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여행자들의 블랙홀 다합에서 카이로까지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배낭여행자 3대 블랙홀 중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는 다합에 도착했다. 길을 가던 어느 이집션에게 찾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물었다. 그는 내가 찾는 목적지가 다합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다며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이 차를 타면 동네를 빙빙 돌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었다. 공부해둔 이집션의 사기수법이 그대로 하나씩 등장하는 게 신기했다. 또 다른 이집션은 내가 찾는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방이 다 찼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이 알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가자며 호객행위를 했다. 만사가 귀찮아 그를 따라 나섰다.
낮잠을 자다 일어난 주인은 졸린 눈을 비비며 느린 걸음으로 열쇠꾸러미를 찾아왔다. 방문을 열었다. 난 화장실 문을 열어 불을 켰다.
'으웩.'
조금 거짓말을 보태면 황소만한 바퀴벌레들이 벽과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다시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숙소를 찾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이집션의 말대로 빈방이 없었다. 이곳에서 레드씨릴렉스와 캥거루파이팅오션캠프 2곳을 추천받아 방을 보러 갔다.
레드씨릴렉스는 최근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숙소답게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캥거루파이팅오션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에어컨 있는 싱글룸을 50파운드에 쓰기로 했다.
그리곤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맥주를 사러 나갔다. 다합에선 술을 구하는 게 무척이나 쉬웠다. 그런데 술집 점원은 셈을 하는 내게 잔돈이 없다고 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첫날 도대체 몇 가지 사기수법이 등장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잔돈이 없다고 하는 건 구석기 수법으로 끝까지 잔돈을 달라고 하면 이리저리 다른 상점에 물어 거스름돈을 만들어주지만, 막무가내로 잔돈이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 이집션들의 잔머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준섭이와 난 해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들이켜며 이집션을 안주 삼아 한바탕 거품을 뿜어댔다.
다음날 우린 시체처럼 종일 잠만 잤다. 요르단에서 이집트로 넘어오는 길에 너무 많은 걸 경험한 탓이었다. 여독은 쉬 풀리지 않았다. 난 성격상 협상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표 보고 줄 돈 주는 깔끔함이 나와 더 맞다. 그런데 어쩌다 요르단부터 협상계의 '생활의 달인'을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은 그나마 가격 선이 있어 서로 편한 수준에서 딜이 됐다. 파키스탄은 중간 중간 밀당이 있었지만 정말 귀여운 수준이었고, 두바이의 쇼핑몰은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다 요르단부터는 협상 없이는 여행이 힘들어졌다. 이집트는 그 정점에 있는 나라였다. 다합의 즐비한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주문할 때도 '밀당'은 필수였다. 메뉴에 쓰인 가격은 그냥 장식에 불과했다. 기념품 가게의 물건 가격도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달랐다. 이집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피곤한 여행지였다. 그게 다합이라 할지라도 내겐 그리 기분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10년 전 이집트를 배낭여행하고 결혼 1주년을 맞아 부인과 이집트를 다시 찾은 한 한국인을 다합에서 만났다. 그분은 부인과 함께 즐기러 온 여행이어서 줄 돈 주면서 편하게 다니려고 마음을 다잡고 이집트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차분했던 마음이 도착과 함께 욕이 튀어나오면서 바로 깨져버렸다고 했다. 난 한참을 웃었다. 이집트 여행은 한계치 이상의 인내력을 담보로 했다.
하루를 푹 쉬고 다음날 준섭이와 체험다이빙을 하러 나섰다. 다합에서 다이빙어드밴스를 취득하려면 450달러 정도가 든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포인트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체험다이빙 비용은 어드밴스 취득의 10분의 1 가격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내게 바다는 그리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다합에 왔다고 무조건 어드밴스에 도전하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선뜻 450달러란 거금을 지불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일단 체험다이빙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체험다이빙은 말 그대로 맛보기 수준이었다. 각종 장비를 다 착용하긴 하지만 전문 강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물론 기본적인 상식과 기술을 배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체험 수준이다.
다이빙수트를 입고 공기탱크와 재킷을 착용하니 무게가 상당했다. 공기탱크의 무게만 12kg 정도가 나간다고 했다. 여기다 몸을 가라앉게 해주는 웨이트까지 착용하니 몸이 천근 만근이었다.
특히 홍해의 경우 다른 바다에 비해 염도가 20% 가량 높아 다이빙이 쉽지 않은 곳으로 손꼽힌다. 호흡법 등을 배우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내 평생 첫 번째 다이빙을 시작했다.
"와!"
바다 속 풍경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별세계였다. 산호초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오색빛깔을 뽐내고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산호초 앞에선 열대어들의 군무가 펼쳐졌다. 군무에 동참하지 않은 덩치 큰 물고기들은 멋진 위장술로 몸을 숨긴 채 사방을 경계했다. 바다 속에는 또, 트레킹을 할 수는 없지만, 손으로 만지고 볼 수 있는 능선과 봉우리들이 있었다. 내게는 또 다른 산이었다.
