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
**스포주의!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던 소녀 <기묘한 이야기> '일레븐(El)'이 이번엔 막내 딸랑구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미 명탐정으로 명성을 펼치고 있던 셜록 홈즈가의 막내 딸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존재한다. 아마 여러 덕후들은 '홈즈'라는 단어 하나를 이유로, 멋대로 소름끼치는 '추리물'을 상상하고 기대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에놀라 홈즈>는 추리물이 아닌 모험물이었음을 먼저 밝히고 싶다. 그저 홈즈의 설정만을 가지고 왔을 뿐 기존의 셜록 홈즈 추리물과는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며, 때문에 추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비난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야기는 어머니 유도리아 홈즈의 갑작스러운 증발로 시작된다. 시골에서 홀로 막내 딸, 에놀라 홈즈를 기르던 유도리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에 오빠인 마이크로프 홈즈와 셜록 홈즈가 그녀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에놀라 홈즈는 가부장적인 오빠를 뒤로한 채 어머니를 찾기 위해 홀로(Alone*) 런던으로 향하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극 초반, 에놀라(ENOLA)를 철자를 거꾸로 읽으면 홀로(ALONE)이라는 심오한 말장난으로 시작한다.
중간중간 회상장면에서도 아주 잘 보였듯, 어머니는 그저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여성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여성참정권을 향해 결의하는 비밀결사단의 조직에 참여하고 있었던 혁명가였다. 그녀의 증발 역시 거사를 위해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이는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가며 하나둘씩 밝혀지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를 연상케 했다. <택시운전사>가 외부인 택시기사 만섭(송강호 분)의 시각을 통해 사건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광주항쟁을 모르는 관객 조차 쉽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면, <에놀라 홈즈> 역시 천진난만한 소녀 에놀라의 시각을 통해 관객이 쉽게 여성의 근현대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또한 여성참정권 운동사건에 흑인 및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기존 <서프러제트(Suffragette)> 등의 영화가 백인 여성만의 입장을 부각시켰다는 비판들을 수용 및 반영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돋보였던 점은 자칫 성(性) 대결 문제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을, 성을 넘어선 인간적 연대의 문제로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에놀라 홈즈(여성)는 결코 혼자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없으며, '튜크스베리 후작'(남성) 또한 그러했다.
극중에서 에놀라는 이렇게 말한다.
"걔를 해치려는 놈들이 있는데 그 아이는 그걸 막을 힘이 없고 난 있으니까요!"
그러하다. 튜크스베리 후작이 있었기에 에놀라가 다시 지긋지긋한 기숙사 학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며, 에놀라가 있었기에 튜크스베리 또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여성참정권을 반대하는 적을 같은 여성인 할머니로 배치하는 한편, 여성참정권을 가결시키는 중요한 한 표를 남성인 튜크스베리 후작이 행사하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기존의 성(性) 편견을 넘어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에놀라 홈즈>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주인공 에놀라를 부각시키기 의해 기존의 캐릭터(셜록 홈즈, 마이크로프 홈즈)의 성격을 붕괴하여 아예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이는 굳이 본 영화가 홈즈 가의 막내딸을 설정으로 했어야하는 당위성이 사라진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보인다. 하지만 유쾌하게 여성인권을 그렸다는 '다양성' 적 측면에서 이 영화에 힘을 싣고 싶다. 이 영화가 다양성을 표방한다는 넷플릭스의 존재이유를(또 우리가 넷플릭스를 취소할 수 없는 이유를) 한번에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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