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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Oct 12. 2022

예술은 재능인가 노력인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어 저거 하고 싶은데?


카페에서 가끔 좋은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그 음악의 악보를 구해서 피아노로 쳐보는 것이 취미중 하나다.


가끔 악보를 찾아도 없는 음악의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대충 들은 것을 위주로 그냥 피아노 앞에서 쳐본다. 잔실수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맞는다. 대충 듣고 나서 어느정도 코드진행과 멜로디를 머릿속에서 그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왠만한 가요나 팝송들은 악보 없이 피아노로 칠 수 있다. 초견도 곧 잘하는 편이라 처음보는 악보들도 왠만큼 잘 연주한다. 


뭐 당연히 피아노를 전공하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어디가서 '나 피아노 좀 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재수 없겠지만 아마추어중에서는 아마 탑티어에 들어갈 것이다.  


한번 들은 음정이 어떤 음인지 잘 캐치하고 코드진행을 파악해서 바로 머릿속에서 악보를 만들어 피아노로 옮기는 것은 나의 재능인가 아닌가. 그리고 처음 보는 악보들도 바로바로 치면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곡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선천적 재능일까 아닐까.  


이것은 '예술은 재능인가 아니면 노력인가'란 주제를 고찰하기 위한 진솔한 내 얘기다.

동네에 하나씩 있을법한 K-피아노학원 단상


싫은건 싫은거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이 애들 트렌드 중 하나였다. 보통 5살때 혹은 초등학교때 동네 피아노 학원은 아이들의 방과후 놀이터였다. 학교 끝나고 집 앞 피아노학원에 가면 '바이엘'부터 시작하는데 손가락 안세우고 친다고 혼났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매우 불량한 학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노를 솔직히 내가 원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100% 어머니가 원해서 그냥 보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참 어떻게든 빼먹고 대충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방과후 오락실을 가거나 친구집에 놀러 갈 때 피아노 학원은 정말 지긋지긋한 장벽과도 같았다. 오락실에서 빨리 빠져 나오거나 친구집에 오래 머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으로 '진짜 그만두고 싶다'라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상술했듯이 어머니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이거 해 저거 해 하면 초등학생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항하나.


하여튼 이러니 피아노 실력이 좋을리가 없었다. 하고 싶어 하는것도 아닌 억지로 하는 것이니. 배운 기간은 초등학교 시절 6년 내내 배웠으나 같은 시기에 배웠던 또래들에 비교하면 한참 밑이었다.


반주자의 손

믿는다는 것의 의미


그러다가 피아노 실력이 퀀텀 점프하게 된 계기가 우연찮게 찾아왔다. 어쩌다 보니 다니던 교회에서 예배 반주를 중학교 1학년부터 맡게 된 것이었다. 교회 중등부 담당을 맡게 됐는데 매주 또래 중학생들 100여명정도가 출석하는 큰 곳이었다.


당시 객관적인 내 피아노 실력은 이러했다.

기간 : 초등학교 1학년 ~ 중학교 1학년까지 대략 7년

장소 : 동네 피아노 학원 4군데 전전

실력 : 초견 잘 못함. 코드도 모름.

흥미:  0%


이정도로는 예배 피아노 반주 하기 매우 벅차다. 예배 반주자는 모름지기 예배에 적힌 각종 찬송가와 성가 등을 연습 없이 바로바로 쳐야하기에 매우 높은 초견 실력을 요한다. 또한 설교 중간에 목사님이 요구하는 돌발 상황에도 잘 대처해야한다.


피아노 실수는? 말할것도 없다 절대 나오면 안된다. 근엄한 예배중에 피아노 반주를 하는데 '띵!'하고 튀는 음이 나온다면....아 진짜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당시 마침 경험많은 반주자님께서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셨고, 반주자 없는 예배는 상상할 수 없기에 급하게 수소문 끝에 경험도 없는 어린 내가 낙점된 것이었다. 당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식 반주자 구해질 때까지만 한 몇주만 해주면 안될까요? 임시로 잠깐 하는거니 괜찮을 꺼에요"


솔직히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중1짜리 햇병아리 학생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아무리 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도 이걸 어떻게 거절할까.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제가 할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고, 목사님께선 "물론이지"라고 말씀했다.


그 뒤로 나는 20년 넘게 예배 반주자로 살아오게 된다. 그것도 그 드물다는 남자 반주자로.


