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음 속에 가장 가치 있는 건 무엇입니까?
선택에 정답은 없다. 개인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타인의 선택을 비웃을 권리는 없다. 다만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선택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을 거쳐 신중한 선택을 했다면 최대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결정(위법 행위만 아니라면)을 했든 당신이 만족한다면 그게 정답이다.
영화는 “당신 마음 속에 가장 가치 있는 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그에 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화목한 가정, 부모와 형제자매의 행복,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는 것, 즐거운 일상 보내기, 낭만적인 사랑 등 무형의 가치를 최고라 답했다.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대답은 ‘편안하게 내일의 태양을 보는 것’이었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당신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사람과 물건, 가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심을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참, 내가 가고자 했던 두얼 카페 방문기가 궁금하다고? 가게가 사라져버렸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전한다. 이 경험을 통해 또 한번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2017년 9월 초. 불현듯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 대만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회사를 다니던 때였고,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내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의 염증, 함께 일하던 동료와의 은근한 신경전이 잠시나마 나를 회사 밖으로 밀어낸 이유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들이 일상일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왔던 내 기준에서는 조금 힘들었던 시기다. 왜 하필 대만인데?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의 촬영지인 두얼 카페(Daughter's Café)에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내가 사랑, 아니 흠모하는 영화로, 해마다 한 번씩은 꺼내어보는 작품이다. 여러 (여성)지인들에게 입이 닳도록 추천한 영화이기도 하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도 보기를 권하는 바다. 특히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이라면 이 영화가 강력한 영향을 주리라 단언한다. 그 외에 휴가철을 기점으로 삶의 방향에 대한 윤곽을 잡고 싶은 사람, 과거와 현재를 성찰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 외에도 이 시기에 보면 좋을 이유가 다분하다. 습하고 더운 날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대만의 기후가 지금과 어울리기도 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밤을 감미로운 무드로 바꿔줄 재즈의 선율이 매력적인 영화이기도 하니까.
저마다의 가치 기준은 다르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나에게는 무용지물인 것이 타인에게는 가치 있는 것일 수, 타인은 많이 가진 것이 나에게는 하나도 없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필요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이 다르다. 이를테면 나의 기준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레플리카라도 좋다)이 로봇 피규어보다 훨씬 좋지만, 나의 남동생은 반대로 생각할 것이다.
‘이건 에클레어. 두얼이 제일 잘 만드는 디저트예요. 각각의 길이가 다 다르죠. 음식도 사람들처럼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죠.’
두얼(계륜미)은 얼마 전까지 디자이너로 일하다 오랫동안 꿈꿔온 카페를 오픈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예상보다 손님이 많지 않다. 어느 날 카페 인테리어용으로 둘 칼라(꽃)을 사러 가던 중 마주오던 트럭과 접촉사고가 난다. 하필 그 트럭의 주인은 칼라를 운반하려던 참이었던 것. 그래서 두얼은 차 수리비 대신 꽃을 한가득 받아온다. 이들의 재정 상황에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두얼은 원하던 것을 얻은 셈이다.하지만 차는 망가져 있다. 이 장면이 지나고 영화는 몇몇 행인(그리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돈을 받겠어요? 아님 칼라?” 여기에 대한 답과 이유는 제 각각이다. 나라면 돈을 선택했을 것 같은데, 어떤 이는 칼라를 팔아서 돈을 벌면 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당연히 칼라’라고 답했다. 이 의견들을 확인하면서 다양한 사람, 수많은 생각이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필요했지만 ‘너무 많아서’ 처분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칼라. 그래서 두얼은 친구들에게 개업 기념으로 ‘서로 선물 교환하자’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에게 칼라를 주고 카페에 필요한 밀가루나 커피콩으로 받을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두얼의 예상과는 달리 장식품이나 책 따위의 카페 운영에는 비실용적인 물건들을 가지고 온다. 덕분에 두얼 카페는 전당포의 구색을 띠게 된다. 이렇게 쌓인 물건은 동생 창얼(임진희)의 아이디어로 물물교환으로 거래된다.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두얼의 카페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품목은 커피와 베이커리 뿐이다. 그 외의 물건들이 갖고 싶다면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거나 재능기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등가교환해야 한다. 물론 정확한 값을 따져 교환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고받는 행위로 거래된다. 영화에서 교환되는 것은 책과 하수구 청소, 열쇠고리와 이야기 등이다. 이렇듯 유무형에 상관없이 교환할 수 있다. 이 교환은 사람이 ‘모두 다른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모두가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면 교환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주고 거두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의 존엄성과 타인의 가치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렇듯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은 가치롭다. 이 가치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놓이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물건들을 놓을 적당한 장소를 찾지만 아직 못 찾았을 뿐이라고.”
