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비싼게 아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알라딘(Aladin)'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최신 백스테이지 장비로 유명한 대형 뮤지컬이다.
35명의 캐스트 멤버와 60명의 크루 멤버로 준비하는 무대는 각종 소품과 무선 장치로 음악과 어우러져 일관성 있게 움직인다. 백스테이지에는 최첨단 기술이 동원돼 알라딘이 타는 마법의 양탄자를 진짜 무대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꾸민다. 배역을 탑승시킬 때 누가 다치거나 빠지지 않게 무대가 쉴 새 없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보통 클래식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티켓은 비싼 경우가 많다. 제일 안 보이는 좌석이 1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다분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 공연을 즐겨 본다고 하면 "돈 많이 들지 않아?" 물음이 뒤따른다.
제작사가 이런 공연을 한 번 기획하고 공연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 분명 적은 돈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공연예술을 이해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예술에서의 조직 형태와 애로사항 등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금 어려울수 있지만 우선은 경제학적으로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 공연법 2조1항에서는 공연을 이렇게 정의한다.
음악·무용·연극·연예·국악·곡예 등 예술적 관람물을 실연(實演)에 의하여 공중(公衆)에게 관람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상품 판매나 선전에 부수(附隨)한 공연은 제외한다
쉽게 말해 예술적 관람물을 대중에게 감상하게 하는 행위란 것이다.
공연은 관객과의 공감이 필수적인 예술장르다. 소설의 3대 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이듯이 공연에도 4대 요소가 있다. 예술작품, 예술가, 무대, 관객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 보통 개인이 아닌 오페라단, 합창단, 극단 등 공연단체가 개입한다.
공연예술은 관객이 입장료를 내고 감상하는 것으로 그 성격에 따라 순수예술 공연과 대중(상업)예술 공연으로 크게 나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1. 생산과 소비의 동시성
공연예술은 공연장을 기초로 해서 제작과 관람이란 생산·소비 과정이 일어나는 상품이다. 상품이라는 건 소비자에게 효용을 줄 수 있는 재화를 뜻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품과는 달리 공연예술은 관람객의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서 생산자가 제작한 공연을 동시에 즐긴다는 측면이 있다.
곧 아이폰이나 갤럭시처럼 눈에 보이는 공산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녹음이나 녹화 같은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한순간에 공연하고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적인 상품'이란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소비의 동시성은 서비스 재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2. 취향을 전제로 하는 체험재
공연예술의 수요는 소비자가 공연예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안목을 기초로 해서 해당 공연예술의 관람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체험재(Experience Good)'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체험재라고 하니 어렵다고? 쉽게 말해 공연예술은 개개인마다 취향을 탄다는 의미다.
취향을 계발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생겨난 취향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공연은 종잣돈을 털어서라도 꼭 보러 가기 때문에 티켓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인 면도 보인다.
그리고 현장 예술이란 측면 때문에 소비 장소를 정해서 소비할 수 없고 반드시 생산자가 정해놓은 현장으로 와서 상품(공연)을 소비(관람)해야만 한다.
3. 과시적 소비 및 위상재화
흔히 상류층 사이에서는 '문화 자본 (Culture capital)'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봐온 미술품 감상, 클래식 공연 같은 고급 취미를 같이 즐기면서 상류층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함께 향유하는 것이다.
공연 중간중간 인터미션(쉬는 시간)에도 서로 담소를 나누고 네트워킹 파티를 하면서 인맥을 다진다. 이들에게 공연예술은 단순한 작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공연예술은 관객들 간의 망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 서로 작용하는 소비행위로서의 사회적 위상을 나타내는 지표로도 쓰인다.
예컨대 관람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가 있으면 서로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안 본 사람도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과시적인 소비 재화로서의 '위상재화(Status Good)'라고 부른다.
4. 불완전 대체재
불완전 대체재라는 것은 언뜻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게 어렵진 않다. 공연예술 간의 장르 취향을 따질 때 외부보다는 안에서의 대체성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해서 상술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알라딘'을 예로 들면 이미 뮤지컬을 보기로 결심한 사람은 그 시간에 다른 공연예술-콘서트, 연극, 무용, 국악 등-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을 선호하는 사람은 같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면 연극을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곧 장르끼리는 대체성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뮤지컬을 보기로 한 경우라면 다르다. 뮤지컬 안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취사선택하면서 효용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완벽한 대체가 되지는 못한다.
처음에 보려 했던 '알라딘' 티켓이 매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시간에 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같은 만족도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공연예술끼리는 서로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는 '불완전 대체재'의 특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