껄이는 모습.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삶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
만약 재스민에게 자기권력, 즉 내실이 있었다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도적인 삶이 아닌 남자의 권력과 부에 의존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재스민. 그녀도 남자를 꼬시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한다. 무서운 것은 그 노력에도 허영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치과접수원으로 돈을 벌고 인테리어디자인학원의 어려운 수업을 따라가기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재스민은 또 다른 한탕을 노리고 파티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정치인을 꿈꾸는 부유한 외교관 드와이트(피터 사스가드)와 또 다시 급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를 꼬시기 위해 직업과 과거사를 모두 속이는 재스민에게는 자기연민이 내재되어 있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에게 거짓을 일삼는 것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삶은 위험하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양산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탄로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언제 들통날지 모를 거짓의 본질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상대의 눈을 피하고, 그러면서 자신감마저 잃어간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무너지고 만다.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권력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은 재산을 갖출 능력, 즉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자신감, 재산, 능력,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한 재스민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체적인 삶
우뚝 솟아오른 태양이 인간에게 권력을 행사하듯, 멋진 인생을 바란다면 온 힘을 짜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인간의 진정한 존재는 그의 행위이다.”라는 기준에서 보면, 재스민의 삶은 무가치하다.
우리는 <블루 재스민>을 보며 ‘나는 재스민처럼 안 살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파악해야 한다.
“글쎄, 그땐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몰랐어.”
남성 지식인들이 인정해주지 않았던 당대의 상황을 무릅쓰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프랑스의 학자 에밀리 뒤 샤를레(Émilie Du Châtelet)는 《행복론 Discours sur le bonheur》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것 중에서 첫째는 되고 싶은 것이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인데, 바로 그것이 거의 모든 인간에게 부족하다.”
이렇듯 진정한 자신이 되고 싶다면, 타고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지 못하면 타인이 그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능력은 있으니, 그것을 발견하고 선택하라. 갈고 닦은 능력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한 태양이 매일 아침 우리를 밝혀주듯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보상된다.
진짜 행복
그렇다면 진짜 행복을 위한 또 다른 요소들로는 뭐가 있을까. 행복은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외부(특히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는다. 행복을 목표를 향한 노력과 그에 다다랐을 때의 성취 등에서 느끼지 않고 남들의 부러움과 박수갈채로부터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호의를 얻고자 그에 들어맞는 소비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해낸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허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절로 다른 가치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재스민의 우울증은 자신이 무엇에 도전해야 할지, 도전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스민이 할 줄 아는 행동은 고작 울음으로 마스카라가 번진 흉측한 얼굴을 한 채 돌아다니는 것뿐이다.
<블루 재스민>은 진짜 행복은 주체적인 삶과 진심 어린 사랑에 있다고 말한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고, 재스민이 ‘루저’라 부르는 애인을 사귀지만 진솔한 사랑을 하는 진저는 큰 걱정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 허영과 거짓으로 얼룩진 삶은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현실은 법과 규율, 관습의 테두리로 짜인 거대한 상자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문제없는 삶을 위해 상자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양심 없는 자들은 제 욕심 채우기에만 급급하여 부도덕한 행각을 저지른다. 잦은 외도를 일삼고 사기로 돈을 벌어들인 할처럼 말이다. 순간의 쾌락을 쫓던 그는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낮과 밤, 밀고 당김, 오르내림이 교차하는 자연의 순리처럼 양극이 공존하고 순환한다. 사람의 운명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삶이 저마다 다르듯, 계층 혹은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상황이 내일 당장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중용을 지키려는 자연의 섭리는 일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안위에 대비해야 하고 타인을 향해 좋은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안위가 불안으로, 타인을 향한 총질이 폭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할의 사기극이 철창신세와 파산으로, 재스민이 쉽게 얻은 호화로운 삶이 한순간에 망가져버린 것도 이 같은 섭리에 의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우디 앨런은 재스민의 화려한 과거와 지질한 현실을 교차편집해, 그녀의 삶을 더 비참하게 그려낸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지만, 재스민의 삶은 들여다볼수록 더 희극적이다. 쉴 틈 없이 분노를 터트리는 재스민의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다. 자신의 삶이 비극이라고 느끼는 것은 재스민, 당사자 뿐이다. 그녀를 제외한 스크린 안팎의 모든 이들은 그녀의 현실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나의 욕망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성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내리쬐는 태양의 신호를 받았다면 하늘을 올려다보자. 감히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한 태양은 제자리에 오르고 제역할을 해내기 위해 오늘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태양은 온몸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