따라서 사람은 재능을 발견하고 거기에 걸맞은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사람이 그것을 거두고 쓰이기에 적당한 장소에 놓여 제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제역할을 발휘하는 사람과 사물 덕분에 큰 문제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카페에 한 남자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아무도 비누가 필요 없다면 각각의 비누가 가진 이야기를 더해 줄게요.”라면서 35개의 비누를 내놓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이야기’이다. 겉만 보면 ‘그냥 비누’로 보이겠지만 여기에는 35개국의 35가지(어쩌면 그 이상)의 추억이 담겨있다. 두얼은 남자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는 몰랐던 것에 대한 정보,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간접체험이자 경험의 의지를 북돋아준다. 또한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타인의 경험과 지식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이 영감과 발전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두얼 역시 이 손님의 이야기로 삶이 바뀐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린 엽서를 만든다. 특히 ‘악마의 나무’라 불리는 마다가스카르의 숲 이야기에 매료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인상깊다.
가치에 상응하는 고충도 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그들의 속내까지는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속사정을 내비치지 않으려 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저마다의 고충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내 자신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두얼과 창얼에게도 각자의 고충이 있다. 학창시절, 두 자매에게는 ‘공부’와 ‘세계여행’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이후 두얼은 공부에 매진했고, 창얼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부터 인도, 몰디브 등의 여행지를 옮겨 다녔다. 이들의 선택은 옳았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두 자매는 각자의 과거를 후회하는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것을 동경한다.
“언니는 공부를 뽑았어요. 전 고등학교 들어갈 때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졌어요. 반 년 후에 인도로 갔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 잠시 동안 식당 알바를 했는데 남자친구를 사귀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또 떠나야 했어요. 엄마가 너무 미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동경한다. 낯선 문화와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 따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환상은 모든 한계와 위험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적응될 때쯤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했던, 그래서 친구와 애인을 제대로 사귈 수 없었던 창얼의 고충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이민을 결정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에 머무르는 것은 한시적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출발과 도착 티켓을 동시에 구매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여행에 대한 낭만을 버리지 못한다.
여행은 지식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이다. 대신 비용과 고생을 들여야 한다. 이처럼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선택한 두얼의 과거는 어땠을까. 공부를 택했기에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녀의 성적은 꾸준히 올라갔다. 반면 자신감은 잃어갔다.
“언니는 매일 열심히 공부했어요. 살이 점점 찌고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였어요. 모임을 가면 남자애들이 쳐다보지도 않았죠. 갈수록 성적은 올랐지만 자신감은 없어졌죠. 원하던 좋은 학교에 가도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내가 세계 곳곳에서 보낸 엽서를 찾았죠. 물건은 언니가 세상을 보는 통로예요. 한 번도 여행을 못해봤죠. 언니가 물건을 교환하는 이유는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서예요.”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공부한다는 핑계로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이 될 때까지 책상 앞에서 군것질거리를 손에서 놓지 못했던 나. 덕분에 일년만에 몸무게가 6kg이 불었다. 볼때마다 “최다함, 살 빼!”라면서 대놓고 놀리던 선생님도 있었다. 살을 얻었으면 만족할 정도의 성적이라도 따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퉁퉁했던 기억밖에 없다. 두얼 역시 ‘공부만 하며 여드름 천지로 자랐어. 동생은 세계를 도는데 말야’라며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부를 택했고 디자인을 전공해 얼마 전까지 디자이너였던 두얼은 현재 카페 사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현재의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장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을 것이다. 이렇듯 상황은 변한다. 나를 에워싼 상황도 변하지만 내 안의 감정도 하루에 수백 번 요동친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지만 한순간의 결정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다단한 세상처럼 개인의 가치관은 충분히 변할 수 있다. 한편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단면이다.
두얼의 카페는 ‘물물교환 카페’로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무익하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물물교환 시스템이 반전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따라 한 여행사가 카페 인수권을 제안하고 두얼은 자신의 지분 대신 35개 국가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 교환을 요구한다.
이 결정 후 두얼의 상황은 달라진다. 소파객(배낭여행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이후 여행을 갈 때 공짜로 소파를 빌려 쓰는 것, 일종의 여행자들 간의 물물교환으로 호텔비를 아낄 수 있다)이 되어 세계를 여행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기 위해서다.
“네 말이 맞아. 물건을 교환하는 건 많은 이야기를 듣는 거야. 근데 많이 들었어. 언젠가 내 이야기도 들려줄 날이 왔음 좋겠네.”
카페 운영을 관두고 세계여행자가 될 두얼, 카페 사장이 된 창얼. 이 결과는 계획했던 바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경험)들을 들어오면서 숨어있던 욕망이 발현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당신의 행복을 응원한다
선택에 정답은 없다. 개인의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타인의 선택을 비웃을 권리는 없다. 다만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선택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을 거쳐 신중한 선택을 했다면 최대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결정(위법 행위만 아니라면)을 했든 당신이 만족한다면 그게 정답이다.
영화는 “당신 마음 속에 가장 가치 있는 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과 그에 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화목한 가정, 부모와 형제자매의 행복,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는 것, 즐거운 일상 보내기, 낭만적인 사랑 등 무형의 가치를 최고라 답했다.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대답은 ‘편안하게 내일의 태양을 보는 것’이었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당신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사람과 물건, 가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심을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참, 내가 가고자 했던 두얼 카페 방문기가 궁금하다고? 가게가 사라져버렸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전한다. 이 경험을 통해 또 한번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