처음 몇주만 계획됐던 피아노 반주는 내가 3년동안 중등부를 졸업할때까지 이어졌고, 중등부를 졸업하니 고등부 반주를 3년간, 그리고 고등부를 졸업하니 청년부 반주를 또 다시 약 10년정도 했으며, 심지어 두바이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근처 한인교회에서 약 2년정도 피아노 반주를 담당하게 됐다. 목사님: 계획대로!!


하지만 이건 그 후의 얘기고....처음에 약간은 반강제적으로 목사님 권유에 의해 시작된 반주자 생활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우선 반주자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절대로 안되기에 강제적으로 근면성실해졌다. 또 반주자가 예배 반주중에 피아노를 틀리거나 못치면 그 날의 예배 전체를 망쳐버릴수도 있기에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비루한 피아노 실력이었다. 코드 진행도 모르고 초견실력도 비루했기에 기본 C-D-E-F-G 같은 화음을 처음부터 공부해야만 했다. 특히 성가 반주는 박자도 어렵고, 무엇보다 난이도가 높다. 집에 가서도 계속 연습해야만 했다. 날 믿어준 그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기에.


그렇게 1년정도 하고 나니 조금 피아노가 익숙해졌다. 수동적 피아노가 아닌 정말 실전에서 써먹는 적극적 피아노였다. 책임감에 따른 스트레스에도 익숙해졌다. 때마침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밴드부에 가입을 해서 키보드를 담당하게 됐다. 이곳에서는 편곡도 담당하고 다른 친구들 악기 하는 것을 보게 되니 음악 시야도 더 넒어졌다.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니 이제 피아노가 재밌어졌다. 심지어 이젠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도 '잘한다'고 칭찬을 하니 더 신나서 더 치게 됐고, 내 음악 실력은 점점 더 좋아졌다. 이윽고 중3이 되자 예고에 진학해야하나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예고는 선택받은 학생만 가는 곳이라고 예전에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충분히 자신 있었다.


따봉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다

재능 vs 노력 논쟁에서 놓치는 것


내게 '예술은 재능이냐 노력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술에는 재능도 노력도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님 잘 만나서 좋은 원석으로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고 이 좋은 원석을 열심히 연마하고 닦아서 옥으로 만드는 과정도 다 중요하다.


해묵은 예술 논쟁에서 사실 중요한 것은 바로 긍정적 피드백의 존재 유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계속적으로 받는 원석은 본인의 기량과 재능을 갈고 닦아 더 훌륭하게 빛날 수 있으며,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더 빠르고 크게 만개하게 된다. 


김연아를 예로 들어보자. 당연히 피겨 스케이팅에 필요한 천부적인 재능과 신체조건을 타고 났지만, 처음 피겨를 탔을 때 넘어지거나 지루할 수 있는 초기 과정에서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면 몇번 타다가 지루해서 그만뒀거나 아니면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을 것이다.


긍정적 피드백은 어느 영역에서나 중요하겠지만 특히 '창의성''확장성'이 필요한 예술 영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획일적인 우리나라 미대 입시가 어린 영재의 예술적 재능을 억압한다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이렇게 그리면 안된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를 못받는다'


이런식으로 선을 긋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계속 받게 되니 어린 영재의 창의성이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정해진 틀에서 '묘사'는 잘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잘 못하는 반쪽자리 예술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내가 음악에 대한 흥미가 전혀 없던 시절, 운좋게 억지로라도 피아노를 치게 되는 환경이 조성이 됐고, '반주자가 못하면 큰일난다'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것을 끝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긍정적 피드백 때문이었다.


실수 투성에 예배의 흐름을 자주 끊는 정말 심각한 민폐를 끼쳤지만 이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시간만 조금 지나면 된다며 끝까지 나를 믿어줬기에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다면 바로 그만뒀거나 다른 대체 반주자가 나올때까지만 억지로 했을 것이다.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위기를 잘 넘기고, 그 허들을 넘자마자 '주위에서 잘한다고 칭찬한다 → 신나서 더 하게 된다 → 더 많은 칭찬이 쏟아진다 → 더 실력이 좋아진다'의 선순환을 그리게 됐고, 그렇게 20년넘게 피아노를 치다 보니 현재에 이르러 당당히 '나 쫌 잘해'라고 말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당시 고민끝에 예고를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예술문화를 깊게 공부하면서 공연기획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당시 긍정적 피드백들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이런식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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