사실 물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왜 다합이 세계 3대 블랙홀로 손꼽히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물가는 확실히 높았고, 훈자처럼 풍경이 멋지거나 사람들의 인심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카오산처럼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날씨는 미칠 듯이 덥고, 시도 때도 없이 호객꾼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합의 진정한 매력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합에선 바다를 봐야 했다. 바다 속 풍경은 '절세가경'이었다. 다이빙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트레커의 본분을 잠시 내려놓고 다이버로 전업을 할까 잠시 망설이게 할 정도였다. 트레커의 외도는 강렬했다. 바다는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다합의 블랙홀은 바다 안에 있었다. 그 마력의 세상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게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짧은 다이빙을 마치고 난 깨달았다. 물고기가 죄다 횟감으로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은 다이빙을 하면 안 되는 부류라는 걸...
몇 해 전 네팔을 방문했을 때다. 안나푸르나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할 도시 포카라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다. 코치의 신호에 따라 지면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발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황홀한 경험이었다.
난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처음'이란, 엄청난 충격으로 뇌리 어디인가에 박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첫 키스의 그 야릇함을 잊을 수 있을까? 다합은 내게 외도였고, 첫 경험이었다.
여행정보
다합은 다이버들의 천국이다. 다이빙을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다이빙 자격증을 따게 되면 세계 어디에서나 장비를 빌려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다이빙 맛에 빠지면 세계 일주 루트가 바뀌는 일도 있다. 다이빙은 최초 오픈워터를 통해서 기초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게 된다. 초보자들의 입문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오픈워터 과정은 이론공부를 병행하게 되며 평가를 통해서 일정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한다. 실기는 기초 다이빙을 이수한 뒤 강사와 훈련생이 조를 이뤄 자유롭게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이뤄진다. 그런 다음 어드밴스에 도전하게 된다. 만약 어드밴스 과정까지 마쳤다면 어디서든지 강사 없이 독립적으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다합은 비교적 어드밴스를 값싸게 취득할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내가 다합을 찾았을 때는 450달러에 어드밴스 취득이 가능했다.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를 한 번에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나이 반도를 탈출하라."
산을 오르는 건 여행 중 한식을 먹는 것만큼이나 유혹적인 일이다. 다합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을 오르기 위해서다. 시나이산은 다합에서 3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다합의 한 여행사에 투어신청을 하고 나니 준섭이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전송됐다.
"형,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야?"
"외교통상부에서 문자가 왔는데 글쎄 며칠 전 시나이산 근처에서 미국인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대요. 시나이 반도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들은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내용이에요."
"진짜? 그런데 다합은 왜 매일 먹자 분위기야? 문자 한 통에 여길 떠나야 해?"
실제로 시나이 반도에서는 심심치 않게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범인들은 주로 감옥에 끌려간 동료를 석방하라는 요구조건 등을 내건다.
한 번은 우리나라 성지순례객들이 납치를 당한 적도 있었다. 납치됐다 석방된 목사님이 언론과 인터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우습게도 인터뷰에서 목사님은 범인들이 매우 잘해줬다고 했다.
"준섭아, 그냥 가자. 죽기야 하겠냐."
"형, 납치는 당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납치당하면 인터넷에 꼭 가지 말라는 데 가서 납치당했다고 누리꾼들이 엄청나게 욕할 텐데 전 그게 싫어요."
"헐~ 인터넷이 무섭긴 하구나. 납치보다 인터넷 댓글이 더 무서우니."
다합을 출발한 버스는 오전 2시경 트레커들을 시나이산 아래 내려주었다. 트레킹은 곧바로 시작됐다. 가이드는 기본적인 스트레칭도 없이 사람들을 출발시켰다. 산악 전문 가이드는 분명 아니었다. 산을 오르면서 가이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세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길이었다. 코스 자체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오르막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콜롬비아인 마리아가 문제였다. 손전등도 없이 걷는 게 영 불안해 보였다. 거기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호흡이 엉망이었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누구 하나 마리아를 도와주지 않았다. 다들 본인들의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 듯했다. 마리아에게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마리아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눈빛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내밀었다.
마리아는 전형적인 초보 트레커였다. 빨리 정상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속도를 낸다고 냈지만 결국 몇 발자국 가지 못했다. 난 그녀에게 계속 천천히 가라는 사인을 주었다. 산은 천천히 오를수록 오래 걸을 수 있다.
"마리아 빨리 걸으면 빨리 지치게 돼 있어. 보폭을 반으로 줄여봐. 그래야 쉽게 오를 수 있어."
내 말을 듣던 마리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유 아 마이 엔젤."
"에… 엔젤… 하하하."
천사라는 소리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평생 누구에게 천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여자들의 배낭을 들어줘도 으레 남자들이 해야하는 일로 여길 때가 많은데,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서양인들의 표현 방식은 참 부드럽고 달콤한 것 같다.
