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별 일기
2019.10.25.
20대 초반의 나를 복기할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땐 싸이월드에 썼던 일기를 읽는다.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민망하지만, 그 시절의 한숨이 느껴진다. 일기를 쓰자. 삼십 대의 흔적을 남겨야겠다.
2019.10.30.
글을 써서 용돈벌이 정도는 하던 때가 있었다. 글쓰기에 참으로 게을러졌다. 만족과 안주의 경계가 모호하다.
2019.11.2.
말을 줄이고 숨 쉬듯 천천히.
2019.11.18.
나는 기억력이 안 좋다. 스스로의 머리 나쁨을 인정하는 셈이다. 부족한 기억력으로 여러 가지 실례를 범하다 보니 나름대로 기억을 연장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첫 번째는 핸드폰 메모장이다. 이 방법은 가장 하위 단계의 기억 방법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내가 핸드폰에 메모했다는 사실을 잊는다. 두 번째는 사진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나 내용을 사진 찍는다. 그리고 사진첩을 자주 확인한다. 사진을 찍을 때의 감정과 관점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아 있다. 세 번째는 글쓰기다. 가장 상위단계의 기억 방법이다. 기억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성의껏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 주로 여행이나 중요한 결정 시점의 판단 근거를 남기기 위해 활용한다.
2019.11.24.
아직까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신년이 두렵고, 나이를 먹어도 쌓여가는 것이 없음에 두렵다. 시간이 원망스럽다.
2019.11.25.
우연과 우연이 만나고, 우연이 더해진 우연을 마주하면 운명 같은 것들을 믿고 싶어 진다.
2019.12.10.
운동을 할 때마다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는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한다.
2019.12.25.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 이런 마음먹기를 흔히 작정(作定)이라고 하지만 작정(作情)이라고 바꿔 적어본다. 돌봄을 위한 작정, 그것이 사랑이다."
박준 시집에 나온 문구다. "미래를 내가 먼저 살고,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산다."는 표현에 동의하게 된다.
2019.12.31.
새해에 앞서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무덤의 숲, 경주를 여행했다. 멋진 사진은 못 찍었지만, 멋진 기억은 남았다.
2020.1.1.
회사에서 부서 이동을 희망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일을 하고자 했으나 다시금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지난 TF에선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을 조직에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으나 지금은 입에 담는 것만으로 죄스럽다.
홍세화씨의 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다시 읽어야겠다.
2020.1.2.
이년 반쯤 전에 집을 사려고 했었다. 당시의 나는 안정에 대한 욕구가 높았다. 일상은 만족스러웠고 정주할 보금자리만 있다면 욕심부릴 일이 없다고 믿었다. 개인적인 능력이나 부모님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내 여건에 맞는 집들을 고민했다. 회사랑 가까우면서 지하철로 강북 접근성이 좋은 동네를 꼽았다. 부족한 예산에 맞춰서 고민하다 보니 지대는 높았고 주변은 노후했으나 내겐 이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집까지 걸어가는 것만으로 운동이 되고,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휴일마다 관심 있는 지역의 매물을 살폈고 맘에 드는 몇 개의 집을 골라서 집주인과 거래할 일정을 잡았다. 이 무렵 부동산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집주인들은 거래를 취소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안정되고 싶었던 욕망은 기약 없이 유예되었다. 흩어지고 부유한다.
2020.1.16.
겨울날 출근길엔 고개를 들어서 아직 달이 떴는지 주변을 살피곤 한다. 퇴근할 때 보이는 휘영청 밝은 달보다는 출근할 때 보이는 어렴풋이 흔적만 남은 달이 더 정겹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내 책장의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던 시기가 있었다. 우주와 달처럼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