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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Feb 18. 2024

버려진 존재들의 뒷 이야기

둠에 휩싸인 18살 여자아이는 눈물이 얼룩진 이불을 품에 안고, 자신의 심연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고 있었다.

'또다시 엄마에게 버려졌구나'

실수를 가장해 떨어뜨린 라이터의 화염이 집안을 휩쓸며,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애써 불길 속으로 삼켜 내려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보다 숨 막히는 육체의 고통이 앞서자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불길은 1층부터 4층까지 올라가며 주택을 집어삼켰다. 그러던 중 4층에 있던 젊은 여성은 탈출을 시도하던 중 1층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이 아이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왜 불을 질렀습니까?"

구속 면담에서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 당당한 척 "기록에 모두 있는데 왜 자꾸 물어보냐. 그냥 죽게해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견 '싸가지'없는 태도 뒤에 어떤 상처와 불안이 감춰져 있는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살펴보았다.

"피해자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라고 물어봤을 때, 아이는 관심 없다는 태도로 말하며 "사과할 생각은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아이의 눈동자 깊숙이에 숨겨진 감정의 파도를 직감했다.


친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이 아이는 마치 버려진 존재처럼 보였다. 보육원에서의 경험과 어려움이 이런 태도와 행동으로 이어진 것인지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면회를 왔냐는 물음에는 엄마에 대한 기다림을 상대에 대한 화로 덮어버렸다.

 "구치소에 엄마가 어떻게 여길 와요!!"


아이의 곁에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넌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어떤 아픔이 네 마음을 뒤흔들었을까?" 아이는 처음에는 냉담한 모습을 유지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아픔, 무능한 양육자로부터 받은 상처, 보육원에서의 고독함을 아이의 내면을 깊이 묻어두었다.

나는 이미 많은 비난을 받았을 그에게 다른것을 주려 애썼다.


면담의 과정에서 아이는 불만, 분노, 그리고 엄마에 대한 기대와 포기를 인정했다.

 "넌 여전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 너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새로운 길을 걷을 수 있다."



처음엔 강하게 거부했지만, 아이는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보육원에서부터의 죽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 강인함이었음을 발견했다.

결국 아이는 구속되었고 교도소에서 오랜 기간 죗값을 치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젊은 나날을 모두 회개의 굴레속에서 보내도록 구형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다치게 하는 불길에 손을 뻗던 아이는 새로운 희망의 불빛으로 눈을 빛냈다.

그것이 형벌과 국가 사법기관의 존재의 이유이며 내가 오늘도 이 일을 하는 이유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정치사건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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