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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May 16. 2022

혼자 온 손님, 올리브 나무

- 올리브 나무 (1)


작년 여름,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정말 오래간만의 이사라 집들이도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의 집들이, 이것 참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뤄오다 이사 온 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회사 동료들을 초대했다. 두 손은 가볍게 마음만 무겁게 하고 오라며 으스댔지만 착한 동료들, 갖고 싶은 아이템을 묻는다. 그래… 기다렸어 너희들. 


“갖고 싶은 건 딱히 없는데… 올리브나무? 근데 대품은 너무 비싸구먼. 작은 것도 테이블 위에 놓으면 너무 예쁘겠다!” 


사심이 가득 담긴 대답을 하고 집들이 날짜가 점점 다가올 무렵이었다. 별안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오기로 한 동료 B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 한껏 기대했던 집들이는 기약 없이 다시 미뤄지고 말았다. 원래 집들이를 하기로 약속했던 토요일이 다가왔고, 오전 10시가 넘도록 잠을 자고 있던 나는 느닷없이 울리는 현관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구세요…?”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자, 내 어깨 높이의 꽤 커다란 나무가 근엄한 모습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올리브나무: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들이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올리브나무였다! 올리브나무는 마치 홍철 없는 홍철 팀처럼, 그 녀들 없이 홀로 집들이를 왔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그녀들과 함께 서있어야 할 녀석이 어쩌다가… 

그래, 너희들은 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올리브나무는 우리 집을 찾아와 줬구나. 

괜히 대품 올리브나무 얘기를 꺼내 큰돈을 썼을 그녀들에게 미안해졌고, 그 와중에도 이런 이벤트를 생각했다니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애써 두근거림을 가라앉히고 단체 카카오톡 방에 연신 감사의 절을 올렸다. (사랑합니다...) 


그렇게 올리브나무와 한 지붕 아래 같이 산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이 녀석, 보면 볼수록 반전 매력이 상당하다. 나무의 가느다란 목대에 붙은 잔가지들은 직선으 로 뻗어 나오며 다소 정적이고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편, 나뭇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나뭇잎은 꽤나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이파리는 말랑말랑 밝은 연둣빛을 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녹색 빛의 어른 잎으로 성장하며 농익은 매력을 풍긴다. 한창 무르익은 이파리들이 가는 목대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무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올리브나무는 지중해의 강한 햇빛 아래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비록 우리 집이 올리브 나무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햇볕과 바람이 드는 곳은 아니지만 종종 선팅 된 창문을 활짝 열어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맞혀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올리브나무를 핑계로 자주 환기를 하다 보니, 나도 전보다는 바깥 공기를 더 자주 마시게 된다. 주변 풍경도 구경하며,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청초하고 여린 나뭇가지 위에 연둣빛 새싹을 여기저기 계속 뽑아내며 열심히 키를 키우는 나의 올리브나무. 아마도 이런 성장세가 계속된다면, 나무계의 하승진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라도 올리브나무를 선물해 준 그녀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그 사이에 무럭무럭 예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올리브나무를 보여주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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