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청바지를 사러 유니클로에 갔다. 남편은 늘 입는 밝은 색 청바지를 산다. 겨울엔 주로 네이비색 목티를 입으며 뉴발란스의 운동화를 똑같은 걸로 새로 사 신는다. 늘 그렇듯 청바지 코너로 가 몇 번이고 샀던 바지를 집어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마네킹에 걸린 도트 프린트 스커트가 마음에 들어 잠시 만지작거렸다. 남편이 옆에 있던 꽃이 프린트된 원피스와 함께 구입을 부추겼다. 나는 입을 일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다고 말하며 매장을 나왔다.
한동안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도 하고, 매일의 삶을 챙기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기에 삶의 우선순위에서도 그림은 조금 더 뒤에 밀려났다. 어쩌면 그리기에 묻어 나도 조금 더 밀려났을지도 모르겠다. 오전엔 첼시를 돌보고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집안일을 했다. 그런 틈에도 종종 그리고 싶었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잘 마치지는 못했다.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 그림을 그려볼까 했지만 늘 방전이었다. 그리지 않는 생활은 어느 면에서는 편리하나, 공허하다.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은 점점 단순해지고 점점 더 무료해졌다. 나는 재미있는 프린트가 가득한 원피스나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스웨터를 좋아했다. 결혼을 하고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나는 프린트가 가득한 원피스나 스웨터를 사지 않았다. 일하기 편하고 관리하기 쉬운 청바지에 맨투맨을 매일 입었다.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효율성을 내세우며 스스로 취향을 지워냈다. 어떤 날은 너무도 속상했다. 아이까지 갖고 나면 내가 설 자리가 더 없어질까 무섭다. 쓸쓸하고 불안한 지금의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뭐든 해야만 한다. 다시 좋아하는 것을 맘껏 좋아해 보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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