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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Oct 15. 2022

내가 본 한예종의 천재들

남 눈치 많이 보는 우리네 인생을 위해

최근 오랜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석관동 캠퍼스를 다녀왔다. 그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마침 시간도 남고 해서 교정 구경도 할 겸해서였다. 


졸업한지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캠퍼스는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자보와 각종 포스터 그리고 예술관련 행사 공고를 보니 여기가 예술학교가 맞긴 맞구나란 생각과 함께.


대학원 생활동안 함게한 한예종은 내게 제2의 모교와도 같은 곳이다확실히 다니다보면 각 학교에 내려오는 분위기 같은게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학부를 졸업했던 연대와 비교해보면 한예종은 꽤 많이 느낌이 달랐다.


연대도 학풍이 자유롭다고는 하나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하기 싫어도 이건 해야지' 같은 것이 있다면(어느 대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한예종은 '아 그런거 모르겠고 일단 난 내가 하고 싶은거 할꺼야' 이런 느낌이랄까.


옛부터 내려오는 한예종 3대 난제가 있는데 각각 

'쟨 어떻게 여기 들어왔지?',  '난 어떻게 여기 들어왔지?', '우린 졸업하고 뭐하지?'란다.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들이란 뜻이다. 난 이런게 너무 좋더라.


현대무용을 하는 한예종 학생들


한예종의 과거와 현재


한예종은 노태우 정권때인 1991년 미국의 줄리아드 스쿨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콘서바토리 형식으로 예술에 심화된 전문교육을 취지로 소수정예 학생을 선별해 예술 엘리트들을 양성하기 위한 대한민국 유일의 국립 예술대학이다. 


하지만 그 설립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예술 교육에 대한 이해도 낮았고 왜 문화쪽만 특혜를 봐야 하냐는 여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렵게 국무회의에 한예종 설치령이 상정되긴 했지만 거의 무산되기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당시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고 이어령 선생이 딱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다음과 같이 스피치를 했다.


한예종 설립을 추진한 고 이어령 문화부장관(1934~2022)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술영재를 위한 특수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특권이나 우월한 지위를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천부의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장애인 같은 고난의 핸디캡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 존재라는 것이지요...(중략)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일생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만약 하늘이 주신 음악의 재능을 살리지 못했더라면 과연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산자부는 안 되고 왜 문화부는 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좋습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여기 파라고 하면 석유 나오고, 저기 파라고 하면 가스가 터져나온다면, 에너지 특수학교를 만드십시오.(일동 웃음) ...(중략) 그런데 문화부의 영역에는 그런 아이가 실제로 있다는 겁니다. 네 살 때 모차르트처럼 절대음감을 지닌 아이들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아이들에게 일반 교육을 실시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출처 : 주간조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막후> 

  


반대하던 타부서 장관들도 이어령 선생의 이 스피치를 듣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고, 겨우 반대 의견을 잠재우고 설치령을 통과시키는데 겨우 성공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등록금이 저렴해서 좋았다. 재학생도 적고 각 원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원에 미달되더라도 학생을 뽑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취업이나 앞으로의 전망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만을 목표로 하고 들어온 학생이 대부분이기에 입학 후 자퇴하거나 방황하는 학생도 많다는 것은 옥의 티다.



기이한 언행으로 더 유명해진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내가 본 한예종의 천재들


사실 '천재(天才, Genius)'라는 것은 매우 민감한 주제다. 말 그대로 부모님으로부터 타고 나는 것이기에 조직의 동질감을 해치고 위화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본인이나 자기 자식이 천재이길 바라지 그 반대를 원하는 경우는 없기에.


천재의 특징은 그 정신적 활동에서의 창조성생산성에 있다. 천재는 미지의 영역과 분야를 개척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천재라는 말은 예술영역과 궁합이 잘 맞는 표현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길도 인간의 창조성과 생산성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분명 예술계에는 천재가 존재한다. 천재는 관점을 달리해서 행동하고 질문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러한 능력은 평소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이성에만 기대지 말고 독창적 상상력을 동원해 사회의 굴레를 뛰어넘어야 만들어진다. 


내가 한예종에서 수학하는 동안 느꼈던 점은 '확실히 다르긴 하다'란 것이었다. 취업을 걱정하는 등 졸업 이후의 생활에 위기감을 갖기 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과 포트폴리오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측면이 더 와닿았다. 


때로는 기이해 보인적도 많았다. 한번은 무용원 엘리베이터를 어떤 여학생 분과 나 이렇게 둘이 같이 탔다. 그런데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분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구석진 곳으로 몸을 붙였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분의 춤사위는 본인이 먼저 내리기 전까지 계속 됐다.


복도에도 영화나 작품 관련해서 여러 과정을 찍거나 연기를 연습하는 학생들도 여럿 봤고, 그럴때 마다 큰 고성과 주위 사람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생각보다 같은 재학생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학교에 비해 다른 사람 눈치를 잘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하도 봐서 익숙해진 것이나 보고도 별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 전체가 예술학교니깐 가능한 것일테다.


인간 정신은 어떻게 변화하고 몰락하는가에 대해 철학자 니체는 '낙타', '사자', '어린이' 3단계로 제시했다. 


낙타와 사자에서 벗어나려면


철학자 니체는 인간 발달의 3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이'로 각각 표현했다. 


맨 처음에는 낙타인데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널 수 있는 참고 견디는 인고의 존재다. 그 다음인 사자는 힘으로 주위를 지배하고 군림하려 하면서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존재다. 


마지막은 어린이 단계다. 이 어린이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틀이 없는 순진무구한 존재이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상징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치 하나를 말한다. 아마 우리 대다수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지고 낑낑거리는 낙타나 혹은 어떻게든 살길을 개척하고 애를 쓰는 사자일 텐데, 이렇게 삶을 마감하기에는 무언가 억울하지 않나란 생각 말이다.


한예종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남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가볍게 말했지만, 표면적으로 작게 드러난 이러한 예술가적 기질에서 니체가 말한 어린이 단계에 우리가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있다고 본다.


눈치를 안 본다는 것이 우리가 평소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의 그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주위 너무나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하느라 자신 본연의 가치를 잃고 낙타나 사자로만 사는 우리들에게, 


본인이 심취한 예술분야에 앞뒤 안가리고 열정을 쏟아 붓는 학생들의 이런 순수한 행동들이 우리에게 무언가 은유를 알려주는 것은 아닐지.


현대 예술교육에서도 어린이를 가장 주목한다. 예술의 천재성이 발현되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하고 이때를 놓치면 천재가 평범한 인재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빨리 캐치해서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해 인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예술교육의 목표인 것이다.


어린이의 강점은 유연한 사고 그리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창조와 파괴가 자유롭다는데 있다주위 시선을  신경쓰고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해야 이와 같은 단계에 진입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본인의 예술세계에 힘쓰던 학생들이 졸업 후에 다시 사회의 최전선에서 시달리고 현실세계의 먹고살기니즘에 시달려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건 제외하도록 하자)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말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도 그렇다. 인류가 놀이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는 말인데, 낙타나 사자가 놀이를 제대로 즐길 시간이 어디 있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놀이를 즐기기 위해선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세계에서 남 눈치 제일 많이 보는 한국인의 기질을 조금 내려놓고, 더 대범하게 앞뒤 안가리고 편견이나 틀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우리도 인생에서 어느새 어린이가 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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