마리아는 남미 처자답게 종교가 가톨릭이었다. 나랑은 종교가 같았다. 마리아는 나를 라파엘이란 세례명으로 불렀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와는 쉽게 친구가 됐다. 같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 준섭이는 이런 핑크빛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나는 마리아의 페이스를 완전히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마리아의 호흡은 한결 안정돼 갔다. 어느덧 정상이 다가왔다. 마리아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정상까지 4시간이 걸렸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시나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활한 벌판은 성경에 대한 이해를 단박에 높여주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메마르고 거친 땅은 분명 신성해 보였다. 잠시 뒤면 붉은 해가 솟구쳐 오를 기세였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은 관광객들로 빼곡했다. 문자 한 통을 믿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뻔한 광경이었다.
정상에 들어찬 관광객들은 모세를 느끼기라도 하듯 진지한 얼굴로 붉은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아무도 타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다들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였다. 누군가 함성을 질렀다. 여명이 터오는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모두 한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전했다. 난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길 기도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성지순례를 온 단체 관광객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시나이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며 찬송가를 불러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안 봐도 됐다. 시나이산을 오르면서 가장 걱정이 되던 부분이었다. 다국적 인종이 모여 있는 시나이산 정상에서 한국인 중 일부는 일출을 보며 찬송가를 부른다고 했다.
자비, 포용, 이해, 사랑 등을 논하기 전에 타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종교의 가치가 출발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시나이산 정상에서 찬송가를 부르지 않았다. 다들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리며 일출을 감상하는 게 다였다. 나도 잠시 눈을 감고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다합으로 돌아오기까지 다행히 납치는 없었다. 일행과 작별인사를 할 때였다.
"헤이, 라파엘."
마리아가 날 불렀다.
"응."
"남미 여행할 거라고 했지, 혹시 콜롬비아 오게 되면 연락해! 꼭!"
마리아는 이메일을 적은 작은 쪽지를 가지런히 접어 내 손에 쥐어줬다.
6박 7일 동안 머문 다합을 떠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로 가는 심야버스를 타는 날이었다. 그동안 머물렀던 숙소에 방값을 치르자 숙소 주인은 외출하는 길이라며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돈을 달라고 하진 않겠지?"
준섭이를 보며 말했다.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싫다고 할까요?"
이집트에선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숙소 주인은 터미널 앞에서 따뜻한 미소와 악수로 차비를 대신하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잠시나마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숙소 주인의 작은 친절은 오랜만에 마음속에 온기를 돌게 했다.
오후 10시. 버스가 제시간에 맞춰 어둠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카이로까지 대략 8시간 정도가 걸리는 여정이었다. 오랜만에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익숙한 발라드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댄스음악이 번갈아가며 내 감정을 뒤흔들었다. 여느 때와 달리 댄스음악이 구미에 맞았다. 잔잔한 심야버스의 썩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한국가요가 주는 맛은 남달랐다. 하지만 음악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잠을 잘 수 있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버스 기사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류탄이 터지고 기관총이 난사되는 액션 DVD를 반복해 돌려댔다. '된장할.' 스피커의 음량은 영화관의 돌비사운드와 맞짱을 뜰 기세였다. 스피커에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자정을 넘기고 미친 듯이 총소리를 내뱉던 작은 TV 화면이 총알을 전부 난사했다는 듯 힘없이 빛을 잃었다.
"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카이로에 도착해 눈을 뜨고 싶었다. 내 간절하고 작은 바람이었다.
"따라리~따아~"
"아놔! 또 뭐야, 이건."
꺼진 TV가 다시 귀청을 후벼 팠다. 총소리 대신 이번엔 무슬림 찬송가의 무지막지한 융단폭격이 시작됐다. 승객에 대한 편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버스였다. 거기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꼴로 검문소와 휴게소에 번갈아 정차했다. 급기야 카이로 도착 한 시간 전에는 버스 기사가 한 승객과 말싸움 끝에 버스를 도로 위에 급정거시켜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깜짝 놀라 선잠에서 깬 승객들은 새벽부터 본의 아니게 싸움판 구경꾼이 된 채 마음을 졸여야 했다.
싸움판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버스 기사와 승객은 얼굴을 붉힌 채 여차하면 주먹질을 할 것만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상대방의 얼굴에 거친 아랍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두 손을 정수리에 올린 채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보다 못한 승객들이 두 사람을 뜯어 말린 뒤에야 싸움은 끝났다. 버스 기사는 거칠게 차를 출발시켰다. 버라이어티 한 이동이었다. 슬며시 중국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중국에선 그래도 기사 아저씨의 권위가 있었는데... '쩝.'
여행 정보
그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바로 시나이산(2285m)이다. 이 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시나이산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언급돼 있어 사실상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의 공동 성지다.
시나이산은 다합에서는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고, 수도 카이로에서 출발하면 버스로 6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합에서 출발하는 투어는 오전 2시쯤 트레킹을 시작해 해가 뜨기 전 정상에 도착한다. 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에 올라서면 생명이 살지 못할 것 같은 메마른 바위산이 여행자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시나이 산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순간은 고요하기만 하다. 모든 여행자가 어둑어둑한 동쪽 하늘을 응시한다. 그리고 기도를 올린다. 모두 모세를 떠올리는 것만 같다. 해가 뜨고 감동의 순간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간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는 성 캐서린 수도원을 볼 수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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