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미드소마> 리뷰,
충격의 도가니란 이런 것

시작부터 끝까지 충격 그 자체였다. 기이한 소리가 고막을 괴롭히고 터지고 파괴된 인간의 처참한 최후를 보여주며 시각적 충격을 전한 영화 <미드소마>. 심지어 작품 속 인물들이 먹는 이상한 음식 냄새까지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올 듯한 느낌이었달까. 그렇다. 이 영화의 특징은 생생한 묘사력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너무 기이해서 충격적이다.



<미드소마> 속 기이한 문화 체험을 함부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단언컨대 비위깨나 강한 사람만이 이 간접 체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형식으로 보자면, 기존에 봐왔던 공포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곳으로 향한 청년들, 거기에서 겪은 끔찍한 재앙들. 영화를 이어가는 소재는 딱 이 두 가지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겪는 재앙은 너무나도 낯설고 기분 나쁜 것들이라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다.


이 영화는 작품 속 공포체험에 나선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속인다. '하지 축제'가 벌어지는 호르가 마을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한여름 낮이 가장 긴 날에 열리는 축제인 만큼 가장 밝은 날 열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 모두는 새하얀 린넨옷을 입고 꽃 장식을 하는 등 공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색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관대한 미소(살짝 음흉한 것 같기도 하고)로 이방인을 반긴다. 이제 당신은 완전히 속았다.



축제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들의 행위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축제'다. 낯선 사람들(관객 역시)은 도무지 이해 불가한 행동을 한다. 삶을 18진법으로 나누는 이 마을에서는 0~18살을 봄, 36살까지를 여름, 54살까지를 가을, 72살까지를 겨울로 본다. 72살 이후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새로 태어날 생명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줘야 한다. 흡사 죽음은 곧 탄생이라는 개념의 윤회사상 같다.


그들의 사상은 인정한다. 끈질긴 생명 연장에 시달리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보다 적절한 때에 죽는 것이 옳다는 그들만의 믿음은 존중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실로 섬뜩하다.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이때 얼굴이 파괴되지 않으면 주민들이 나무망치로 얼굴을 으깨어 부순다. 이 장면을 보고 충격받지 않을 이 누가 있겠냐만은, 호르가 마을 주민들은 신성한 의식처럼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대니, 크리스티안, 조쉬, 마크. 즉 이방인의 시선에서 기이한 체험을 목격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한 발짝 물러나 3인칭 염탐자 시점이 된다(나는 재앙의 산물이 되기 싫으니까). 축제에 참여한 그들은 주민들과 동화되어간다.


대니가 참여한 의식은 '5월의 여왕 선발대회'다. 젊은 여성들이 다 함께 메이폴(꽃) 기둥 주변을 빙빙 돌며 춤을 추다가 한 명씩 쓰러지고, 마지막까지 남은 단 한 명의 승자가 여왕 자리를 꿰찬다. 그런데 대니가 승리한 것이다. 승리한 자의 보상은 제물을 선택할 수 있다. 그녀가 제물로 누구를 선택할지에 대해 지켜보는 게 이 영화의 관건이다.


우리가 <미드소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대니다. 그녀는 낯선 공간에서 최고의 인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이전에 살아왔던 공간은 암흑과 다름 아니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데다, 자신과 같은 병을 앓았던 여동생은 부모와 함께 동반자살했다. 애인 크리스티안마저 자신을 홀대한다. 그랬던 그녀는 엔딩 신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 장면을 보면 <미드소마>는 잔혹한 복수극을 그린 영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아리 애스터 감독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이 완성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감독은 자신이 겪은 연인과의 이별을 돌아보며 그것에 기초해 '관계의 파탄'을 작업하기로 결심했다. '관계의 파탄에 대한 비뚤어진 동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그. 의지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킨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미드소마>는 괴랄한 영화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살아 돌아갈 수 없는 잔혹한 세계를 그린 만큼, 신선한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아리 애스터의 세계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 지수가 말해주듯 독특하고 기괴한 이 영화. 공포물 관람에 자신 있다면 꼭 한 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

이전 08화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저마다의 가치는 다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