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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Jun 17. 2021

도시, 그리고 예술의전당 2/2

예술의전당의 공공성과 도시적 가치

나는 때때로 의심받는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왜'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며, 예술경영분야의 일을 하면서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다른 일을 준비하거나 겸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굳이 시간과 정력을 쏟아 해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내가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이유와 목표를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예술의전당의 공공성과 도시적 가치를 반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쓴다.


우선 나를 향한 의심의 원인은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문화예술분야를 전공하거나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배타성이다. 일례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문화예술기관의 직원은 문화예술 전공자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으며, 외부기관 요청으로 예술의전당 직원의 문화예술 전공자 비율을 조사하여 자료를 제출한 적도 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문화예술분야를 전공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꽤 수상한 존재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대중의 도시계획이라는 분야에 대한 무지(無知)다. 언제부터였을까, 토목이나 부동산 관련 명칭에 어김없이 '도시'라는 단어가 붙었다. 도시공학, 도시시스템이라는 대학교 전공명이 널리 쓰이며, 도시계획이라는 분야와 혼동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나 도시계획은 '도시 내 사람들의 각종 활동과 관련하여 공간의 배치 및 제도와 규칙을 세우는 일'이다. 도시 내 사람들의 각종 활동이라는 말은 거의 모든 학문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도시계획분야와 다른 분야의 협업이 매우 왕성하다. 그러나 유독 문화예술분야와 연계가 적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도시에 대한 권리(Le droit a la ville)’를 주창했다. 나이, 성별, 계층, 인종, 국적, 종교에 따른 차별이나 배제 없이 도시 거주자라면 누구나 도시라는 인간의 집단적 작품을 함께 향유할 권리를 지니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인 식수, 먹거리, 위생에 대한 권리는 물론이고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필요한 적절한 주거환경과 직업, 대중교통, 안전, 의료, 복지, 교육에 대한 권리, 광장이나 거리 같은 도시의 공공공간에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그리고 문화와 여가에 대한 권리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한 “문화예술의 공공재적 가치와 역할 재설정 연구, 연구책임자 정홍익(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보면 문화예술의 공공재적 효과를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세계도시 형성, 도시재생과 커뮤니티 형성, 관광 활성화, 창의적인 창조도시 증대, 청소년 교육 증진, 건강과 치유 효과 등 7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절반은 도시적 관점의 가치이다.

지난 2014년, 모든 도시와 지역은 특별하다는 기치 아래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다. 문화예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 및 지역주민의 문화적인 삶을 비전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을 활용하여 도시브랜드를 창출하고 도시 및 지역의 창의성, 다양성, 자율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상기 내용에 따르면 문화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 해당하며, 문화예술의 주요한 가치는 도시에 대한 기여이다. 즉, 도시와 문화예술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갈수록 도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주요 연구기관 및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도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검색해보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희박한 실정이다.


하지만 상술한 내용은 예술의전당이 아닌 연구기관이나 행정기관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스스로도 몇 번이나 고민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은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이며 공간의 규모, 공연과 전시의 횟수, 방문객과 이용객의 숫자 등 모든 측면에서 국내 최대 수준이다. 연간 공연과 전시 등을 관람하는 유료 방문객이 3백만 명이며, 단순 방문객을 포함하면 매년 5백만 명이 넘게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도시적으로 유의미한 수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의전당은 국가 문화예술정책의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삼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예술가, 업계 종사자, 방문객 등 다양한 예술의전당 이용자와 직접 대면하며 내부적인 요령과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전당은 문화예술 현장이며, 도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한 증명이다.


"예술의전당은 도시, 시민과 적극적으로 관계할 때 의미가 있다." (사진출처 :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에 근무하면서 왜 예술경영을 공부하지 않고 도시계획을 공부하느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예술의전당은 공공기관이다. 도시계획만큼 공공성이 중요한 전공은 없다. 도시적인 맥락에서 문화예술기관의 공공성을 찾는 것이 나의 목표다.”라고 대답한 바 있다. 도시계획은 토지라는 공공재와 도시라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유산을 연구하므로 본질이 공공성인 학문이다. 그리고 예술의전당은 공공기관으로서 문화예술을 통한 공공성 실현의 최전선에 있다. 행정학 서적에서 “공직동기이론(Public Service Motivation, Perry&Wise, 1990)”이라는 용어를 읽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타적 동기에서 공공의 가치에 기여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긴다는 내용이었다. 고리타분하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예술의전당이 공공기관으로서 문화예술이라는 방법으로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도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서 문화예술이 더 이상 가치를 의심받지 않고 도시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는 것, 그래서 우리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내가 예술의전당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이유다.


나의 고민이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건축가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까. 나의 조잡한 글을 줄이고 건축가 김석철이 예술의전당을 설계하면서 썼던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예술의전당이 일부러 가야 하고, 매력적이지만 거리감이 있는 그런 장소가 되어서는 앞뒤가 바뀌는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가게 되는 그런 거리, 그런 마을 그 자체이어야 한다. 하나의 목적적 건축군이 모여있는 대학 캠퍼스 같은 도시에서의 대응적 장소가 아니라 시민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서울 그 자체인 것이 되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사건만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그런 일들의 사이에 예기치 않은 사는 일의 여러 기회들이 일어나는 문화나 예술 그 자체인 한 마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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