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계피 사탕을 먹은 건 그런 순간뿐이었다
요새 계핏가루와 꿀을 찬물에 타서 마신다. 계피차인가. 이것을 계피차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성급한데, 언제나 이들을 섞으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계피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아무리 저어도 가루가 동글동글하게 뭉친다. 물 표면을 떠다니고, 잘못 먹으면 매우 쓰기까지 하다. 그러나 계피 나름의 향긋함이 있어 물에 잘 녹지도 않는 계피-차라는 것을 해 먹는다. 계피를 즐겨 마시게 되니, 그 시절 표 반장님이 생각난다. 그렇게 계피 사탕을 주셨다. 받기는 받았지만 달가워 먹은 적은 없다. 그때의 나는 계피 사탕은 아주 못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탕 선물세트에서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어떤 입으로도 들어가지 않다가, 아버지가 가끔 드시고도 남겨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표 반장님은 언제나 계피 사탕만 갖고 계셨다. 당신은 엄청 좋아하시는 데 왜 나를 계속 주시는 거지. 감추려 해도 드러나고야 말았을, 필시 싫어하는 낌새를 어떻게 아시기도 하셨을 텐데 말이다. 그런 제가 요새는 계핏가루를 타 먹는답니다. 표 반장님.
표 반장님은 소위 '선생'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깍듯했다. '선생'이란 세상에 얼마나 의미 없는 수식인가 싶으면서도 그 의미 없음 때문에 사람의 성 뒤에 붙어 다녔다. 그게 아니라면 '아가씨'로 불리는 일이 있어, 감내할 수 없는 호칭이라도 차라리 그렇게 불려야 했던 것이다. 선생에 '님'자가 떨어지는 건 아주 다행이었다. 현장은 반장님이 수소문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가 선생이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잘한 것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의 안위 때문이었는데, 표 반장님은 지나칠 정도로 우리에게 잘했다. 그 지나침을 받을 때마다, 선생네는 표 반장님의 너스레가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필요 이상의 친절을 받은 사람이 친절을 베푼 사람의 웃음이 끝이 날 때까지 서 있어야 하는 일이 조금은 비극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사코 제발 이러시지 마시라고 해도 그건 모두 인사치레로 받아넘기는 노인이었다. 자신 이하의 어르신을 잘 봐달라는 무언의 말이 얼마나 쓸모가 없었냐면 표 반장님의 수고와 아무 상관없이 근처 지역의 현장은 늘 반장님네 사람을 부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발굴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건 선생네들이 가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월급날이 지나면 농수산시장에 새벽같이 열리는 경매에서 가장 먼저 입찰이 뜨는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호칭을 떼자면 아들딸 같았을 선생들은 그 과일을 먹으며 여름을 지났다. 임금이 뻔한 것을 알기 때문에 죄스러웠지만 잘 먹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호의 속에 표 반장님의 세계는 구성되었고, 지켜졌다고 믿어졌다.
반장은 일에 대한 노하우가 많고, 현장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꼭 그가 그랬다. 그는 힘이 좋아서 두 사람치 일을 너끈히 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에게 타박도 심해 불만이 왕왕 있었다. 표 반장님은 자신의 노하우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보여주는 것으로는 따라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것이 그에게는 늘 어려웠다. 일을 분배하는 데 독단적이었으며 지나치게 빨리하라고 재촉했다. 어르신들 중에는 불만이 일게 마련이었고, 이윽고 선생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장의 불화를 알면서도 그를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월 초마다 들어오는 과일상자 때문인 것도 같았다. 어쩌면 현장은 선생네들의 지시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지시를 받으며 동시에 지시하는 반장님의 뜻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와 둘이 있을 적엔 그는 늘 계피 사탕을 주며, 자신의 세 아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누차 말했다. 바닥을 긁으며, 페인트로 유구를 칠하며 사다리를 잡아주며. 누군가의 딸이었을 내가 그런 당신과 함께 이 뙤약볕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어느 날은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며느리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그 아들과 며느리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명백하게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진심으로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때 나의 표정이 조금은 비극적으로 표 반장님에게 비쳤을지 생각해 본다. 함께 있는 동안은 거절을 피할 수 없어 계피 사탕을 어쩔 수 없이 몇 번은 우물거렸다. 내가 현장에서 계피 사탕을 먹은 건 그런 순간뿐이었다.
아산이었고, 눈이 많이 왔었고, 대선이 있던 겨울, 내가 참여하는 마지막 현장이었다. 세 팀이 동시에 투입되고, 토요일에도 일을 했고 어르신들은 때로 반 백 명에 이르렀다.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여러모로 절망스러웠다. 그때를 지나 가공할 만한 더위에 계피를 마시면서 겨울을 생각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라던 문장에 물음표를 놓는다. 맛있는 걸 집을 때도 있고, 맛없는 걸 고를 때도 있으니 괘념치 말라는 문장은 나이브하다. 아무래도 먹기 싫고 내내 먹지 않아 남겨지는 계피 사탕만 있는 봉지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골라도 계피 사탕만 나오는 선물을 받은 아이에게는 그걸 대체 설명을 해야 할까. 그것도 계피가 아니라 계피 향이 0.1% 정도 함유되었을 사탕, 반투명한 포장 사이로 거무죽죽한 사탕만으로 이뤄진 선물을.
그는 내키지 않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별 맛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밤 선생. 그래서 왜 계피 사탕을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게 종종 내 앞에 떨어질 때가 있지 않나 밤 선생. 그때 받았던 사탕은 태반이 버려졌다. 그와 마지막이었을 현장을 나는 알고 있었을 텐데, 그게 마지막이라고 인사를 못했다. 건너 건너 전해 들으셨을 것이다. 밤 선생은 일을 그만뒀다며? 그는 어떤 선생이 버리다시피 한 작은 트라울을 훈장처럼 허리춤에 갖고 다녔다. 반장님께 트라울이라도 좋은 놈으로 하나 해드릴 걸. 일을 떠나니 아무것도 아닌 장비, 아무것도 아닌 훈장, 이 세계에서는 도저히 필요가 없는 손삽을 생각한다.
저는 이제 일부러 계핏가루를 사서, 계피차라는 걸 타 먹는 답니다. 그렇지? 밤 선생? 그 맛이라니까. 우물우물하며 씁쓸하게 단 그것을 아직도 잘 드시나요. 이제 저 아니고 누구에게 계피 사탕을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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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