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사이다 Jun 05. 2024

위층에 악마가 산다

층간소음

최근 새벽 6시마다 놀라서 깨는 일이 반복된다.

쿵 쿵쿵쿵..쿵!!

윗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하루만 그러겠거니 했었는데 한 달째다.

이제는 작은 소리에도 잠이 확 깨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결국 관리실에 가서 부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시작은 이랬다.

어느 날 아랫집에서 슬리퍼와 함께 소음을 조심해 달라는 쪽지가 붙었다.

이상한 것은 새벽 6시에 소음이 난다는 얘기었다.

나는 그 시간에 꿀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의아하게 생각했다.

다소 불쾌한 쪽지를 받은 이후 나도 덩달아 새벽시간에 소리에 예민해졌고,

그동안 들리지 않던 새벽 6시의 소리가 나에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범인은 윗집이었다.


위층에 악마가 산다

명절 연휴, 당직을 설 때였다.

고향집에도 못 가고 우울해하며 제발 별일 없이 지나가라고 기도를 했었다.

기도가 무색하게 계장님이 뻘쭘해하며 '검사님... 어쩌죠...'라며 영장 기록을 들고 왔다. 딱 봐도 언론에 보도될 듯한 일가족 특수상해사건을.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명절에 평소보다 많은 가족들이 모여 다소 소란스럽게 했나 보다.

이전에도 몇 번 소음문제로 다툼이 있어 앙심을 품고 있던 아랫집은 과도를 집어 들었다.

'딩동딩동'

'누구세요?'

'아랫집인데 거 좀 조용히 좀 합시다!'

'당신이 맨날 눈치준다는 그분이예요? 명절까지 너무하신거 아닙니까.'

아랫집과 윗집주인의 아들의 대화가 격앙되었다. 아랫집은 바지춤에 숨겨놨던 과도를 들고 들어가 가족들에게 난동을 부렸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상해를 입었다.

결국 아랫집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했고, 그는 구속됐다.

하지만, 이미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평화로운 명절은 없었다.


최근, 대법원은 윗집의 반복된 소음에 대해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어 보복한 아래층에 대해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니 눈눈이이 복수하는 방법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당근으로 층간소음 복수를 위해 빈대를 3,000원에 산다는 글도 보았다. 빈대로 병이 걸린다면 상해죄로 처벌받지 않을까?).


층간소음의 끌어당김?

층간소음의 법적 해결책은 112에 경범죄처벌(소란행위) 법 위반으로 신고를 하거나, 이웃사이센터에 신고하거나, 고의적으로 반복되는 경우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일단 그건 나에게 최후의 수단이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상담을 드려보았다.

어머니가 사시는 윗집에도 애기들이 있어서 매일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

설에 고향에 갔을 때 소리가 너무 심해서 '명절이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매일 그런 소리가 난다고 하셨다.

"엄마, 안 시끄러워?"

"씨끄럽지 당연히, 근데 화는 안나"

"씨끄러운데 화가 안나?"

"응,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아, 요놈들이 오늘 기운이 펄펄 나는구나~ 하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여유가 없을 때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조차도 나를 아프게 한다.

검사는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역할을 할 뿐 안타깝게도 의식주의 '주'의 흔들림을 바로잡진 못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층간소음도 끌어당김 법칙이 적용된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물론 내 탓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음 때문에 예민해진 나에게 모든 소리가 짜증스러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말그대로 소음을 끌어당겼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소리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있다


기차에서는 온갖 소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자는데 집이라는 공간에선 모든 소리에 예민할까?

배달원이 내는 쿵쿵 소리에 민첩하게 상을 피듯이, 윗집의 쿵쿵소리에도 인상을 피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은 사람일 뿐

위층사람은 아마도 6시에 출근을 하는 사람이다. 그도 나처럼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

나도 8시에 출근을 하며 누군가에게 씨끄럽다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면 어떨까?


그래, 당신은 새벽에 소리를 낼 수 있지요.

그리고 나도 조금은 씨끄럽게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서로 조용히 해달라고 할수도 있구요.

다만,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내는 소리들인걸요.


처벌보다는 용서가 많은 세상이 되기를. 검사일이 좀 줄어들게.

실제로 어머니 말씀에 머리를 얻어맞은 이후

더 이상 누구도

화가 나

새벽에 깨지 않는다.


오늘도 평온한 밤 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일할 사람 다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